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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학의 연구 방법 반성 / 손영식

최종 수정일: 2023년 11월 20일

나는 45년 넘게 중국 철학을 연구했다. 나의 연구 방법은 첫째, “한문 원전을 읽자, 남이 쓴 논문은 2차 자료일 뿐이다.” 둘째, "나의 상식과 이성의 관점에서 보자." 나는 학부에서 주로 서양 철학을 배웠고, 현대 자연과학을 나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한국에 살고 있다. 이것이 나의 상식과 이성을 구성한다.

1. 성현(聖賢)과 노예적 이성

이런 관점에서 내가 가장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공자의 술이부작(述而不作 잇되 짓지 않음)의 태도이다. 이 결과는 과거 철학자의 말을 무조건 진리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를 비판하여 풍우란은 진시황 이전을 자학(子學 제자백가의 학문), 이후를 경학(經學)으로 구분한다. 경학은 제자백가의 학설을 경전으로 모시고 훈고와 고증을 하는 것이다. 지적인 노예 상태이다.


나는 언젠가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이 볼 때 나와 퇴계 이황은 누가 더 나은가?


맹자는 군주 천명론을 주장한다. 어떤 이가 왕이 되는 것은 ‘하늘의 명령’(天命)을 받았기 때문이라 한다. 이는 서양 근대의 왕권 신수설과 비슷한 신화적인 황당한 이야기이다. 문제는 과거 기나긴 중국 및 한국 역사 전체에 공화정을 주장함은커녕, 소개한 학자가 단 하나가 없다는 사실이다. 심지어는 ‘공화정(共和政)’을 뜻하는 한자 낱말 자체가 없다. (중국어에는 ‘딸’에 해당되는 낱말도 없다.) ‘共和’라는 말은 주나라 때 왕이 없어지자, 共과 和라는 신하가 대신 다스렸다는 일화에서 나왔다. 공화정은 ‘republic’의 번역어이고, 그것은 ‘res publica’(대중, 국민)이라는 말에서 나왔다. 나라는 왕의 소유가 아니라 국민 대중의 소유라는 것이다.


‘왕정’ 대신 ‘공화정’이라는 생각은 하기 어려울 것도 없다. 서양은 그리스 시대부터 널려 있던 생각이다. 그런데 중국은 왜 그 많은 학자 가운데 단 하나도 거론하는 자가 없었는가? 분서갱유와 같은 황제 독재 국가의 탄압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맹자에게 ‘노예화된 학자’들의 탓이다. 맹자의 말은 무조건 진리인가? 성현은 나와 급이 다른 인간인가?

2. 철학→신화로 퇴행

원래 인류의 지성은 신화→철학→과학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신유학 연구는 주희가 철학 체계를 세운 뒤에 철학→신화로 퇴행했다. 신화는 세상의 모든 것을 신의 변신으로 설명한다. 왜 비가 오는가? 우사(雨師)가 비를 내린다. 철학은 ‘신’을 ‘형상과 질료’, ‘원인과 결과’로 분리시키고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과학은 경험적 증거, 수학적 기술(記述)에 근거한다.


주희의 성리학은 난해한 용어로 무장한 형이상학이다. 그것에 눌린 결과 의인법적 사고에 빠진다. 2011년에 어떤 분이 쓰신 논문을 예로 들어보자.

“그 格物·物格의 순간이 바로 본래 ‘하나’에서 근원한 인식 주체의 理와 인식 대상의 理가 아무런 매개체[氣質]의 장애 없이 만나, 본래 하나[一理]임이 인식되는 순감임을 뜻한다. 그 순간에 氣質은 완벽하게 理의 통제 하에서 理의 잠재성을 온전히 구현하는 도구로 작용되므로 ···”

낯선 난해성을 떠나 그냥 읽어 보자. 그러면 의인법적 사고가 돋보인다. “인식 주체의 리(理)와 인식 대상의 리(理)가 만난다”, 그 둘은 “본래 하나이다”, “기질은 리의 통제 아래”, “기질은 리의 잠재성을 구현하는 도구” - 이런 구절에서 ‘理, 기질’ 등의 형이상학적 개념들은 마치 ‘사물’인 것 같기도 하고, ‘사람’인 것 같기도 하다. 추상적 개념의 이런 ‘사물화 의인화’는 이미 이황의 “理發, 理動, 理到”(리가 드러난다, 움직인다, 도착한다)는 개념에도 있다. 그 이전에 주희는 리(理)가 “情意 計度 操作”(감정과 의지, 헤아림, 행위)가 없다고 한다.


‘리(理) 기(氣)’ 같은 추상적 형이상학적 개념은 사물도 아니고 사람과 같은 행위자도 아니다. 그 런데 마치 사물-사람인 것처럼 말한다. 이는 사유의 미성숙을 뜻한다.

3. 철학→문학으로 변질

이런 ‘사물화 의인화’의 원인 가운데 하나는 ‘비유를 증명’으로 간주하는 중국 철학의 고질병 때문이다. 맹자는 사람이 본래 ‘인(仁 사랑)’을 가졌다고 하면서, 우물에 빠지는 어린애를 보면 누구나 무조건 구해 주려는 ‘측은히 여기는 마음’을 예로 든다. 이는 ‘인(仁)’이라는 사랑의 예를 하나 든 것에 불과하다. 예를 들었다고 그런 사랑이 있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 아니다. 예를 들기로 치자면, 빠지려는 어린애가 안 빠지면 발로 차서 빠뜨리고, 건져내고 나서 그 부모에게 구한 대가를 요구하는 사람도 있다. - 그런 반대 예를 들 수 있다.


이황은 기대승과 4단과 7정에 대해서 치열하게 논쟁하면서 “사단(四端) = 리발기수(理發氣隨 리가 드러나면 기가 따름), 칠정(七情) = 기발리승(氣發理乘 기가 드러나면, 리가 올라탐)”이라 한다. 덧붙여서 리와 기의 관계를 “사람이 말(馬)에 올라탐”에 비유한다. 주희는 리와 기를 장군과 졸병에 비유한다. 이렇다 보니 요즘 학자들은 리와 기를 부부 관계에 비유하기도 한다. - 도대체 형이상학적 개념을 가지고 추상적 논리적 사유를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장자가 있다. 그는 혜시와 공손룡의 명제를 궤변으로 낙인 찍는다. 물론 “하얀 말은 말이 아니다”, 돌의 “딱딱함과 하얌은 분리된다”와 같은 공손룡의 명제는 얼핏 궤변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공손룡은 그 명제들을 엄밀하게 논리적으로 증명한다.


장자는 이를 논리적 증명으로 반박하지 못 하고, 그 명제들을 궤변이라 낙인찍어 왕따시킨다. 그러면서 자신은 “수천리 크기의 붕새가 구만리 상공을 낢, 나비가 장자꿈을 꿈”과 같이 황당한 이야기를 한다. 이는 문학이라면 모를까, 철학이라면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이후 중국에는 철학이 문학으로 변질된다. 공손룡의 논리적 추론과 증명은 사라지고, 비유 혹은 의인법과 같은 문학적 표현법이 증명과 추론을 대신한다. 이는 여전히 현재까지 살아 있는 학자들의 버릇이다.

4. 모순의 용인


철학을 버리고 문학으로 간 극단에는 모순의 용인이 있다.


형식 논리학에서 모순은 무조건 오류이다. 그러나 중국 철학에서는 모순의 용인을 넘어서서, 심지어는 모순이 심오한 진리인 것처럼 말한다. 어떤 연예인이 음주 단속에 걸리자, “술은 먹었지만, 음주 운전은 아니다” 라고 변명했다. 어떤 박사는 ‘인위적 실수’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인위(人爲)는 일부러 했다는 말이고, 실수는 일부러 하지 않은 것이다. - 이처럼 일상에서 보자면 모순은 웃기는 말이다. 그러나 중국 철학에서는 모순이어야 심오해진다.


율곡 이이가 리와 기의 묘합(妙合 묘하게 합해짐)을 말하자, 어떤 연구자는 이를 ‘리기 1원론’이라 한다. 1원론은 1이다. 리와 기는 2이다. 그러나 묘하게 합해져서 하나이다. ‘2=1’이라는 말인데, 이게 말이 되는가?


주희 이래 현재까지 대부분의 학자는 ‘관점주의’에 근거한다. - 리와 기의 관계는 ‘혼륜(渾淪 뒤섞음)’으로 보면 하나이고, ‘분개(分開 나눔)’으로 보면 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렇고, 저런 관점에서 보면 저렇다. 물론 문학적으로는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관점주의를 가지고 ‘하나=둘’ ‘같음=다름’이라 할 수 있는가? ‘관점이 다름’이 ‘모순’을 합리화시킬 수 있는가? 절대 그럴 수 없다.


철학 논리학을 버리고 문학 수사학으로 간 결과가 이렇게 참혹하다. 철학 잡지를 들여다 보면 널린 것이 모순의 용인이다. 어떤 연구자들은 ‘리일분수(理一分殊)’에 대해서 말한다.

理는 우주·자연에 보편적이되, 種마다 또는 개체마다 다른 법칙·규범이 되기도 한다.

사물들은 각기 지닌 차이와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리’(理一)를 부여받고 있다

보편 법칙과 개체마다 다른 법칙, 근원적 동일성과 현상적 다양성 – 이는 모순이다. 모순은 무조건 오류이다. 왜 이런 자각이 없을까? 이 모순을 해결할 추론은 하지 않는가? 이런 추론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 나라 학계에서는 ‘理一分殊’라는 말은 여전히 신비화된다.

5. 개념 정의가 없다.


‘朱子學 퇴계학 율곡학 남명학 다산학’ 같은 용어들이 대표적이다. 이는 ‘朱子+學’처럼 ‘고유명사+학’으로 된 말이다. 고유명사는 의미가 없다. 따라서 ‘朱子學’ 같은 말은 의미(내포)를 담고 있지 않다. 단지 ‘주자(朱熹)의 학설·학문’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주희가 초년과 말년에 학설이 다르다는 것이다. 게다가 주희의 어떤 저서를 보느냐에 따라서 주희의 이론을 제각기 다르게 규정할 수 있다. 결국 ‘주자학’이라는 말에 제각기 다른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제각기 다른 의미를 부여한 ‘주자학’이라는 말에 대해서 상대는 그 의미를 알지 못한다.


이처럼 객관적 의미가 규정되지 않는다면, 서로 토론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조선 중기에 “서경덕 조식 이황 이이”라는 걸출한 사상가들이 나온다. 그 넷은 완전히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넷의 이론을 다 ‘주자학’이라 한다. - 이런 식으로 말하면, 사실상 그믐밤에 까마귀를 백로라고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이래서 무슨 발전이 있겠는가?


왜 굳이 ‘퇴계학’이라 할까? 이황의 이론을 ‘학문’ 수준까지 올려서 존숭하겠다는 문중적 관심이다. 우리는 ‘물리학’의 ‘학’과 ‘퇴계학’의 ‘학’이 다르다는 것을 안다.


* 신유학에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 ‘理, 氣’이다.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정의하고 규정하는 학자는 별로 없다. 그러니 학계에 합의된 정의는 없다. 다 안다고 치고, 앞의 인용문처럼 그냥 ‘理 氣’로 쓴다. (심지어 한글로 ‘이 기’라고 해서, 理는 ‘이’가 아니라 ‘리’로 쓰자고 제안했다.) 나는 논문을 읽을 때마다 늘 드는 의심이 있다. 도대체 이 글을 쓴 사람은 ‘理 氣’라는 개념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아니 개념 규정이라도 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6. ‘규율 규범 한계’가 없는 사유


1) 서양 근대에 물리학(자연과학)이 생길 때, 데카르트의 실체 개념이 작동한다. 그는 실체를 ‘물질 정신 신’의 셋으로 규정한다. 자연과학은 물질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실체는 자체적으로 존립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과학은 ‘물질을 물질만으로’ 설명해야 한다. 이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신이나 초자연적 힘을 동원하면 자연 설명은 너무 쉽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배제하고, 물질적 자연은 오직 물질만으로 설명한다는 ‘지적 금욕주의’가 자연과학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다.


앞의 이유 때문에 중국 철학은 방만함 그 자체가 된다. “역사학은 증거로 말하고, 철학은 논리로 말하고, 문학은 상상력으로 말한다.” - 철학이 ‘논리’를 포기할 때, 한계도 없고, 근거도 없는 상상력에 빠지고, 문학으로 전락한다. 문제는 정말 재미없는 문학이라는 것이다.


2) 지적 금욕주의가 없는 방만함은 경학(經學)과 함께 간다. 성현의 말씀을 경전으로 모시고, 무조건 진리로 숭배하면서 훈고 고증을 한다. 금욕이 없기에, 훈고(訓誥 풀이)를 하기 위해서 마음대로 상상하고, 심지어는 원문 변조를 서슴지 않는다. 원문을 뜯어고칠 것이면, 왜 훈고는 하는가? 그냥 자기 이야기로 자기 글을 쓰지.


객관적 현실을 연구 대상으로 삼을 때 사실 증거와 논리적 추론 증명이 필요하다. 그럴 때는 성현의 말씀도 검증할 수 있다. 서양 근대가 그러했다. 그러나 중국은 성현(聖賢)·선현(先賢)의 말씀과 가르침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그 결과 논리적 추론을 버리고 문학적 상상력으로 나간다. 지적 금욕주의가 사라지고, 방만한 상상력만 난무하게 된다.


3) 자기 성장 보고서와 사소설 – ‘성현=진리’이다. 이렇다 보니 논문은 내가 성현을 이해했다는 성장 보고서가 된다. 결국 학문적 토론과 논쟁은 거의 없어진다. 남의 성장 보고서에 관심을 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연구자는 자기의 성에 갇힌 1인 성주가 된다.

7. 철학 멸망의 시대


요즘 대학은 철저하게 장사 논리로 간다. 신입생 지원자가 줄어드는 철학 물리학과 같은 기초 학문은 과를 없애는 추세로 간다. 2010년을 경계로 전임 철학 연구자는 확 줄어든다. 철학이 교양 과목으로 그나마 대학에 남게 된다.


철학은 강자의 학문이다. 철학은 강자에게 필요하지, 약자에게 쓸모가 있는 것이 아니다. 약자는 강자의 철학을, 노예는 주인의 이성과 감성을 따르면 된다. 과거에 한국은 중국의 철학을 그대로 들여왔다. 그렇다면 현재도 우리의 철학이 필요 없는 것일까?


한국에서 철학은 밖으로는 물리적 축소에 직면해 있고, 안으로는 연구의 빈곤에 시달린다. 근 50년 전 내가 처음 철학을 했을 때는 비록 나라가 혼란했지만, 철학은 활력이 있었다. 정년이 될 무렵 나는 많은 것을 취소 청산하는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철학도 청산될까 두렵다.


우리가 물질적 힘으로 세계 1위를 할 수 없겠지만, 문화적으로는 최강국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이 김구 선생의 말이다. 그리고 한류가 휩쓰는 지금 한국은 문화 강국이 되어 있다. 그런데 철학이 없는 문화 강국이 지속 가능할까?


손영식(울산대 철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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