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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한국연구원

섬마을 미술관에 그물 들어오니, 만선일세! / 김보슬

대한민국은 섬이 많은 나라다. 특히 서남해 리아스식 해안에는 다도해가 펼쳐진다. 이 중 전라남도 신안군은 섬으로만 이루어진 지역인데, 몇 가지 점에서 여타의 섬 지역과는 다르다. 무려 천 개가 넘는 유‧무인도로 이루어져 일명 “천사(1004)섬”이라는 불리기도 하는 이곳에 제주도만큼 큰 섬은 없다.

이들 전부가 울릉도처럼 육지로부터 멀기만 한 것도 아니다. 이 군도에선 진도-하조도, 거제도-가조도와 같은 단일한 중심섬‧부속섬의 관계를 가리기도 힘들다. 아주 크다고도, 아주 작다고도 할 수 없는 무수한 섬들이 연안에서부터 먼 바다까지 드넓게 드리워져 있어,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서울의 스물두 배에 달하는 면적을 이룬다. 목포에서 다리로 연륙되어 육지나 다름없어진 압해도를 출발하여 암태도, 팔금도, 안좌도로 향하는 동안 낙지잡이로 유명한 갯벌이 펼쳐진다.

이곳의 뻘은 생물종 다양성이 풍부하여 최근에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하였다. 어느 날에는 뻘에 물이 높이 차오르더니, 어느 날에는 찰랑거리다가 마는 것, 그것이 일정한 주기로 반복된는 걸 발견했다면 그게 바로 물때이다. 조석(潮汐)을 눈으로 살펴본 것이다. 그런데 배를 타고 나가면 뻘과는 전연 다른 검푸른 물살에 돌연 부딪힌다. 도초도 즈음을 지나면 배멀미가 시작된다. 점점 아득하고 막연하다. 그 망망대해 위에 놓인 흑산도, 홍도, 그리고 최서남단의 섬인 가거도까지 모두 신안의 섬살이가 뿌리내리는 곳이다.


신안군에서 발행하는 계간 『신안 소식』의 한 코너인 「만인보」는 지금을 살아가는 섬사람들의 다양하고 생생한 삶을 전하고 있다. 글자와 사진으로 보는 휴먼 다큐멘터리인 셈이다. 『지리산 둘레길 걷기여행』(한국방송출판, 2009)으로 지리산 둘레길을 널리 알린 이혜영 작가의 취재로 시작되어, 벌써 두 해째 신안인들을 소개하는 중이다. 흑산도에서 자산어보 마을학교를 운영하는 이영일 씨, 광주 출신으로 45년째 신안에서 소위 보따리 장사를 해 신안에 기부를 한 김우돌 씨, 장산도 소년 노래꾼 선민제 학생 등 여기에 실리는 인물들은 섬의 숫자만큼이나 저마다 다른 이야기로 호기심을 자아내고 있다.

2020년 신안과 MOU를 맺은 네덜란드 카스코아트인스티튜트(Casco Art Institute)는 이 점에 착안하여, 「만인보」가 담고 있는 지역 고유의 콘텐츠를 활용한 예술활동을 발굴하여 섬 전체와 나누자고 제안하였다. 그리하여 2021년 여름, “신안 만인보展 전시작 공모”가 공개 공모로 진행되었고 전국에서 모인 남녀노소의 작품으로 열게 된 전시가 바로 2021년 신안 만인보展이다. 전시가 열리는 곳은 자은도 둔장마을미술관.



유럽 여행 중 방에서 방으로, 거기서 또 다른 방으로 이어지던 궁전을 들러보던 때와 같이 섬에서 섬으로, 다시 그 다음 섬으로 이동한다. 목포에서 다리 세 개를 건너다 보면 한 시간 남짓 걸려 어느덧 자은도에 이른다. 둔장마을미술관은 1971년 새마을 운동이 시작될 때 각 가정으로 배급된 벽돌과 시멘트를 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 모아 지은 마을회관이었다가 2020년 4월 미술관으로 다시 탄생했다고 한다. 상근하는 직원은 없지만 마을의 ‘지킴이’ 주민들이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들을 위해 손수 문을 열고 닫는다.


공모 심사를 거쳐 선발된 일반참여자 작품 30여 점과 특별초청작가로 참여한 오치근(그림책), 정소영(설치미술), 최성욱(사진) 작가의 작품이 한데 어우러졌다. 공간 연출과 전시 기획을 총괄한 최빛나 카스코아트인스티튜트 관장은 자은면 김 양식 어민의 고증과 의견을 적극 반영하여 신안군 어업문화를 대표하는 지주식 김 양식 시설을 주 무대로 재현해냈다. 죽대를 세우고 김발을 늘어뜨려 김 양식장을 모사한 구조물 위에 작품이 배열된 광경은 마치 그물로 섬살이를 건져낸 것만 같다.


섬살이가 대체 무엇 때문에 특별하다는 걸까. 내륙에서 나고 자란 나는 그 이유를 선뜻 지목하기가 어렵다. 바다 건너 섬은 ‘오지’일 것이라는 막연한 상상 때문에? 산골도, 사막도, 심지어는 도회지도 일정 부분은 고립돼 있지 않은가? 이 까다로운 수수께끼 앞에서 장님이 코끼리 다리 더듬는 처지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섬이 인류의 보편적 문제를 가장 전방에서 겪어왔다는 주장에는 수긍이 간다. 기후변화에 의한 해수면 상승과 하강이 그랬을 터이고, 해산물이 풍부하여 먹거리 사정이 좋았을 것만 같지만―아버지 말씀으로는 섬에서 온 친구들은 대체로 키가 컸다고 한다―단백질은 탄수화물에 비해 장기 보관이 어려우니 식자원 조달과 운송에 절실한 고민을 기울였을 터이다. 파도가 사람을 자주 삼키고, 풍랑에 가로막혀 눈앞에 보이는 이웃에게도 미처 가 닿지 못하니 그것은 근본적으로 분단의 아픔, 주권상실, 무엇이라도 믿지 않으면 안 되는 불신지옥이 아니었을까. 예부터 섬에 당제(堂祭), 당숲이 많은 이유라고 한다.


전시의 기획자 최빛나 관장은 전시 기획의도를 이렇게 전하고 있다.


“코로나 대전염병과 이상기후를 비롯한 여러 불안정한 사회적 상황을 두고 한국 사회는 종종 ‘각자도생(各自圖生)’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하곤 합니다. 정부나 공동체, 이웃에 기대기보다는 각자 살길을 도모하는 수밖에 없다는 체념 섞인 생존법을 표현합니다. 그러나 신안의 삶은 또다른 각자도생을 알려줍니다. 깨달을 ‘각’ 자에 섬 ‘도’자, ‘각覺자도島생 스스로 살다, 섬’이라는 메시지입니다. 달의 시간, 물의 때, 바다와 땅과 하늘의 움직임을 따라야 하는 섬의 삶은 우주의 이치를 깨달아 사는 ‘각자’覺者의 삶입니다. 저마다 각각히 그러한 깨달음이 있을 때야 생존하고 공존할 수 있습니다.” [2021 신안 만인보展 전시기획문 中]


그런 메세지를 건네려 말문을 연 전시장에서 만난 작품들을 소개한다.



“흑산 어린이 이율산”, 그림_전나영

그림 출연자: 흑산도 이율산·임혁주·송인선·전도영·이태경, 신안만인보 2회 中

흑산도의 좋은 점은 단연 자연이다. 바닷가에서 놀기 좋고, 집 앞만 나가면 바로 바다다. 흑산바다는 최고다. 청록색, 푸른색, 찐한 색, 아니, 볼 때마다 다르다. 육지와 가까운 비금 쪽 바다로 가니까 갈색바다, 컴컴한 바다였다. 새들이 많은 것도 좋다. 아침에 일어날 때, 하교 후 집에 갈 때 새소리가 들려온다. 인선이는 딱따구리, 도영이는 참새를 좋아한다. 혁주는 아는 새는 없다고, 태경이는 “새가 무섭다”고 움츠린다. 반면 율산이는 “전 유리딱새가 좋아요. 암컷은 갈색 수컷은 파란색, 참새보단 커요.” 율산의 아버지는 흑산의 새를 탐구하신다.


그린 이의 말: 아직도 학교를 다니는 저는 김해 율산초등학교에 근무합니다. 제가 율산초등학교 병설유치원 행복반에 다니는 아들에게 그림 검사를 맡아가며 흑산도에 사는 율산 님을 그린다니 재미있습니다. 신호등도 횡단보도도 없고 바다와 새소리가 가득하다는 흑산도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 그러다 율산 님을 마주치면 마치 아는 사이처럼 반갑게 인사를 건넬 것만 같아요.



“화가 전정호”, 그림_박나리

그림 출연자: 신의도/목포/광주 전정호, 신안만인보 6회 中

나는 판화 작업을 한다. 최근 몇 년간 특히 왕성하다. 고향 신안 역사를 판화에 담기로 결심한 건 8년 전이다. 고향에 갔는데 마침 하의농민항쟁추모제가 열리고 있었다. 농민운동기념관에 가보니까 관련 이미지가 없어 아쉽더라. 고모부로부터 하의도 농지 탈환의 역사를 자세히 들은 적도 있다. 그전까진 개요만 알았다가 긴 설명을 들으며 전율을 느꼈다.


그린 이의 말: 그림책 작가로 활동하며 도시에 살다가 아이들을 키우며 지리산과 섬진강이 어우러진 시골에서 살고 있어요. 죽은 가지에서도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창의력과 예술의 힘이 아이들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답니다. 가족과 함께 그림책을 만들며 도서관에서 그림책 만드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어요.



“玉島PUS”, 다중매체_이두성×소영권

그림 출연자: 맨손 낙지잡이 장인 송정찬, 신안만인보 5회 中

우리 윗대 형님들은 여객선이 제대로 안 다녀서 풍선(바람으로 움직이는 배)에 가마를 싣고 하루 꼬박 노를 저어서 목포로 나가 예식을 치렀다. 가다가 물때 안 맞고 바람도 안 불면 닻 내리고, 기다렸다 가고…. 고생스런 게 아니고 서러운 것이다. 옥도는 농사를 많이 짓는다. 나는 논이 1,800평, 밭은 3,000평 정도 된다. 농사일 하다가 심심하면 낙지 잡으러 다닌다. 한번 가면 30~40마리씩은 잡아온다. 낙지 잡는 기술을 누구한테 전수받은 건 아니고, 어릴 때 어른들 따라다니면서 배웠다.


그린 이들의 말: 이두성은 프랑스 문학 번역가로 알베르 카뮈 『이방인』, 『페스트』 등을 번역했습니다. 준비 중인 다음 번역 작품은 해양과학자와 낙지의 사랑 이야기인 Marie Berne의 『Le Grand Amour de la Pieuvre: 낙지의 위대한 사랑』입니다. 소영권은 조감도 및 벽화 작가이자 지역 인물 초상화가입니다. 음지에서 그리고 양지를 지향하지요.


섬길은 커브가 심하다. 풍화와 침식이 도저히 배겨내질 못하고 물러서게 만든 땅이니, 섬 땅의 심지는 그처럼 단단한 것이리라. 단단한 갈비뼈 사이사이로 난 길은 구불구불하고 깊숙이 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길 위에서 2021년 8월 13일, 신안 만인보展이 개막했다. 「만인보」를 통해 상상으로만 출연자들을 접했던 참여자들이 자신들의 그림 모델과 한 자리에서 작품을 감상함으로써, 우연한 인연이 뜻깊은 만남으로 거듭났다. 전시는 9월 5일까지 계속된다. [전남 신안군 자은면 둔장길 33-4 둔장마을미술관 / 0507-1371-8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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