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불 앞에서 디자이너일 필요 없다 / 김보슬

최종 수정일: 3월 8일

‘전업작가’. 작품 창작에 전일제(全日制)로 뛰어들어 생계를 이을 수 있다는 희망. “예술로 먹고 살기” 같은 구호는 좀 지겹다.

그보다 예술이 자유롭기를 바란다. 자유롭다는 것은 재물, 명성, 희망, 절망, 자괴감, 고독, 그 무엇에도 묶이지 않는다는 것일 테다. 물론, 모든 것을 걸어야 나오는 작품도 있다. 살고 싶은 삶과 살아야만 하는 삶으로 일상을 양분하고 반쪽짜리 삶으로는 세상에 내어놓을 수 없는 예술이 있다. 그러나 같은 상황을 이렇게도 해석해 볼 수 있으리라. 모든 것을 창작에만 온전히 걸 수 없는 상황이 창작에 걸림돌이 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예술이, 자연이 허락한 그의 예술 세계가 어쩌면 딱 거기까지이기 때문이라고.

처음부터 예술 전공으로 직업을 구할 수 있으리란 섣부른 믿음으로 인해 예술교육에 시간과 비용을 쏟아붓는 소년, 소녀들이 있다. 다른 걸 익힐 기회를 송두리째 희생하고 (훗날엔 자신의 재능이나 예술계에 실망하고도) 대안이 없어서 하릴없이 예술을 붙들어야만 하는 처지로 내몰리는 경우 또한 적잖다. 그 혈기방장을 말려줄 어른 필요하단 말인가. 그렇다면 ‘선의의 비판자(devil’s advocate)’ 역할이야말로 예술계에서 소용 있는 직업일 테다. 내가 떠올릴 수 있는 대안은 풀타임(full-time) 직업을 얻고, 라이프타임(life-time)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 예술이 예술 아닌 것을 업으로 삼는 생활인에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걸 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어!” 하는 선언으로 터지면 좋겠다. 그것이 진정 박수를 얻고, 예술다운 것으로 여겨지면 좋겠다.

십수 년 전, 나 역시 예술학교를 다닐 때였다. 졸업작품으로 ‘Professional Apologizer’라는 제목의 작품을 발표했다. 사과(謝過) 메뉴에서 듣고 싶은 위로의 말을 고른 이를 위해,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는 무언가를 건네받고 나의 육성으로 선택 문구들을 재생하는 퍼포먼스 작업이었다. 관객과 심사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사람들은 제목의 ‘professional(직업적인)’이 무엇인지 정의하기를 원했는데, 훈련이나 전문성 같은 여러 속성들 중에서도 생계 수단이라는 데에서 가장 뚜렷한 합의점이 도출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렇다면 프로페션(profession)은 그게 어떤 일이든 간에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이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고, 프로페션을 가지고도 틈틈이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그것은 아마츄어(amateur) 작가가 아니다, 오히려 끈기있는 예술정신이다. 누구나가 다 목표로 하는 경제적 독립 외 누구도 지시하지 않은 부가적 세계에 용기 있게 도전하는 아마추어리즘을 신뢰한다. ‘투잡’은 예술가의 숙명이자 진면모일지 모른다.

나의 친구 정호진은 서울의 한 식당에서 일한다. 매운 연기 속에서 여러 테이블을 한꺼번에 돌보아야 하는 그 일을 몇 해 째 매일같이 해내고 있다. 손님들이 물러간 늦은 밤, 사장님과 이모님을 거들어 잔업을 마치고 나면 작업실에 돌아와 옷을 만들고, 눈을 뜨면 시장에 나가 옷감을 고르고, 숨 돌릴 틈이 있을까 하는 사이 다시 식당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면 악착같다는 게 실감 난다. 그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패션디자이너이지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음식점 종업원인 동안에는 패션디자이너일 필요 없어.”

생활비를 버는 일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아끼는 일로부터 동떨어져 있어도 괜찮음을 고백하는 담담한 목소리에서 절망은 찾을 수 없었다.

안애순, 김판선, 예효승, 황수현, 임지애 등 많은 현대무용가의 의상을 제작해 온 그는 십대 시절 홀로 한국을 떠났다. 홍콩과 파리를 거치며 다소 일반적이지 않은 디자이너 코스를 밟은 뒤 마르지엘라, 에르메스 맞춤복 아틀리에 Camps de Luca, 샤넬 등에서 일했고, 지금은 서울에서 디자인 스튜디오 PAUS artisanal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그의 이름을 가장 자주 접하게 되는 영역은 공연예술이다.

춤과 옷은 몸을 매개로 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러니 의상의 하위분류들 중에서도 춤을 위한 의상이라면 인체와의 관계가 이중으로 각별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의문을 가지고 나는 호진이 쓴 글을 읽는다.

“공연은 수많은 분야의 아티스트와 전문가가 켜켜이 쌓아 올려 완성하는 결과물이다. 의상 역시 공연을 완성하는 하나의 요소가 되며, 의상 그 자체가 하나의 역할이 되기도 하고, 무대가 되기도 하고, 콘셉트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물론 작업의 중심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나 작업을 보조하는 역할이 되기도 하며, 디자이너가 설정해 놓은 것과는 다른 그림이 되기도 할 것이다. (…) ‘의상이 무용을 위한 작품인가?’ 혹은 ‘무용이 디자이너의 창작을 선보이는 도구로 사용되는가?’라는 논의가 중요하지 않을 정도로 아티스트 간 좋은 궁합을 보여준 작업이 많다. 내 작업의 지향점 역시 그러하며, 무엇이 더 우선인가를 따지는 것보다 함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무용과 의상, 정의되지 않는 관계로 공존하기」, 웹진 『춤:in』, 2020년 10월)

그리고 오간 문답.

나: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호진: 프로젝트 이인의 <QUAD>,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 에서의 인턴 생활, 프랑스의 비스포크 하우스 Camps de Luca에서 일한 기간이 제일 기억에 남아. 최근 작업 중에서는 고래야 밴드의 <공상과학국악: 미래도시>, 프로젝트 이인의 <무용수-되기>, 이민진의 <Missing Link>가 오래 기억될 듯.


[사진 1. <QUAD>, 프로젝트 이인]

[사진 2. <공상과학국악: 미래도시>, 고래야 밴드]


[사진 3. <무용수-되기> 공연 의상 제작을 위한 디자인 노트]

나: 나하고는 2017년 <HereThere>(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무용커뮤니티 정기공연, 안애순 안무)를 통해 처음 만났지. 그때 옷을 만들던 호진 씨 모습이 아무래도 가장 또렷이 기억돼. 출연자들 치수를 재고, 움직임을 점검하고, 의상의 보관, 운송, 세탁까지 관리하는 과정은 정말로 하염없이 손이 가는 일이더군. 화사하게 웃으면 그걸 실수 없이 해 내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어. 그때 어땠어?

호진: 임선열 디자이너의 어시스턴트 역할로 참여했지. 내가 직접 디자인하고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점이 불편한지, 그림으로 보는 디자인과 실제의 매칭이 어떻게 다른지도 현장에 가서야 알게 되었어.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장에서 컨펌을 받을 시간조차 없이 내가 결정권자로서 몸에 맞게 수선을 하고, 스타일링 재배치도 하고, 구성을 검수해야 했어. 그땐 그게 내 역할이었고, 그걸 잘 수행해 내야 많은 사람들이 준비한 ‘정말 보여줘야 할 시간’을 지켜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열심히 했지.

나: 샤넬 같은 유명 브랜드 런웨이에서도 활약한 것으로 알아. 스튜디오에서 옷을 디자인하는 것뿐 아니라 살아있는 몸들에 그걸 입히고, 무대 뒤에서 디테일을 조정하는 일은 많은 순발력이 필요할 것 같은데.

호진: 다행히도 순발력을 요하는, 이른바 ‘라스트미닛(last minute)’까지 간 적은 없었고. 작업 자체가 엄청나게 길기는 하지만 매일 같이 밤을 새다 보면 어느새 마감이 되어 있고, 작업이 끝난 옷은 트럭에 실려 패션쇼장에 도착해 있어. 아예 없는 일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마지막 순간까지 바쁜 경우는 극히 드물지. 티비나 영화에서 표현되는 세계와는 차이가 있는 거지. 그리고 이 문제는 디렉션을 주는 사람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해.

[사진 4, 5. 의상 오브제 <월몰月沒, Moonset>, 정호진 作]

나: 최근에 유튜브 채널도 개설했지? 옷을 만들고 남은 천이나 자재를 활용해서 뭔가를 만드는가 봐. 나도 친환경성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내가 이제까지 관여되었던 일들, 그러니까 인테리어 디자인, 공연, 전시 같은 것들이 폐기물을 어마어마하게 쏟아내는 것을 알았어. 호진은 왜 그런 걸 다루기로 한 거야?

호진: 자투리들이 아까워서. 나는 작업할 때 예산에 부합하는 소재를 제치고 무조건 마음에 드는 소재를 쓰거든. 그렇다 보니 남고 버려지는 재료들이 생기면 너무 안타깝잖아. 뭐라도 만들어 보려고 시작하게 되었지.

[사진 6. 쉬폰으로 꾸뛰르 니트 만들기 영상]

나: 그렇군. 프랑스가 그립지는 않나? 그곳에서 디자이너로 사는 것은 어떻게 달라?

호진: 거기선 직장생활을 했고, 한국에서는 구멍가게만 한 스튜디오를 꾸려가야 한다는 것이 가장 다르지. 책임감 자체가 달라.

나: 무용계에서 특별히 인기가 많던데. 패션 의상과 공연 의상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두루 가지고 있고, 스스로 춤추는 디자이너는 드물기 때문에 그 인기가 수긍이 가. 그러나 공연계에서 겪는 고충도 있을 것도 같아. 어떤 점이 개선되길 바라?

호진: 연출가가 본인의 가볍고 뿌연 이미지를 디자이너와 공유하려 하고, 디자이너에게 강요하려 드는 것.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것, 미처 진지하게 생각해 볼 겨를도 없던 것들은 산발적으로 늘어놓으면 디자이너로서는 일 하나를 더 얻는 셈이야.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위해 고용되지, 도깨비 방망이를 들고 있거나 단순히 기술자이진 않거든. 서로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고 떠미는 일방적, 기계적 주문은 개선되어야 해. 물론 디자이너의 의견을 조율하고 편집하는 것은 연출가의 권한이야.

나: 자재를 수배하러 광장시장, 방산시장 이런 데에 다니면 재미도 있나?

호진: 진짜 ‘기 빨려서’ 들어간 지 한 시간째부터는 온몸이 혹사당한 것처럼 지쳐. 서둘러 나가야 해.

나: 하하하. 앞으로 해 보고 싶은 일은?

호진: 어렸을 때부터 늘 말년 운이 좋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2021년에는 정말 일이 많았어. 2022년 스케줄도 이미 꽉 차서 ‘내가 지금이 말년인가?’ 싶어. 올해를 무사히 버티면 질문의 답을 생각해 볼 여유가 생길 듯.

'아상블라주(assemblage)'는 프랑스어로 집합·집적을 의미하고 여러 물체를 한데 모아 미술작품을 제작하는 기법이나 그 작품을 뜻한다. 이 명칭을 딴 아상블라주 이론은 전체와 부분 사이의 경계를 해제시켜 전통적 조합에서 벗어난 이질적 대상들의 유기적 재조합, 그리고 이음새 없는 연결성을 강조한다. 포괄적으로 사물, 개념, 활동에 걸쳐있는 아상블라주 관점에 따라 고유한 역할들이 완전히 다른 부분과 만나 새로운 전체를 이루는 사례를 나는 춤과 옷의 만남에서 찾아보았다.


[영상 1. 디자이너 Yohji Yamamoto의 의상 쇼를 TAO Dance Theater의 무용 공연으로서 펼친 사례, Paris Men's Fashion Week 2016 SS 런웨이]


[영상 2. 패션 브랜드 OTEYZA의 의상 쇼를 스페인국립발렌단 공연과 접목한 사례, Mercedes Benz Fashion Week Madrid 2019 런웨이]

그리고 이런 무대 뒤에는 삶과 예술의 아상블라주가 드리우기도 한다. 최소임금을 받으며 일인다역을 해내는 이들의 눈물겨운 노력 앞에서 상상한다, 내게 만일 절대권력이 있다면?

‘저 사람 돈 벌게 하지 말라, 그저 최소한의 소득을 쥐어 주어라.’ 명하고 싶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작가활동이란 게 다른 무엇에 비해서 너무나 소중하므로 경제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조심스럽고, 나의 정치적 입장은 아니다. 만일 창작이 정말로 그런 것이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예술 기본소득? 예술인 복지제도? 그것이 100% 충족되는 세상에서 우리가 무엇을 창조할 수 있을지를 자문하며 나는 왜 일종의 두려움을 느끼는가. 하나씩, 하나씩 고민해 보아야 할 의무를 느끼며… 음식 연기와 시장통, 작업실과 극장 사이를 오가며 삶과 예술의 아상블라주를 몸소 실천하는 모든 예술가 친구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들이 계속해서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릴 수 있게 하고, 그것을 행할 때에 보람을 얻게 해 달라고.


김보슬(Otis College of Art and Design 공공예술 M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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