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고전문학 연구자가 바라본 조선전기의 시대에 대한 시각과 해석을 다룬 것이다. 책의 서평을 부탁받았을 때, 잠깐이나마 주저하였다. 역사학자가 과연 고전문학 연구자가 쓴 책을 다룰 수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문학사가 아닌, 조선전기의 역사를 보는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책 제목에서 ‘조선전기를 읽는 시각’이란 타이틀이 이를 대변한다. 필자는 책을 읽는 동안 새삼 고전문학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와 역사적 시각에 대해 너무 무지했음을 깨달아야 했다. 물론 필자는 고려말 조선초기를 연구하다 보니 생기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 책은 과연 조선전기를 어떻게 바라보고, 또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1. 문명전환과 조선전기에 대한 시각의 이분법적 틀
이 책은 조선전기를 문명전환의 기획(제1부), 동국문명의 구현(제2부), 유교문명의 심화(제3부)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조선왕조의 개창은 고려왕조와 다른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 책에서는 조선왕조 탄생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시각을 문명전환이란 키워드로 접근하였다. 문명의 전환은 불교에서 유교문명 국가로의 정체성을 지니게 되었음을 뜻한다. 그 결과 조선적 정체성은 1894년 갑오개혁으로 과거제가 폐지되고, 한문이 언문에게 국어의 지위를 넘겨줄 때까지 지속되었다.
책의 1부에서는 주로 태종, 세종대까지를 중심으로 다루었다. 이 시기는 문명적으로 중화문명을 수용하면서 동시에 동국문명이 싹텄다. 중화문명은 명이 구축한 동아시아 국제질서, 즉 화이(華夷) 질서를 기반으로 하지만, 그 핵심은 유교 특히 성리학이었다. 물론 성리학은 주자학으로 집대성되었기에, 조선은 이를 중화문명의 핵심으로 인식하였다.
조선은 중화문명의 공유를 꿈꾸었으며, 그 교두보는 인재선발의 시스템인 과거시험 제도를 명과 통일하는 것에 두었다. 또한 세종은 중화문명의 수용을 위해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 동국문명은 이같은 중화문명 수용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 추구에서 나오게 된다. 이 점은 단군에 대한 인식과 제천(祭天) 행사 등으로 이루어졌다.
반면 궁궐의 건설은 정치적 시각으로 접근하면서 각종 건물의 명칭에서 그 의미를 추구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태조대부터 성종대까지 지어진 악장을 통해 시대정신, 문명의식과 결부시켜 살펴보려 했던 점이다. 책에서는 이를 주로 정치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다. 과연 악장이 말하는 시대정신이란 것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궁금해진다.
정치적 관점에서 시대정신에 접근할 수 있을까? 이 책의 시각은 대체로 이분법적 틀에 기반하고 있다. 즉 중화문명과 동국문명, 국왕권과 재상권(정도전) 등의 시각이 그것이다. 문명의 전환은 역사학계에서도 논의가 많았으며, 국왕권과 재상권의 대립은 일찍부터 사용한 정치사적 시각이다. 정치사적 시각은 훈구와 사림세력의 대결까지 이어진다. 책에서도 지적하고 있듯이, 역사학에서는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어 왔지만, 아직 방법론적 대안을 뚜렷하게 제시되고 있지 않다.
다만 이 책에서 시대정신이란 것이 문명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 그것이 문학적으로도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는지는 되물어야 할 질문이다. 시대정신은 이념의 문제라서 정치적 시각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주제이다.
2. 유교문명, 중화문명, 동국문명
책의 2부, 3부의 주제는 중화와 동국문명, 그리고 유교문명의 심화이다. 책에서 밝혔듯이, ‘문명’이란 개념은 영어의 civilization이 아닌 주역에서 쓰인 ‘성인의 교화로 밝아진 세계의 상태’이다. 그렇다면 문명 개념은 철저하게 유교적 문명이다.
여기서 동국문명이란 개념은 무엇일까? 중화문명이 명 제국질서를 대변하는 화이론에 따른 위계질서를 나타내는 유교문명이라면, 동국문명은 이를 수용하여 자기정체성을 확립하면서 등장한 문명일 터이다.
대략 동국문명은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즉 훈민정음의 창제와 번역을 통한 중화문명의 수용, 이후 변계량이 보편과 특수를 아우르는 동국문명의 추구, 서거정에 의한 보편문명(중화문명)의 달성을 위한 소중화(小中華)문명, 15세기 이후 도학의 세계 등으로 거칠게 정리할 수 있다.
특히 15세기 도학 세계의 추구는 김종직, 김시습, 남효온, 김굉필 등을 중심으로 서술되고 있다. 이것이 책 3부의 주요 주제이다. 이런 인물이 등장한 것은 책의 저자가 해왔던 연구 성과(점필재 김종직, 젊은 제자들이 가슴에 품은 시대의 스승, 남효온 평전 : 유교문명을 꿈꾼 이상주의자의 희망과 좌절)를 바탕으로 하였다.
3부에서는 현실정치와 도학 세계의 충돌을 섬세하게 그려나간다. 그리고 성종 14년에 주목하였다. 주목한 이유는 김굉필, 남효온, 김시습이 과거시험을 포기하고 새로운 행보를 통해 도학의 전회가 이루어진 지점이기 때문이다. 도학 공부는 성종, 연산군, 중종대까지 배척의 대상이며, 신진사류는 사화를 통해 도학의 순교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도학은 지역의 제자나 조광조와 같은 인물 등으로 계승되면서, 지역의 유교문명화와 도학의 심화를 가져왔다. 그 결과 16세기 중반 이후 ‘도학의 시대’를 일궈낼 수 있었다.
책에서는 결론적으로 인물에 따른 동국문명의 전개를 이렇게 정리한다. 정도전의 ‘시서예약(詩書禮樂)’, 권근의 ‘경술문장(經術文章)’, 변계량의 ‘성교자유(聲敎自由)’, 신숙주의 ‘훈민교화(訓民敎化)’, 서거정의 ‘문장화국(文章華國)’, 김종직의 ‘연문소도(沿文泝道)’라는 키워드이다.
이처럼 이 책은 문학적 정치적 문명적 시각에서 방대한 내용을 다루면서 조선전기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을 잘 보여준다. 다만 아직도 동국문명의 지평이 어떤 것일까 하는 점은, 필자의 무지로 인해 선명하게 찾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제한된 지면으로 방대한 내용을 제대로 소개하지 못한 점은 양해를 구한다.
김인호(광운대 인제니움학부대학)
Opmerking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