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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해의 철학> 리뷰1: ‘분해 세계’ 속에서 ‘분해에 저항하는 세계’를 살아가는 인류에게 외치는 목소리에 공감하며… / 김응빈

「분해의 철학: 부패와 발효를 생각한다」, 중언부언하는 책 제목이 평소 내 생각을 대변하는 듯하여 반갑다. 분해란, 어떤 물질이 쪼개져 더 간단한 물질 여러 개로 바뀌는 현상이다. 그 결과물이 사람에게 유익하면 발효, 불쾌하거나 해로우면 부패라고 부를 뿐, 이 세 용어는 기본적으로 같은 말이다. 생태계에서 분해의 주역이 미생물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터라 책 내용을 어느 정도 지레짐작하고 첫 장을 넘겼다.



저자는 인간·환경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현직 교수란다. 무언가 통하는 직감이다. 그리고 이내 그 직감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생겨나면서 손상된다’라는 프롤로그 제목 역시 내 생각을 달리 표현했기 때문이다. 나는 생물학 강의를 할 때, 이렇게 말하곤 한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세포 ‘수정란’에서 출발했다. 현재 모습은 무수한 세포분열과 분화를 거친 결과물이다. 생물학적으로 엄밀히 말하면, 체세포는 분열할 때마다 늙어간다. 비록 우리가 어느 순간까지는 그것을 성장이라고 부를지라도 말이다.


책을 읽으며 수시로 무릎을 쳤다. 어디서나 부패와 발효를 생각하고 분해를 바라보는 저자의 모습에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숲속 오솔길을 걷다가 덤불 속에 덩그러니 쓰러져 있는 나무를 종종 마주친다. 때로는 나무 표면에 줄지어 나 있는 버섯이 눈에 들어온다. 언뜻 보기에 커다란 비늘들이 일어선 것 같아 혹자에게는 징그러울 수 있다. 그러나 미생물 공부를 업으로 하는 나는 죽음과 삶을 연결하고 있는 미생물 모습에 이끌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기 일쑤다.


버섯은 ‘진균’, 쉬운 말로 곰팡이에 속하는 미생물이다. 곰팡이 하면 흔히들 상한 음식에 핀 가는 실타래 같은 모양을 떠올린다. 이렇게 팡이실(균사)을 뻗어내는 곰팡이를 모양 그대로 ‘사상균(絲狀菌)’이라고 부른다. 버섯은 팡이실이 겹치고 두꺼워지면서 위로 자란 것으로, 이를테면 팡이실이 겹겹이 쌓인 구조체이다. 미생물학에서는 나무에 피는 버섯을 일컬어 ‘목재부후균’이라고 한다. 부후[썩을 부(腐), 썩을 후(朽)]는 썩는 현상 또는 과정을 뜻하는 한자어이니, 목재부후균은 글자 그대로 나무를 썩게 하는, 곧 분해하는 곰팡이 무리를 말한다. 사실 우리가 즐겨 먹는 버섯 거의 다가 목재부후균이다. 이 대목에서 인상적인 책 구절을 그대로 옮겨본다.


“인간도 입에서 항문까지 하나로 이어지는 튜브[관]를 체내에 갖고 있어 부엌과 화장실이 연결되어 있다. 이 내재하는 외부인 공간에서 산 것이나 죽은 것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소화기관이 긴 만큼 먹을 때와 배설할 때 시간적으로 차이가 조금 날 뿐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역시나 인간에게도 분해는 깃들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생태계’는 생물 구성요소와 비생물 구성요소가 상호 의존적으로 통합된 시스템이다. 쉽게 말해서 살아 있는 생물과 이를 둘러싼 주변 환경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범위를 정하기에 따라 생태계의 규모와 종류는 천차만별이다. 예컨대 우리 몸이나 지구는 다 같은 생태계이다. 크기만 놓고 보면 비교 불가이지만 기본 작동원리는 똑같다. 생태계에서 모든 생명체는 결국 ‘먹고 먹히는 관계’에 놓여있다. 생태학에서는 이를 ‘먹이그물’이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생태계의 생물 구성요소는 생산자·소비자·분해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먹이그물이라는 에너지와 영양물질의 이동 얼개를 통해 서로 연관되어 있다. 생산자는 보통 광합성으로 영양분을 만들어 다른 생명체에게 공급한다. 자체적으로 생존에 필요한 영양분을 생산할 능력이 없어서 생존을 위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생산자가 공급하는 영양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생물은 모두 소비자에 포함된다. 자칫 동물만을 소비자로 간주하기 쉬우나, 기능적으로 소비자와 분해자의 구분이 애매한 경우가 많다. 요컨대 동식물 사체를 분해하는 미생물은 소비자인 동시에 분해자이다.


생산자에서 출발한 물질은 어디를 통과하든지 간에 최종적으로 분해자에게 모였다가 다시 생산자로 돌아온다. 궁극적으로 모든 생명체는 죽음을 맞이하고, 그 주검이 분해되어 생산자가 새로운 영양분을 만드는 원료로 다시 쓰이기 때문이다. 산 자와 죽은 자를 연결해 주는 분해자 역할은 세균과 곰팡이를 비롯한 미생물만이 해낼 수 있다. 이렇게 미생물은 생물권 전체의 물질순환을 관장하고 화학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모든 생명체의 존립에 필수적인 역할을 은밀하게 수행하고 있다. 한마디로 지구의 눈에 보이는 모든 삶은 보이지 않는 미생물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생물학적 사실을 알리고자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구 생명은 미생물과 배설물로 연결되어 돌아가는 하나의 거대한 연결망이라고 힘주어 말하곤 한다. 나는 딱 여기까지다. 그런데 <분해의 철학>이 내 사고의 한계를 뛰어넘게 해주었다.


저자는 일상 경험에서 통찰력을 얻어 분해에 철학을 불어넣어 새로운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창을 열어주었다. 일례로 다정한 ‘청소 아저씨’ 따스한 손길이 만들어 낸 쓰레기의 변신을 통해 신품 중독에 걸린 자신을 반성하고, 나아가 우리가 모두 분해라는 대사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그는 ‘분해’를 생태학적 개념에서 접근하여 철학과 문학, 역사 등 다양한 학문을 넘나들며 인문학적 고찰로 확장하면서, 가장 위험한 세계는 아무것도 썩지 않는 세계라고 역설하고 있다. 저자의 해박함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솔직히 내게는 과도한 지식 잔치가 울렁증을 일으켜 집중력이 떨어지기도 했음을 고백한다. 어쩌면 이건 내 문해력 탓일 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책 마무리에서 ‘분해(分解)’를 이루는 ‘해(解)’라는 글자가 ‘푼다’ 또는 ‘풀린다’를 뜻하는 고대 일본어에서 유래했다고 밝히고 있다. 원형을 상실하고 뿔뿔이 흩어짐이 아니라 다시 맺어질 거라는 예감 속에서 분리되어 간다는 의미가 담겨있어서 서로 ‘오고감’을 표현하는 개념이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한마디로 「분해의 철학」은 자연 생태계에서 분해는 단순히 해체나 파괴가 아니라 새로운 창조를 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지구 전체로 보면 생명체가 살아 숨 쉬는 뭍과 물 그리고 하늘을 아우르는 공간, 곧 ‘생물권’은 지구 표면의 얇은 층이다. 그리고 이런 생물권의 극히 일부를 차지하며 사는 인간이 이곳의 주인 행세를 해왔다. 이제 인간도 지구 생태계를 이루는 일원일 뿐이라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인간중심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분해 세계’ 속에서 온전히 살아가기 어려울 것이다. 이 책은 지구 생명체와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 인간으로 해야 할 역할을 곱씹어 생각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힐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김응빈(연세대 시스템생물학과 교수, https://www.youtube.com/@kimyesb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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