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인간 박원순을 애도하는 방식 / 김헌주

2020년 7월 10일. 시민운동계의 대부였으며, 현직 서울시장인 박원순이 유명을 달리했다. 본인이 남긴 유서와 경찰의 현장 검증을 통해 사인은 자살로 판명되었다. 오랜 기간 많은 사랑을 받았던 시민운동가이자, 정치인이었기에 그의 죽음이 몰고 온 파장은 엄청났다. 2009년의 노무현, 2018년의 노회찬을 떠나보내며 오열했던 사람들은 그때와 비슷한 충격을 받았고 또 진심으로 애도했다.

출처: https://www.bbc.com/korean

그러나 박원순의 극단적 선택이 여비서 성추행 혐의에 대한 고소 직후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장례절차와 조문을 둘러싸고 많은 논쟁이 야기되었다. 정의당 국회의원 류호정과 장혜영은 공개적으로 조문 거부를 선언했고, 이후 조문으로 대표되는 애도의 방식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다. 망자의 일생이 사회에 대한 헌신의 연속이었고, 동시에 생의 마지막에 큰 의혹을 남기고 떠났기에 이 논쟁은 어쩌면 불가피한 것이었다. 조문 논쟁은 세대별 가치관의 차이에 기반하여 진행되었다. 망자에 대한 전통적 윤리와 피해자에 대한 연대 의지가 대립했고, 이것은 곧 전통적 윤리와 새로운 윤리의 충돌을 의미했다.


더 나아가 박원순에 대한 공과(功過) 문제가 부각되기도 했다. 박원순이 설사 죄가 있더라도 그가 한국 사회에 끼친 공헌과 선한 영향력을 인정하고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예컨대 한 대중 역사학자는 박원순이 “부천서 성고문 사건을 세상에 알렸고, ‘성희롱’이라는 개념을 정착시켰으며,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문제를 세계에 알리는 데에도 큰 공헌을 했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가 주도하여 만든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희망제작소 등은 우리 사회 시민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음을 상기시키면서 조문 거부 흐름을 비판했다. 또한 오랜 기간 실천과 학문을 겸비한 학자로 존경받았던 한 교수는 “박원순 같은 사람은 당장 100조 원이 있어도 복원할 수 없다”라는 논리로 그의 공(功)을 강조했다.

박원순에 대한 이들의 ‘엄호’는 사회적 인간 박원순을 잃은 아픔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 과정에서 피해자를 모두 지워버렸다. 그것은 피해자에 대한 연대 의지를 비난하고, 그의 가치가 피해자의 아픔보다 더 중요하다는 투의 어법에서도 드러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사회적 인간 박원순에 대한 애도로 적합한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부천서 성고문 사건을 알리고 성희롱 개념을 정착시킨 그의 활동을 모독하는 것이다. 진정 그를 애도하고 싶었다면 사적 애도와 별개로 사회적 인간 박원순을 어떻게 애도할 것인지, 그 질문을 던졌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동지’를 잃은 슬픔에 빠져, 사회적 인간 박원순을 진정으로 애도할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 버렸다.


한편으로 피해자에 대한 인신공격도 가속화되었다. 한 시사프로그램 아나운서는 “4년 동안 대체 뭐하다가 이제 와서 갑자기 변호사와 함께 세상에 나서게 된 건지도 너무 궁금하네요”라고 발언했다. 또 다른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는 “미투 사건은 과거 있었던 일을 말 못 해서 밝힌다는 취지로 신상을 드러내고 하는 것"이라며 "피고소인(박원순)은 인생이 끝이 났는데 숨어서 뭐 하는 것인가. 4년씩 어떻게 참았는지도 충분히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이게 이상한가"라는 발언으로 피해자를 비난했다. 그리고 이러한 피해자에 대한 비난 및 2차 가해는 각종 커뮤니티, SNS 등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다.


출처: http://hotline.or.kr

많은 이들이 피해자가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4년 동안 고소를 하지 않았으며, 증거가 부족하니 피해를 제대로 증명하라고 요구한다. 과연 피해자는 그동안 일부러 고소를 하지 않은 것일까. 피해자가 직접 얼굴을 드러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비슷한 위치에 있었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미투 당사자인 김지은의 사례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미투 이후의 경험을 서술한 책 <<김지은입니다>>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꼭 이름에, 얼굴까지 드러내놓고 이야기해야만 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미투 이후 나의 일상은 산산조각이 났고, 파괴되었다. 지금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 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많은 미투 당사자들이 겪고 있는 ‘미투 이후’의 삶의 모습이다. 어떤 이에게는 왜 얼굴을 드러냈냐고 묻고, 또 어떤 이에게는 왜 얼굴을 드러내지 않느냐고 묻는다. 이 현실이 피해당사자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김지은은 또한 안희정 모친상 이후 온라인에서 이루어진 자신에 대한 광범위한 2차 가해에 대해서 이렇게 증언했다.

“공포스러운 한 주였어요. 심리적 압박을 느끼면서 온몸이 마비되는 듯한 느낌이었죠. 호흡곤란이 와서 병원을 찾기도 했어요. 보호받으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기대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죠. ...(중략) 유죄 판결 뒤에도 변함없는 (가해자의) 위세와 권력의 카르텔 앞에서 두려움과 무기력함을 새삼 다시 느꼈어요. 게다가 여전히 전 온라인에서 화형대 위에 사로잡힌 마녀였죠. 불은 꺼지지 않고 더 활활 타오르고 있었어요. 언제쯤 이 고통이 끝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지금, 피해자가 겪고 있는 심정이 이와 같을 것이다. 망자에 대한 애도가 산자에 대한 가해를 정당화할 순 없다. 그리고 사회적 인간 박원순의 일생은 이런 피해자들과 늘 함께하는 것이었다. 박원순에 대한 진정한 애도는 피해자를 의심하고 추궁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와 연대하고 그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이라 확신한다. 이것이 사회적 인간 박원순에 대한 내 애도의 방식이다.


출처: 연합뉴스

김헌주(연세대 근대한국학연구소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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