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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밭 - 민주주의를 기념하여 / 손영식

최종 수정일: 2023년 9월 14일


임옥상 「보리밭」

1) 보리밭 위로 불쾌한 얼굴을 쳐들고 째려보는 인물, 대체 그는 누구인가? 작가는 누구인지 말하지 않는다. 감상자가 마음대로 지으라는 것이다.


나는 그를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심성이 천사처럼 고운 백성이 하는 것이 아니다. 성질이 고약하고 더러우며, 참지 못하는 백성들이 한다. 이기심이 만땅이고, 불공평을 참지 못한다.


독재의 본질은 가산(家産) 국가이다. 최고 권력자가 독재자가 되어서 국가를 사유화하려는 것이다. 나라 전체를 그 개인의 재산, 그 집안의 재산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승만도 박정희도 그러했다.


민주주의의 백성들은 그것을 참지 못한다. 니가 뭔데 독식하려 드냐? 나도 똑같은 권리를 가졌다. 나도 좀 가져야 하겠다. - 이런 이기심은 투쟁의 동력이 된다. 고약한 심성은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는 싸움도 불사한다. 이런 극렬한 저항에 독재자도 손을 들게 된다.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영국과 미국에서 발전했다. (프랑스 대혁명도 있다.) 영미의 특징이 경험론이다. 경험의 단위는 개인이다. 개인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자유’가 필요하다. 따라서 ‘경험론 개인주의 자유주의, 이기심과 공리주의’는 논리적으로 같다. 이를 기반으로 해서 민주주의가 성립한다. 영국은 800년 넘게 왕에 대해서 신하들이 싸운다. 그 결과가 영국 민주주의이다.


2) 언젠가 티브이를 보니, 북한에 가서 찍은 북한 사람들이 나왔다. 못 먹고 굶어 죽어도 자존심이 가득하다. 김일성 수령 아래에서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어라!’ 하면서 살고 있다. 저렇게 몇백만이 굶고 죽고 하는 상황에서 국가에 대해서 자존심을 가지며, ‘더 부러울 것이 없다’ 하는 저 천사처럼 비단결처럼 아름다운 마음씨. 전체를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개인을 기꺼이 희생하는 저 아름다운 마음. - 정말 눈물겹고 정이 많다.


그래서? 그러니까 저런 독재를 참고 사는 거다. 마음씨가 저리 비단결 같은 사람들은 절대로 민주주의를 할 수 없다. 그냥 노예로 사는 수밖에 없다. 굶어도 부러울 것이 없으니, 굶어 죽어야 한다. 200만이 굶어? 우리 같았으면 청와대 쳐들어가서 다 때려 부쉈을 것이다.


드라크루와, 자유의 여신

3) 프랑스 대혁명을 기려서 드라크루와는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그렸다. 저렇게 옷을 입은 여자가 실제 데모와 싸움을 이끈 것은 아니다. 프랑스 대혁명 때는 잔 다르크가 없었다. 드라크루와가 생각하는 민주주의, 혹은 민주주의의 원동력을 바로 그런 여신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자면, 김대중이 말했듯이,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이다. 풀로 치자면, 인동초(忍冬草)이다. 저 여자가 과연 저 치열한 싸움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너무 관념적인 미화를 한 그림이다.


그의 그림도 훌륭하다. 그러나 나는 그 그림과 맞먹거나, 그것보다 더 나은 것이 임옥상의 ‘보리밭’이라 생각한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의 본질을 보여주며, 동시에 그것을 기리고 찬양하는 그림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민주주의의 본질을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크루와의 그림은 민주주의를 낭만적으로 여신으로 그렸다면, 임옥상은 민주주의의 원동력인 백성의 자화상을, 그 자의식을 잘 표현하고 있다.


민주화 시대에 걸개그림 등 민중 미술이 유행했다. 임옥상은 그 중 하나이다. 우리가 그 대단한 민주화를 이루었던 그 시기를 기념해야 하지 않는가? 이래서 나는 임옥상의 이 그림을 기념비적이라 생각한다.

공재 윤두서 자화상

또 하나, 공재의 자화상은 전라도 지식인의 자의식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나는 조선시대 그림을 별로 치지 않는다. 특히 산수화를 보면, 저런 익명의 그림이 무슨 의미가 있냐 싶다. 정선의 금강산 그림이나, 한강 혹은 인왕산 그림도 그렇다. 김정희의 「세한도」를 보면 정말 한심하다. 저런 게 그림인가?


동시대의 유럽의 그림들과 겨룰 수 있는 조선 시대의 유일한 작품은 윤두서의 자화상 뿐이다. - 이것이 나의 생각이다.

5) 추사 김정희의 두상


제주도 대정에 가면 승효상 씨가 설계한 추사 기념관이 있다. ‘세한도’를 본뜬 이 기념관의 2층에 올라가면 덜렁 김정희의 두상만 있다. 어둠컴컴한 속에 두상은 앞을 내려다본다. 이는 임옥상 씨의 작품이다. 물론 모티브는 ‘보리밭’이라 나는 생각한다. 그 불쾌한 인물이 떠오른다.


김정희 상반신, 추사 기념관

김정희는 50대에 윤상도의 상소문 사건에 연루되어 고문을 받다가 친구 조인영의 상소로 간신히 제주도로 귀양 가서 8년 3개월을 살고, 63세에 석방된다. 그리고 67세에는 함경도 북청에 유배 갔다. 이듬해에 풀려나서 과천에서 살다가 4년 뒤에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그가 유배를 간 이유는 세도 정치 싸움이라 봐야 한다. 그는 명문 집안에 명석한 학자로 소문났다. 안동 김씨 세도가는 그를 라이벌로, 자신들의 권력을 약탈할 자로 본 것이다. 조선에서 유배를 보내는 기준은 서울에서 거리이다. 예컨대 정약용은 강진으로, 정약전은 흑산도로, 정약종은 사형을 당한다. 서울에서 가장 먼 곳이 저승이다. 그다음으로 먼 곳이 제주도와 북청이다.


결국 김정희를 죽이려 했지만, 감하여 저승 바로 앞인 곳으로 보낸 것이다. 가서 죽으라는 것이다. 권력이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제주도에서 쓸쓸히 살면서 추사체를 완성한다. 승효상 씨와 임옥상 씨는 그런 추사를 일종의 투사로 본 것 같다. - 그러나 그는 대체 무엇을 위한 투사였나?


그는 당대의 문제와 싸운 이가 아니다. 권력을 독점할 세도 가문이 될 유력한 후보였을 뿐이다. 그렇다고 그가 학문적으로 별 업적을 남긴 것도 없다. 단지 서예 뿐이다. 그의 서예도 글자가 담고 있는 내용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단지 글자체가 예쁘다는 것이다. 동국 정체를 비판하고, 중국 청나라의 예서체의 연장선인 추사체를 만든 것이다. 그가 살던 1800년대에 아직도 한문 글꼴에 힘을 쏟은 반면, 시대의 대세가 될 한글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그의 「세한도」를 보면 쓸쓸함은 느껴진다. 그렇다고 그게 국보가 될 명작인가? 이는 예술에 대한 모독이다.

6) 현상학

‘현상학’이라는 말은 수상하다. 현상은 내 눈 앞에 펼쳐져 있고, 눈 뜨고 귀 열면 보고 들린다.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지각되는 것이 현상이다. 그런데 ‘현상학’? 그렇다면 과학적 연구 방법론인가?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과학적 관찰 실험과 수식화를 혐오하는 학문이다.


대체 그렇다면 현상학은 현상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현상은 눈 뜨고 귀 열고 지각하면 되는 것 아닌가? 후설은 그것을 거부하고, ‘환원’을 제시한다. 현상을 지각한 내용을 내 마음에 담고, 다시 내가 내 마음속에 담은 현상들을 되새김질하자는 것이다. 아니 그냥 보고 들으면 되지, 굳이 마음에 담아놓고, 그것을 다시 씹어야 하는가?


결국 현상학이란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내가 보고 들었던 것들을 마음에 담고, 그것을 다시 곰곰 씹는 것이다. 씹으면서 그것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내가 감각 지각한 세상은 스쳐 지나간다. 그냥 억겁의 인연이 지나갈 뿐이다.


그러나 내가 그것을 씹고 음미하면서 나는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김춘수가 말하듯이, 내가 이름을 지어 주었을 때, 그것은 나에게 다가온다. 하나의 존재가 된다.


정태춘의 「촛불」 - 나를 버리신 내 님 생각에, 오늘도 잠 못 이루며 촛불만 태우노라. 이 밤이 다 가도록. - 이 역시 현상학적 환원이 아닌가?


예술 작품이란 ‘이야기’가 붙어야 비로소 그 존재를 완성하게 된다. 고흐의 마지막 작품 “까마귀가 나는 밀밭”도 그의 비극적 인생이라는 이야기가 없다면 그렇게 명작이 될 수 있었을까? 이야기는 의미이다. 의미는 다시 작품을 완성한다.


손영식(울산대 철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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