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팔루디 <다크룸> 리뷰 1 / 김효영



나는 다른 인격을 개발해 왔다


지난 구정, 지인 부친의 부음을 들었다. 명절의 한가운데였다. 대신 문자로나마 위로의 말을 전했다. 위로 감사합니다. 아직은 아빠 없는 날의 시작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라는 말이 돌아왔다. 일치감치 아버지가 돌아가신 나로서는 상상 못한 삶이었고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아빠가 없는 게 익숙한 삶. <백 래쉬>를 내놓고 열정적인 저술을 이어가던 20세기 후반의 수전 팔루디는 그런 삶을 살았던 것 같다. 그러다 25년의 침묵을 끊고 아버지가 돌연 ‘변화들’이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보내왔을 때, 둘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수전 팔루디의 아버지를 나는 그-무수한 이름과 성을 횡단했던 존재자로 여기고 성구분과 무관하게 ‘그’라고 표기하고자 한다.

그는 가정폭력의 가해자였고 늘그막에 여성이 되길 선택했다. 나도 피해자야라고 외치는 서사일까? 그렇다고 모든 과거와 단절하고 비로소 ‘진정한 나’를 찾았다는 의심스러운 극복담일까? 다행히 팔루디는 뻔한 서사, 오이디푸스 삼각형에 갇힌 개인사를 험악하게 폭로하거나, 작위적인 절정의 순간에 치유가 도래했다는 식으로 전개되는 개인적 회고록이라는 개념 자체를 믿지 않았다. 대신 팔루디는 그 개념을 의도적으로 변용한다. 더 많은 나!, 나를 넘어선 무엇을 발견하고 기록하는 데 전념하기로 한 것이다. 팔루디의 작업은 성공적이었을까?

헝가리 유대인의 ‘황금기’에 부다페스트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의 이름은 ‘이슈트반 프리드먼’이었다. 그러나 곧 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반유대적인 법률에 복속된 홀로코스트의 시기가 찾아왔고, 그는 정통적이고 훌륭한 헝가리 이름이라 자부하는 ‘이슈트반 팔루디’로 개명한다. 20대의 중반, 다시 미국에서 새로운 인생을 설계할 때 그의 이름은 ‘스티븐 팔루디’가 되었고, 76세에 태국행을 결심했을 때 그는 ‘스테파니 팔루디’라는 네 번째 이름을 갖게 된다.

이 삶에 대해 그는 분명 할 말이 많을 거였다. 그러나 팔루디가 필리버스터의 대가라고 묘사하는 그는 과거에 관한한 결코 수다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그러니까 아버지가 원래 살던 곳에 가보자고 채근하고, 과거의 것들을 상기하려는 노력은 딸의 편에서 이뤄졌고, 그는 매번 그건 전부 예전에나 하던 거야라든가, 모든 일을 잊어버렸다. 심지어 그 때는 내 자신도 아니었다는 식의 단호한 거부로 답한다. 팔루디는 한편으로 그의 여정을 우디 앨런이 창조해낸 변신능력의 귀재인 ‘젤리그(Zelig)’의 여정으로 이해한다.


변화를 좋아하는 나의 아버지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언제나 과거의 나로부터 빠져나가는 것이었을 거다. 지금 이 모습이 아버지의 진정한 자아인가 묻는 팔루디에게 그는 답한다. 어어, 이건 지금의 나야. 나는 다른 인격을 개발해 왔단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팔루디는 성전환수술을 결심한 그가 받아내야만 했던 전문의의 소견서에서 문자화된 욕망의 불일치를 놓치지 않는다. 팔루디는 그 불일치 속에서 그가 삶의 전 시간동안 전념했던 것이 매번의 새로운 인격의 창안이었는지 아니면 ‘패싱’에의 노력이었는지 묻게 된다.

Susan Faludi with Stefánie in 2010. Photograph: Russ Rymer

정체성이란 당신이 선택한 것인가 아니면 당신이 피할 수 없는 무엇인가?

그가 태어난 1927년은 양차 대전의 사이였다. 때는 헝가리인의 다수인 마자르인에 동화되려는 유대인의 노력이 이룩한 황금기가 차츰 저물고 홀로코스트가 짙어지던 무렵이다. 때문에 그는 탄생부터 ‘유대인’인 동시에 ‘비마자르인’으로서 자신이 타고난 것들로부터 얼마나 재빨리 벗어나는가에 목숨이 걸렸음을 배웠을 것이다. 그는 말한다. 거기서 빠져나간다는 거. 수우-전, 이 말을 잊지 말아라. 그게 모든 것의 열쇠야. 유대인이라는 사실이 들통난 수많은 사람이 총살을 당했으니까.

그러나 그가 빠져나가고자 했던 유대인다움은 종교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나치의 이데올로그가 가리키듯, 그리고 적어도 팔루디가 참조하는 11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텍스트가 가리키듯, 유대인은 예수의 죽음 이후부터 피흘리는 여성으로 폄하되었다. 그러한 ‘인종’의 여성화의 역사는 그에게 유대인으로서의 자기부정만큼이나 남성으로서의 자기부정을 증폭시킨다. 그렇기에 그가 성전환 수술을 알리는 ‘변신들’이라는 제목의 이메일에서 나는 이제 공격적인 마초 맨을 가장하는 게 진절머리가 난다. 나의 내면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지라고 적은 것은 충분히 예고된 일인 것처럼 보인다.

역설적인 것은, 그가 하나의 인격에서 벗어나는 것에 몰두했던 것만큼이나 각각의 정체성을 충실히 실현하는데 누구보다 열심이었다는 점이다. ‘프리드먼’에서 ‘팔루디’로 개명하길 결심했을 때, 그는 그것이 정통적인 마자르식 이름이기 때문에 선택했다고 말한다. 진정한 마자르인은 시골 출신이고, ‘팔루디’는 헝가리어로 ‘시골의’를 뜻하기 때문이다. 어린 팔루디가 진절머리내는 헝가리 전통 의상을 강제로 입히며 그는 나는 헝가리 애국자니까라고 말한다.


젊은 시절의 그가 컨버터블 스포츠카를 몰고, 지하실에는 톱과 드릴을 갖추고, 벽난로 선반에는 시가 박스와 파이프를 놓아두는 식으로 스스로를 전후 미국 남성성의 모델로 전시하는 데 열성적이었다면, 노년의 스테파니가 되었을 때 그는 다시 ‘여성다움’에 몰입한다. 그는 나이를 묻는 질문에 숙녀에게 그건 예의가 아니죠라고 부끄러워하고, 지금 나는 진짜 여자니까라고 힘주어 말한다.


때문에 그에게 그때마다의 정체성에 대한 열성적인 몰입은 기존의 인격에 대한 가차없는 폐기를 동반하는 것이었다. 가령 그는 성전환 수술 전까지 하녀 복장과 같은 음탕한 취미에 심취했는데, 돌연 수술 후에 그 모든 것을 혐오의 대상으로 몰아넣고 더더욱 순수한 여성성을 강조한다. 그로부터 촉발된 팔루디의 연구는 그러한 ‘생물학적 여성성’에 대한 일종의 판타지가 20세기 초 최초의 트랜스섹슈얼들에게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특성임을 드러낸다. 이 지점에서 팔루디의 물음은 유효하다. 정체성이란 당신이 선택한 것인가 아니면 당신이 피할 수 없는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어떤 경유로든 취한 그 정체성들을 그는 긍정해왔을까?

마자르인다움, 백인남성다움, 여성다움을 관통해온 그의 삶은 한편으로 한 개인의 정체성이 어떻게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것들에 대한 충실한 응답으로서 구성되는가를 드러낸다. 과거를 증오하고, 맹목적인 애국주의자를 자처하는 19세기 후반 동화의 물결 속에서 형성된 현대 유대인의 특성, 그리고 비정상적이고 음탕한 남자에서 얌전한 가정의 천사로의 재탄생이라는 이른바 젠더구원의 서사는 그렇게 그의 특수한 몸에 체현된다. 그런 점에서 대단히 사적인 이 이야기는 가장 보편적인 현대정치사로 다뤄질 중요한 이유를 갖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 이는 왜 그가 복수의 정체성을 횡단하면서도 매번 소속감 없는 불안 속에서 늘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는가를 드러낸다. 그는 언제나 ‘다움’의 정체성에 충실한 방식으로 규격화된 인격을 옮겨 다녔을 뿐, 스스로 인격을 창안해낼 시도를 해볼 수 없었다. 그리고 바로 이때에 횡단성은 불가피하게 불임이 된다.

여기에 안전한 장소는 없다. 그러나 가능성의 지도들은 많이 있다


트랜스섹슈얼리티의 가치가 ‘패싱’에 있는 한, 트랜스섹슈얼들은 ‘살아온 경험들의 복잡성과 모호성을 진정으로 재현할 수 있는 능력을 스스로 부정하게 된다는 팔루디의 주장에 집중해 보자. 팔루디는 패싱으로 주저앉아버리지 않는 횡단성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드러낸다. 어떤 횡단성도 단지 이편에서 저편으로 건너가는 식의 충분히 안전하고 고정된 양식을 답습하는 것인 한, 트랜스섹슈얼 스스로의 능력을 부정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말은 옳다. 우리가 안전한 고정성을 벗어나는 지극히 모험적인 삶에 뛰어들면서, 어떻게 스스로를 상처입히거나 부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진정 자신의 횡단적 존재성을 긍정할 수 있을까?

팔루디가 인용하는 샌드 스톤의 진심어린 호소, 섹슈얼리티 연속체 사이에 놓인 어떤 공간이 있다면, 그건 보이지 않는다. 물론 페미니스트 이론가들은 의심할 것이다. 제기랄, 나도 의심스럽다는 말처럼, 고정된 정체성들, 구획된 경계들 그 사이의 공간이 있다면 그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부단한 변신 속에서 그 공간을 매번 마주했을 것이지만, 동시에 그곳에 처한 두려움에 몸서리쳤을 것이다. 때문에 그는 과거를 지우는 방식으로 그 불안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살아온 역사에 완전 삭제란 없다. 2015년 5월, 그가 죽은 후, 팔루디는 그의 집 다락방에서 남성의 옷가지들이 산처럼 쌓인 무덤을 발견한다. 무덤은 단순한 은유가 아니었다. 팔루디는 말한다. “여기에는 시체가 놓여있었다.”

거기에는 ‘남성성’이라는 그에게 부정당한 또 하나의 그의 시체가 놓여져 있었던 셈이다. 그가 새로운 정체성으로 옮겨갈 때마다 부정과 삭제를 강요당했던 것들은 그처럼 시체가 되어 그의 뒤편에 쌓여갔을 것이다.

나는 그런 점에서 트랜스섹슈얼이 경계해야 할 것은 패싱에의 몰두만큼이나 자신의 역사를 완강하게 삭제하려는 열망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자신의 삶과 역사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그렇기에 무엇보다 강조되어야 한다. 자신의 역사에 대한 책임, 그것은 자기들 삶을 말소의 연속이 아니라 차이를 재전유하고, 새롭게 조형되고 기입된 몸의 힘을 탈환하는 정치적 행위로 기록하는 데서 출발한다. 스톤의 멘토, 해러웨이의 전언을 참조하자.

“여기 안전한 장소는 없다. 그러나 가능성의 지도들은 많이 있다.”(D. Haraway, The Haraway Reader, 2004, p.109)

김효영(수유너머104회원, 서울대 철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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