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25일부터 26일까지 이틀 동안 '제1회 한국 현대문학자 대회'가 성균관대에서 개최된다. 한국문학 연구자가 주축이 된 이번 대회는 약 22개 학회, 기관, 학술 단체와 140여명의 발기인이 공동 주최와 후원으로 뜻을 모았다. 대회의 주요 목표는 ‘인문학의 위기가 가시화되는 현재, 파편화되고 고립된 연구자들’의 협력과 참여를 통해 학술생태계를 성찰, 회복, 발전시키는 데 있다. 이번 대회 아젠다를 '연대와 소통'으로 정한 이유이다. ‘길’도 ‘여행’도 삼켜버린 글로벌 신자유주의 시대에 연구자들의 '앎'과 '삶'을 연결하여 공동의 세계를 발견하고, 한국(문)학의 학문적, 사회적, 문화적 교류를 도모하려는 취지를 담았다.
2023년 7월에 대회조직위원회가 결성되자마자 대회 준비가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대학 내 인문학 전공 통폐합, 인문학 수업의 축소와 폐강, 시간 강사의 감원에 더해 인문학 연구비 감액 소식까지 연구자들의 분노와 절망이 공통 감각으로 작용했다. 더불어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연구 문화와 토론 및 공론이 부재하는 학술장에 대한 자성과 비판이 내적 동력을 강화시켰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학술 문화를 돌아볼 수 있는 여러 부대 행사와 전시, 그리고 연구자 중심의 플랫폼 설치 등이 준비되었다. ‘학회란 무엇인가’, ‘현대 문학자의 초상’ 등 연구자의 삶을 성찰할 수 있는 연구자 집담회와 ‘전국 세미나 자랑’과 ‘연구자의 서재’, ‘작가 북콘서트’ 등과 같이 연구 현장을 연결하고 동료를 발견하는 축제의 성격도 강화됐다.(https://krlt.modoo.at)
대회 조직위원회는 학술기획, 학술문화, 학술제도 팀으로 구성했으며, ‘지속가능한 대회’ 개최를 위해 기관 지원을 최소화하고 연구자의 후원으로 대회 재정을 마련했다. 대회 운영 역시 연구자의 자발적 참여와 협동의 방법을 찾아 ‘그림자 노동’을 최소화했으며 학회와 기관의 공동 주최로 학회 ‘연합’의 성격을 가시화했다. 또한 대학과 학회, 독립연구자와 연구 단체 등 다양한 소속 표기는 학술장의 다양성을 드러내는 퍼포먼스로 준비됐다. 한편, 지역을 넘어 연결하자는 기치 아래 서울, 경기, 전라, 경상, 충청, 강원은 물론이고, 일본과 프랑스, 미국 등의 학자들과도 연결했다.
1회 현대문학자 대회 ‘학술 기획’ 키워드는 '연구자 지리', '새로운 의제', '한국학'이다. '연구자 지리'는 연구자의 삶과 지식을 연결하는 키워드이고, ‘새로운 의제’는 현대문학자의 사회적 대응과 인문학적 성찰의 아젠다이며 ‘한국학’은 현대문학의 번역과 확장 속에서 선별된 이름이다. 이번 대회에서 주목할 것은 여러 연구자들의 대회를 준비하는 내내 연구자의 사유와 경험을 연결하는 커머닝에 의미를 부여하며 학술장 구성의 행위자로 참여하고자 한 것이다. 대회형식에도 약간의 변화를 줬다. 1,2 세션은 포스터 발표와 토론 집담회 형식이다. 짧은 시간 동안 여러 연구자들이 참여하여 공통의 의제를 잇고 더해가는 형식이다. 6명-9명의 발표자가 각자의 주제에 대해 발표한 뒤, 대회장에서 모여 각각의 사유를 연결하는 과정은 학술장 형성의 수행적 풍경으로 보여질 것이다. 3세션은 화상 회의와 상호 토론의 방식으로 지역과 소속의 경계를 가로질러 언어와 번역, 세계문학과 ‘한국(문)학’이 교차, 네트워크가 가능한 장으로 준비했다.
첫 번째 학술기획은 <한국현대문학의 새로운 의제와 미래>이다. 연구자들이 모여 '현대문학의 새로운 의제'에 대해 마인드맵한 결과인데 전반적으로 '기후 위기', '취약성', '돌봄', '커먼즈' 등 위험 사회와 탈진실 사회에 대한 인문학적 대응에 관심이 높았다. ‘새로운 의제’는 참신한 학술적 결과라기 보다 지속가능한 생성의 가치지향적 수사, 즉 근대 지식 '이후' 혹은 그 너머를 상상하며 삶과 세계에 개입하는 학술 연구의 방법론적 전환에 가깝다. 장애, 노년, 취약성 주제가 대항적인 서사의 가능성으로 모색되며 ‘돌봄’의 문학적 재현 역시 포괄적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또한 커먼즈를 화두로 반지성주의 양태와 SF와 기후소설에 대한 논의까지 탐색될 예정이다.
두 번째 학술 기획은 <현대문학자의 위치와 연구자의 지리: 연구· 실천· 행위>이다. '연구자 지리'는 학술 담론과 연구자의 위치를 연결시키는 주제로, 연구자의 신체와 지식의 배치를 역동적으로 탐색하는 기획이다. 학술장을 관찰, 증언하는 연구자의 지리로서 젠더, 체제, 지역, 가상/현실 등을 설정했다. 「남조선에서 북한 문학 연구하기」, 「2013년 이후 한국 퀴어소설의 장소 공간 지리」, 「지방 문예지의 역할과 탈지방화」 등에서 드러나는 바, ‘지리’와 ‘위치’는 은폐된 분열과 소외, 혹은 적대와 혐오를 가시화하기 위한 좌표인 동시에 구체적인 앎의 맥락이다. 이 세션은 「나는 누구이며 누구와 싸우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필두로 현대문학자가 무엇을 하는지, 다시 말해 행위자로서의 ‘연구자’에 대해 생각해 보는 자리가 될 것이다.
세 번째 학술기획 주제는 <한국학이란 何오>이다. 이 제목은 1917년 춘원의 '문학이란 何오'에 대한 오마주이자 패러디이다. '근대'의 초입에서 '근대'와 '문학'의 친연성을 가시화하며 '근대 문학'의 정체와 역할을 번역해 낸 문장을 지금 여기에 다시 가져오는 것은 포스트-근대 문학, 혹은 역사지리적 감각 위에서 동요하는 ‘한국학’에 대한 질문과 연동한다. 2024년 '한국학'은 ‘한국/학의 좌표 안에 놓인 '정체'와 '분야'의 명명이며, 글로벌 신자유주의 문화 안에서 'K 문학'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일이자 조선학과 단속적 관계를 갖는 한국학을 재정의하는 시도이다. 「북미 한국학의 현주소」, 「아시아 문학의 재래 : 일본의 K-문학/ 장르론의 주변」, 「한국학의 뿌리로서의 조선학과 미래의 한국학 연구 시론」 등의 발표 제목에서 드러나듯 '조선학', '한국학', 'K-문학' 등 각기 다른 지역에서 바라보는 '한국학'의 정체가 탐색될 것이다. 아울러 '한국학'을 둘러싼 담론, 번역, 표상 등의 문제가 포괄적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역사적으로 '문학자 대회'는 '문학(자)'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강조하는 명칭이었다. 1946년 해방 직후, 척박한 삶과 세계를 세우기 위해 ’시‘적이면서도 ‘극’적인 방식으로 문학자 선언을 했던 역사가 있다. 2024년 문학자 대회는 지금-여기의 삶과 세계, 그 폐허를 성찰하고 회복하고자 하는 마음의 결 위에서 준비되고 있다. ‘문학’에 뜨거웠던 마음으로 ‘인/문학’의 앎과 실천의 공론장을 다시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다. 앞으로 '한국 현대 문학자 대회'는 협력과 참여를 통해 학술생태계를 세우는 현대문학자들의 연대 회의이자 공통의 학술 의제를 논의하는 학회 연합으로 발전할 것이다. 이번 대회가 현대문학 중심의 20여 개의 학회가 '연합'하여 국내외 지역을 연결하는 한국(문)학 연구의 중심적 허브로 나아가는 첫 발이기를 기원해 본다. 어찌되었든 '현대문학자가 쏘아 올린 작은 선언' 혹은 작은 ‘길’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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