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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임의 미학 / 김동규

한국미학 개념사전이 존재한다면, 나는 ‘삭임’이란 말을 꼭 넣고 싶다. 한국미를 이해하는 키워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恨)과 관련해서 ‘풀이’라는 유사어도 쓰이지만, 삭임에 함축된 의미가 더 풍부해 보인다. 멜랑콜리 담론에서는 애도작업이 고통과 슬픔을 정제(카타르시스)하여 병적 우울의 상태로 나아가는 것을 막아낸다면, 한 담론에서는 삭임이 그와 유사한 일을 한다. 삭임은 한이 복수의 원한(怨恨)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아준다. 동시에 그것은 따뜻한 정한(情恨)으로 변모시키는 마음의 메커니즘이다.


판소리에는 시김새라는 장식음이 있다. 그것은 음고를 확정하기 어려워 악보에 담을 수 없는 ‘유동음’, 또는 그런 음을 구사하는 기교를 뜻한다. 소위 명창이라면 이 시김새에 능통해야 한다. 그런데 시김새의 시김은 삭임에서 온 말로 추정할 수 있다. 삭임의 고어가 ‘석다’인데, 그 말에는 썩다(부패) 또는 삭다(발효)라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설익은 소리가 아니라 고도의 예술성 있는 소리를 ‘곰삭은 소리’, 즉 시김새가 있는 소리라고 부른다. 이렇게 삭임이란 오랜 시간의 예술적 숙련이라는 뜻만이 아니라, 넓은 의미로 삶의 원한을 정한으로 녹여낸다는 뜻까지 담겨있다.


생물학적 측면에서 보자면, 삭임은 발효다. 발효란 유기물을 분해해서 에너지를 얻는 한 가지 방법이다. 생명체는 크게 두 가지 공정을 거쳐서 에너지를 얻는다. 일차적으로는 광합성이고 다음으로는 세포호흡이다. 엽록소를 가지고 있는 세균과 식물만이 광합성을 통해 빛과 물 그리고 이산화탄소를 가지고 포도당을 합성한다. 생명체는 세포호흡을 통해 광합성의 산물인 포도당을 분해하여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 통화, 즉 ATP(adenosine triphosphate)를 얻는다.


그런데 세포호흡에는 다시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산소를 이용하는 호흡이고, 다른 하나는 산소 없이 일어나는 호흡이다. 기본적으로 호흡은 연소(燃燒)와 유사한 작용이다. 산소와 결합하여 유기물에 담겨있는 에너지를 추출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산소가 충분히 공급되면 될수록, 완전 연소에 가까워진다. 반면 산소 없이 일어나는 발효는 불완전 연소에 해당하고, 발효물은 불완전 연소의 잔해물이다.



한국의 전통 음식은 대부분 발효식품이다. 김치, 된장, 다양한 젓갈류 등 다양한 종류의 발효식품이 존재한다. 발효의 주인공은 미생물들이다. 사실 발효와 부패는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작용인데, 전자가 인간에게 유해하지 않은 미생물이 일으킨 결과라면, 후자는 유해 미생물이 일으킨 결과다. 이런 점에서 발효식품이란 유해 미생물의 침입을 저지하는 유익한 미생물과 그들이 발효시킨 배설물을 먹는 셈이다.


이런 생물학적 사실에 비춰 볼 때, 삭임이란 미생물 같은 미지의 타자가 개입한 일이다. 타자의 보이지 않는 조력을 통해 소화시킬 수 없던 것(예컨대 우유; 점차 젖당 분해효소의 활성을 잃어버린 성인은 대부분 우유를 소화하지 못한다)을 소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삭임은 풍미가 뛰어난 음식을 만든다.


한의 정서는 멜랑콜리처럼 사랑하는 대상과의 이별에서 시작된다. 이별은 참기 힘든 슬픔과 고통을 야기한다. 멜랑콜리의 애도작업은 슬픔을 시원하게 배출함으로써 슬픔에서 벗어나게 한다. 일종의 카타르시스(배설) 작용이다. 반면 한에서의 삭임은 슬픔의 배출을 억제한다. 외부적 강요에 따른 수동적 억제이든 능동적 억제이든, 한의 경우 슬픔은 가슴 한켠의 항아리에 봉인된다. 그곳에서 오랜 숙성의 시간을 갖는다. 그 시간 동안 미생물 같은 보이지 않는 타자들(예컨대 슬픔이 앞을 가려 식별되지 않았던 주변인 혹은 자연물)이 활발히 치유를 돕는다. 원한을 정한으로 바꾼다.


여기서 관건은 언제든 또 다른 병인으로 돌변할 수 있는 타자들을 포용하고 그들과 공존할 수 있는 자로 스스로 변모될 때까지 고통스런 숙성의 시간을 견디는 것이다. 인고의 시간을 버텨낼 때 비로소 비가시적 타자는 훌륭한 조력자가 되며, 슬픔은 말갛게 곰삭을 수 있다. 원래 모습과는 전혀 딴판으로 변모할 수 있다. 여전히 원한의 자취는 남아 있지만,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격분은 아니다. 이미 삭임을 통해 몸의 수준에서부터 변신하였기 때문이다.


알브레히트 뒤러, <멜랑콜리아 I> (1514)

삭임은 멜랑콜리의 애도작업에서처럼 정신적인 차원에서 고양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온몸의 수준에서 변화시킨다. 어떤 크기의 슬픔에도 멜랑콜리의 주체는 온전히 보존되지만, 정한인(情恨人)은 삭혀지는 과정을 통해 질적으로 변신한다. 멜랑콜리가 나르시시즘에 바탕을 두었기에 그를 통한 근본적인 자기 변신이 불가능한 반면, 한은 사랑의 삭임 과정을 통해서 철저한 자기 변신이 가능하다.


멜랑콜리 담론에도 발효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대 서양의학의 4체액설에 등장하는 체내의 ‘검은 담즙(melancholy)’을 설명하면서, 그것을 포도주에 빗댄다. 포도주가 만들어질 때 거품(공기)이 발생하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을 성적 욕망으로 해석한다. “포도주의 힘은 공기에서 기인한다. … 이런 이유로 포도주는 사람들을 사랑하게 한다. 디오니소스와 아프로디테는 올바르게도 서로 연합된다. 그리고 멜랑콜리커는 보통 호색가이다.” 흥미롭게도 아리스토텔레스는 남성 성기가 발기하는 원인을 공기에서 찾았다.


최종 산물에 따라, 발효는 크게 두 가지 종류로 구분된다. 하나는 알코올 발효이고 다른 하나는 젖산 발효다. 포도주는 알코올 발효에 속하며, 김치, 된장, 젓갈을 비롯한 한국 전통 음식들은 젖산 발효에 속한다. 같은 삭임이라도 서양은 알코올 발효를, 한국은 젖산 발효를 모형으로 삼았던 셈이다. 오직 알코올 발효에서만 거품, 정확히는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아프로디테의 탄생 신화에도 등장하는 거품은 부풀어 올랐다가 순간 극적으로 사라지는 성적 욕망과 아름다움의 무상성(반전의 비극성)을 상징한다면, 한의 삭임에 이런 거품은 없다. 자극과 흥분을 최고점으로 올렸다가 일순간 추락하는 데에서 오는 짜릿한 쾌감은 없다. 대신 삭임에는 깊고 융융하고 질리지 않는 긴 여운의 맛(멋)이 있다.


김동규(철학자, 한국연구원 학술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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