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칼럼 [절망이라는 행위]는 막스 플랑크가 원자론으로 개종한 사건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플랑크는 자신이 찾아낸 흑체 복사 공식에 대해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원자론’의 의미를 부여했던 것이다. 그래서 양자역학 성립사를 다루는 과학 교과서와 대중서에서는 통상적으로 1900년 12월에 양자혁명의 서막이 올랐다고 적혀 있다. 나도 역시 그렇게 썼다.
한데 내 칼럼을 얼굴책에서 본 얼친 김재영 박사(과학사학자이자 과학철학자)는 대부분의 “교과서에 실려 있는 그 설명은 후대의 창작”이라며, 그런 서사가 기본적인 사실들과 불일치함을 전문가답게, 또 세세히 지적해주었다.1) 그러면서 관련 자료들을 링크해주었는데, 매우 유익했다. 나는 인문대학, 그것도 종교학과라는 곳을 다닌 뒤 우연히 자연과학사에 매료된 사람인지라 이런 지적질과 가르침을 365일 연중무휴 대환영한다. 내가 현재 품고있는 생각은 나의 소유물이 아니며, 따라서 내 견해에 대한 비판은 내 소유물을 손상시키는 행위가 아니다. 나는 지금보다 더 정확하고 더 멋진 견해들로 늘 갱신해가고 싶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그렇게 되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가 링크해준 자료 중 오늘 칼럼의 주인공인 아인슈타인과도 관련된 구절을 좀 까다롭지만 인용하며 시작해보자. 김재영 박사는 “최근에 일군의 과학사학자들이 편집한 알버트 아인슈타인 논문집”을 언급하며,
“1900년 무렵에 아인슈타인과 그의 약혼자 밀레바 마리치 사이에 오고 간 편지들을 보면, 아인슈타인은 플랑크의 흑체 복사 공식이 과연 고전물리학의 테두리 내에서 도출될 수 있는 것인지의 문제를 가지고 골몰하고 있었음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1899년 3월부터 1901년 7월 사이에 쓰인 10편의 연애편지는 아인슈타인이 플랑크의 논문을 매우 상세하고 꼼꼼하게 읽었으며, 1907년에 출판된 비열의 양자이론에서 표현되는 기본적인 아이디어가 이미 이 시기에 매우 잘 정립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2)
이런 사실 등을 근거로 요흔 뷔트너, 위르겐 렌, 마티아스 셰멜은 토마스 쿤이 말하는 의미에서의 혁명을 양자역학 분야에서 일으킨 것은 막스 플랑크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그 혁명의 발발은 “1900년의 플랑크의 논문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1907년의 비열에 관한 아인슈타인의 논문, 1908년 헨드릭 안톤 로렌츠의 로마 강연, 1910년의 플랑크의 논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가능했다는 것이다.”3)
그러니까 플랑크의 논문은 1900년에 발표되었고 아인슈타인(1879년생)은 19세에서 21세 사이에 그걸 읽고 큰 충격을 받으면서 그 와중에 매우 상세하고 꼼꼼한 독해를 수행하였다. 그 결과 그가 당시 정립해 놓은 기본 아이디어와 그것을 살려 1907년에 쓴 비열(比熱)에 관한 논문은 앞서 언급된 과학사가들에 의해 양자혁명의 가장 주요한 계기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1. <물리학 연감>이라는 학술지
앞서 정리한 내용들은 가령 만지트 쿠마루의 [[양자혁명]] 등 다른 책에도 간결히 언급되어 있지만 구체적인 사실들은 내가 처음 알게 된 것이다. 그럼 지금까지는 이 대목이 공백이었던가! 물론 그렇지 않다. 아인슈타인이 1905년 3월, 자칭 “매우 혁명적인” 양자 논문을 써서 당시 세계적인 과학 저널이었던 <물리학 연감>에 발표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다. 뉴턴의 기적의 해(1666)에 맞먹는 또 한번의 기적의 해 1905년에, 아인슈타인은 활화산 같은 열정으로 다섯 편의 혁명적인 논문들을 분출시켰다. 그중 네 번째 논문이 [운동 중인 물체들의 전기동역학에 대하여](6월 논문)로, 바로 ‘특수 상대성 이론’ 논문이다. 다섯 번째 논문은 [물체의 관성은 그 물체의 에너지 함량에 따라 달라지는가](9월 논문)로, E=mc²논문이다. 이 어마무지한 논문들 이전에는 그럼 어떤 화산들이 분출했을까?
그 전에 잠깐 짚어둘 것은 우선 이 논문들이 모두 <물리학 연감>에 발표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학술지는 당시 최고 물리학자들의 논문이 속속 실리는 것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흥미로운 것은 아직 공식 물리학자도 아니었던 아인슈타인, 특허청의 말단 직원이었던 그의 논문들도 한 해에 네 편이나 실렸다는 사실이다(참고로 4월 논문은 학술적 희비극을 네 다섯 차례 겪으면서 다음 해인 1906년에 발표되었다.4)).
이 사실로 미루어 <물리학 연감>은 최고의 권위를 보유하고 있었으면서도 무명 필자들을 무시하지 않았다고 짐작할 수 있다. 한번 더 흥미로운 것은, 아인슈타인이 논문을 네 편이나 실었지만, 그것이 세속적인 명성이나 지위와는 거의 무관했다는 점이다. 그는 이후에도 몇 년 동안 특허청 말단 직원으로서 토욜까지 이어지는 근무를 감당해야 했다. 다만, 3급 기술전문가였던 그가 1906년 4월에 2급 기술전문가로 승진했다는 점이 달라졌다면 달라진 점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또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아인슈타인의 이 논문들을 막스 플랑크(당시 47세)도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아 훗날 아인슈타인을 유명 대학의 교수로 초빙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이다. 참고로 플랑크는 <물리학 연감>의 편집 총책임 자리에 있었다.
2. “매우 혁명적인” 양자 논문, 그리고
특수상대론 논문과 E=mc² 논문 이전에 쓰인 세 편의 논문은 그렇다면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어떤 것이길래 이 다섯 논문이 탄생한 해를 기적의 해라 부르는 것일까? 제목부터 보자. 첫 번째는 3월 논문 [빛의 산출과 변환에 관한 하나의 발견적 견지에 대하여]다. 여기서 ‘산출(Erzeugung)’과 ‘변환(Verwandlung)’은 영어로는 ‘creation(생성)’과 ‘conversion(전환, 轉換)’이라고도 번역된다. 나같은 문송이들은 아인슈타인이 쓴 원제의 Verwandlung이란 단어를 ‘변환’이라 번역하면서, 이 독일어가 [[변신]]이라 번역되는 카프카의 작품 제목과 동일하게 Verwandlung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또 곤충의 ‘변태’와도, 그러므로 당연히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의 ‘변신’(라틴어로는 metamorphosis)과도 동일한 단어임을 상기하며 다층적으로 흥분한다. 한편 마르크스는 [[자본]] 1권에서 수전노가 자본가로 화려하게 변신하는 순간을 가리켜 ‘변태’라 했다. 또 강렬했던 것은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곤충중에는 너무 심하게 환골탈태해서 전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인 것들도 있다고 했던 대목이다. 일생중 무려 20차례나 이렇게 변태하는 곤충이 있다는 대목은 지금도 경이로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잠시 흥분한 나머지 요즘 세상에는 거의 쓸데없는 지식 단편들을 주워섬겼다.
사실 3월 논문에서 ‘산출’은 빛이 새로 생겨나는 것, ‘전환’은 성격이 크게 다른 확! 바뀌어버리는 걸 뜻한다. 간단히 말하면 빛의 방출과 흡수다. 그럼 내가 덧붙인 얘기들은 그냥 그렇다는 얘기일 뿐인가? 두 가지 점에서 그렇지만은 않다. 첫 번째로는 철학적, 사상적 이유에서다. 아인슈타인은 15세 때 [[순수이성비판]]을 읽고 깊은 문제의식을 품은 다음 결국 26세때인 1905년 6월 논문을 통해 칸트의 철학과 세계상이, 구체적으로 말해 그의 시공론이 오류라고 주장했다.5) 시간과 공간은 물 자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인간의 선험적 형식이 아니라 존재자들의 운동 양태이며, 그것을 우리 인간이 파악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후 아인슈타인의 연구 성과까지 포괄해 덧붙이자면, 심지어 시간과 공간은 각각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시공간이라는 하나의 장일 뿐이다. 그걸 인간이라는 구체적인 생물종이 둘로 나누어 감지하고 인식하는 것이다. 지금은 [[순수이성비판]]만 예로 들었지만, 그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전반에 걸쳐 절친들과 토론 모임 ‘올림피아’를 만들어서 분야를 가리지 않는 독서 토론을 치열하고도 명랑하게 전개하였다. 아인슈타인이 철학이나 고전에 얼마나 폭넓고 깊은 세계를 보유하고 있었는지를 모르고서는 그의 과학에 대해서도, 말년까지 이어지는 통일장 이론에의 추구에 대해서도, 왜 그가 끝까지 양자역학의 코펜하겐해석에 반대했는지에 대해서도 협소하게밖에 이해할 수 없다. 혹시나 아인슈타인의 이런 면모를 조금이라도 실감하고 싶은 분은 [왜 사회주의여야 하는가]를 읽어보시기 바란다. 이건 저명한 좌파 잡지 <Monthly Review> 1949년 5월호에 실렸던 아인슈타인의 짧은 글6)인데 [경제학과 사회주의]라는 제목으로 우리말로도 번역되어 있으니 일독을 권한다.7)
두번째는 물리학적인 이유로, 이는 3월 논문의 핵심과 직접 관련된다. 그는 논문의 서두에서 그동안 전자기학이 일정 시간 동안 지속하는 파동만을 상정하고 연구해왔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렇게 되면 연속성의 세계밖에 볼 수 없는데, 자연계에는 순간적인 현상, 단절적인 현상들도 있는 것이다. 그는 바로 이점을 간과해온 것이 그동안 물리학의 문제였다고 선언한다. 단절적인 자연 현상을 연속적인 것으로 상정하고 연구했기 때문에 보지 못한 것이 있었다는 것이다. 논문 제목에서 말하는 ‘산출(생산)’과 ‘변환’이 바로 순간적인 현상이고 단절적인 현상이다. 이러하기 때문에 1905년의 아인슈타인은 1년내내, 연속적인 파동이 아니라 불연속적인 원자에 대해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몇 년 전에는 플랑크의 논문 속 ‘작용 양자’에 주목했던 것이며, 이것이 미래에는 그냥 ‘양자’가 되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당시 절친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 3월 논문을 “매우 혁명적인” 논문이라 불렀으며, 오늘날 많은 과학사가들은 이를 ‘양자 논문’이라 부른다.
1905년에 두 번째로 집필된 4월 논문은 [분자의 크기에 대한 새로운 규정]이다. 이는 그의 박사논문이기도 하며 발표는 1906년 <물리학 연감>의 19호에서 이루어졌다. 세 번째 논문은 [열 분자운동 이론에 의해 요청되는, 정지 중인 액체 속에 떠다니는 작은 입자들의 운동에 대하여]라는 5월 논문이다.8) 어떤가? 논문 제목들만 봐도 뭔가 부글부글 끓는 게 느껴지는가? 아마 별로 그러진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얘길 듣고나니 뭔가 재밌는 게 있을 것도 같은데.... 싶으면서도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은 과히 생성되지 않는 제목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일단은 간단히만 정리해두자. 3, 4, 5월 논문들은 제목만으로는 좀 애매하게 느껴지겠지만, 모두 원자들이 실재임을 입증하기 위한 시도였다고. 이들에 대해서는 다음 달에 보자.
3. 자료 소개
벌써 글의 분량도 너무 넘쳤고 시간도 별로 없어서 이번에도 역시 황급히 끝내려고 하는데, 그러는 김에 책소개나 하며 오늘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아인슈타인의 1905년 논문들에 대해서는 존 S. 릭던의 [[1905년 아인슈타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를 이용할 수 있다. 두껍지 않은 분량에 다섯 논문들을 요령 있게 잘 소개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이 번역된 2006년에 읽었는데, 줄이 매우 많이 쳐져 있다. 과학에 대해 여전히 아는 게 너무 없던 시절에 새로운 지식에 줄을 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테지. 이번에 다시 읽어보니 내용도 꽤 충실해서 정리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일본어로 된 자료로는 저 유명한 유가와 히데키가 감수한 총 세 권짜리 [[아인슈타인 선집]]을 갖고 있다. 나 분명히 말했다, ‘읽었다’가 아니라 ‘갖고 있다’고. 이 책은 필요할 때 가끔 참고하니까 너무 수준 높은 기대나 요구는 하지 마시길. 이중 1권에는 1905년 논문 중 네 편은 물론이고 그 외의 관련 논문들도 다수 번역되어 있다. 더군다나 앞서 언급된 1907년 비열 논문도 번역되어 있다([복사에 관한 플랑크의 이론과 비열 이론]). 번역만 한 게 아니다. 수록된 논문을 몇 편씩 엮어서 주제별로 짜임새 있는 해설을 붙여놓았다.
또 하나는 존 스태첼의 [[Einstein's Miraculous Year]]의 일역본이다. 로저 펜로즈의 서문이 달렸고 네 편의 논문이 실려 있으며 각 논문마다 20쪽 정도의 해설이 붙어 있다. 사 놓고 거의 본 적이 없다. 이번에도 어딨는지 찾느라 시간 좀 걸렸다. 근데 목차를 보니 곧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약 100쪽에 달하는 존 스태첼의 글도 들어 있다.
마지막으로는 앞서 거론된 과학사학자 유르겐 렌이 편집한 <Einstein’s Annalen Papers>다. 제목에서도 얼추 알 수 있듯이 아인슈타인이 <물리학 연감(Annalen der Physik)>에 기고한 49편의 논문을 원문 그대로 수록하고 최근의 역사 연구에 기반한 네 편의 입문 에세이들을 덧붙인 책이다. 아인슈타인의 논문은 독일어로 쓰여 있기 때문에 나는 굳이 다 읽으려 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말이나 영어로 된 글을 읽다보면 가령 그가 ‘광양자’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적혀 있는데, 정말 그 논문에서 독일어로 그 말을 썼는지, 아니면 실질적으로 그런 말을 쓴 거나 마찬가지라는 건지를 구별하고 싶을 때 뒤적여보는 정도다.
다음 달에는 아인슈타인의 세 논문 얘기를 하겠다. 관심 분들의 기대와 많은 지적질을 기대한다.
1) “플랑크는 레일리의 논문에 사실상 아무 관심이 없었고, 진즈의 논문은 플랑크의 논문이 나온 지 5년 뒤에야 발표되었어. 1900년에 플랑크가 1905년에 나온 논문의 ‘자외선 파국’을 설명하기 위해 절망적인 선택을 했다는 건 말이 안 되지. 또 그 “마지 못한 선택”은 1900년 이야기라기보다는 1920년대 중반 이후 전개된 새로운 양자역학에 대한 것으로 볼 수도 있음.“(말투만 부분 수정).
2) J. Büttner, J. Renn and M. Schemmel, “Exploring the limits of classical physics: Planck, Einstein and the Structure of a Scientific Revolution”, in J. Büttner et al., eds., Revisiting
the Quantum Discontinuity (2000). 김재영 「막스 플랑크와 양자불연속 논쟁」, <물리학과 첨단 기술>
3) 같은 곳.
4) 이 재미진 이야기는 존 S. 릭던, 염영록 역, [[1905년 아인슈타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랜덤하우스코리아, 2004). p.79-80.
5) 아인슈타인은 희대의 천재 쿠르트 괴델도 15세에 이 책을 읽던데, 아직 독일어 번역본도 안 나온 이 책을 서양의 천재들은 잘도 읽어낸다.
6) Albert Einstein, “Why Socialism?”, Monthly Review, May 1949, pp.1-7.
7)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경제학과 사회주의],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 – 개정판]] ㅣ 공감이론신서 13 윤소영 (지은이) | 공감 | 2001년 7월. p.11-20.
8) 3월 논문, 4월 논문, .... 9월 논문이라고 할 때 각각의 달은 집필이 완료된 시점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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