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종산행(3): 인터넷산악회의 진짜 산행 / 김보슬

마지막으로 산에 간 것이 7월이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뱀 한 마리를 마주쳤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살아 움직이는 뱀을 발 아래에서 목격한 것은 처음이었다. 길이가 1미터는 넘는 것 같았는데. 잠시 혼비백산하고 보니, 뱀이 서둘러 달아나려는 듯한 움직임을 취하고 있었다. 나보다 녀석이 오히려 더 놀란 것 같아, 이내 무섭기보다 측은했다.

왜 일찍이 산에서 뱀을 본 적이 없었던 것일까. 어떤 눈과 마음이었을까. 기껏해야 도시인이 오룰 수 있는 정도의 산은 뱀마저 떠나는 것일까. 들리는 소문에는 미술가 최황이 등산을 다닌다고 했다. 무슨 협찬을 받아 산악 프로젝트를 한다는 것이었다. 최황이라면 <박원순개인전> <광장/조각/내기> 등에 참여한 인물이다.

산행 시리즈의 마지막 편의 주인공이 그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개를 받아 서면으로 그에게 가 닿았는데, 그는 일면식 없는 이에게 아낌없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최황: 시각예술을 하고 있습니다. 조금 한가해 보이는 표현일 수도 있는데, 작업을 하면 할수록 이 세계가 저에게 하나의 거대한 창고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본적으로 작가는 진지하든 괴짜든 오타쿠적이든 하나의 엄연한 연구자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작업실이라 부르는 연구실과 연결된 창고가 하나씩은 다 있죠. 저는 이 창고에서 ‘사회’라고 적힌 박스를 열고 거기서 무언가를 꺼내 살펴보는 걸 즐겼어요. 이 박스에 들어있는 것들이 제 작업의 재료로 활용되곤 했습니다. 도시의 개발 문제를 재료로 사용한 적도 있고, 서울의 부동산 가격을 재료로 사용한 적도 있고, 한국의 공공미술 제도를 재료로 사용한 적도 있고, 국가보안법과 간첩조작사건을 재료로 사용한 적도 있었죠.

그러다 코로나라는 전 지구적 재난 상황은 모두가 어떤 변화나 적응을 체화해야 하는 시기였어요. 살짝 다른 카테고리에 있는 박스로 눈을 돌렸지요. ‘문화’라는 박스엔 어떤 것들이 들어있나 궁금했습니다. 사회라는 소재가 조각가의 FRP나 화가의 독성 미디엄처럼 인체에는 해로운 물질이라서 만지면 만질수록 작가 본인에겐 손해인 데에 반해, 이 박스는 사회라는 박스만큼 유해하진 않죠. 그래서 요즘은 문화현상을 잡아당겨 작업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한 가지는 한국의 등산문화고요. 요즘은 K-등산문화를 가지고 시각예술을 연구 중입니다.

나: 그 얘기 좀 더 자세하게 들어보죠, 등산문화. 그걸 택한 이유, 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이름, 함께하는 참여자들, 또는 자랑하고 싶은 점들 무엇이라도 자유롭게 들려주세요.

최황: 이 인터뷰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저는 저를 두 종류의 정체성으로 나누어 소개해요. 예술가이자 클라이머라고요. 사실 일반적인 의미의 등산은 굉장히 어렸을 때부터 즐겼습니다. 아마 초등학교 저학년 때 관악산을 단숨에 올라가 봤을 거예요. 중학생 때는 속리산에 간 적이 있는데, 한겨울 새벽녘에 안개가 자욱한 향나무숲에서 맡았던 향기가 굉장히 신비로웠어요. 그 공감각적 경험이 산을 좋아하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죠. 고등학생 때는 가출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일주일 동안 설악산을 여행했어요. 제가 졸업한 대학이 국립공원과 맞닿아 있어서 학부생 때는 공강시간이 길면 짧게라도 산에 다녀오곤 했어요. 그러다 대략 10년 즈음 전에 암벽등반을 시작했어요. 인공암벽에서 하는 스포츠로서의 클라이밍이 아니라 진짜 바위에서 하는 모험으로서의 클라이밍을 즐기는 아마추어 클라이머죠. 전국 각지의 암벽을 등반했어요.

이런 정도면 사실 등산이나 등반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산 자체와 산을 이용하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굉장하지 않겠어요? 그러다 정말 어느 날부터 갑자기 산에 20대와 30대가 많이, 자주 보이기 시작하더니 결국 등산객 문화 집단에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더라고요.

그게 대충 2018년부터예요. 사실 그때부터 산행 프로젝트를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그때는 개인 작업으로 풀어낼 생각이었는데, 그렇다 보니 지지부진했죠. 혼자 산에 다니면서 뭘 끄집어낸다는 것이 그렇게 효율적이지 않더라고요. 암벽등반 같은 건 당연히 혼자 할 수 없는 것이고요. 그렇게 잠정 중단에 처했던 등산문화 연구를 올해 3월 즈음 다시 시작하게 된 건 관심이 있는 동료들을 만나게 되면서예요. 아예 산악회를 만들었죠.

이렇게 탄생한 ‘K-등산문화 연구모임’의 이름은 <인터넷산악회>입니다. 아시다시피 인터넷 산악회는 1990년대 말부터 네이버와 다음 등의 인터넷 카페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산악회를 뜻하는데,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입니다. 저는 한국의 현대 등산문화를 1세대, 2세대, 3세대로 나누는데, 한국전쟁 이후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 등산문화의 주류였던 엘리트주의 산악인들을 1세대로, IMF 시대라 불리는 국제 금융위기 당시 실직 후 산을 다니기 시작한 사람들을 2세대로, 현재 인스타그램에서 ‘#등산스타그램’이라는 해시태그를 올리는 사람들을 3세대로 규정합니다. 이 중 2세대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인터넷 산악회’죠. 전대의 산악인들과 달리 산에서 술판을 벌이며 놀고, 휴대용 카세트로 뽕짝 틀고 다니고, 산에서 연애하고, 형형색색의 등산복을 입고, 서로 이름 대신 닉네임을 부르고. 이 모든 걸 한국 사회는 ‘추태’ 혹은 ‘꼴불견’으로 평가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인터넷 산악회의 회원들이야말로 등산을 대중문화로 바꿔 놓은 이들이라고 해석합니다. 이전의 엘리트주의 산악인들이 쉽게 갈 수 없는 히말라야의 고산을 향했다면 이들 2세대 등산객들은 반대로 아무나 할 수 없는 등산의 대중화를 손수 이뤄냈던 거죠.

적어도 한국의 등산문화를 이해하고 연구하기 위한 프로젝트라면 인터넷 산악회에 뭔가 헌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엘리트주의 산악인들에게 그랬던 것처럼요. 그래서 이 프로젝트 모임의 이름을 <인터넷산악회>라고 지었어요. 그렇게 이름부터 지어둔 후 그냥 “나 이러이러한 거 하려고 하는데 같이 하실 분?” 정도의 투로 주변 분들에게 산악회 설립 사실을 알렸더니 생각보다 재미있어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시각예술가, 만화가, 디자이너, 활동가, 기획자 등 다양한 분들이 합류해 등산을 다니고 있어요.

<인터넷산악회>의 활동 목적은 명료합니다. 등산문화 연구를 위해 실제로 산악회가 하는 대부분의 것들을 다 경험해보고 이 활동을 통해 유‧무형의 결과물을 만들어내자는 겁니다. 그게 전시가 될 가능성이 가장 크죠. 나아가 출판이나 다큐멘터리 영화 같은 것들로 이어질 수도 있고요. 마냥 뜬구름만 잡고 있는 건 아닙니다. 대단한 파트너를 뒀거든요. 한국 등산문화와 깊은 연관이 있는 아웃도어 브랜드가 우리와 파트너십을 맺었어요. 우리는 대기업의 후원을 받아 산에 다닙니다.

나: 네, 대기업의 후원을 받는다는 소문에도 깜짝 놀랐어요. 상품에 마땅히 어울리는 예술가, 활동가를 매칭했다는 게 신선합니다. 기업의 콜라보 제안을 받는 직업적 여행가들도 많아지고 있는데, 저는 ‘빠니보틀’이라는 여행 유튜버를 즐겨봅니다. 그는 여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일상 속 어디에서나 얻을 수 있다고 말해요. 여행이 재미있어서 할 뿐이지, 여행만이 선사할 수 있는 깨우침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라고요. 산행은 어떤가요? 산에서 땀 좀 흘려보면 삶이 어때요?

최황: 일면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기는 합니다. 언젠가 지인 중 하나가 대기업에 사표를 쓰고 나와서 세계일주를 준비하고 있을 때였어요. 왜 그런 생각을 했냐고 하니까 ‘나를 찾는 여행’을 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안타깝지만 일상을 체화하며 찾아내지 못한 자아가 이국적 풍경 속에 놓인 상황에서 갑자기 발견될 것 같지는 않았어요. 아니나 다를까, 인도의 빈민가를 여행하다가 아이들을 촬영하고는 페이스북에 올려 세상에서 가장 맑은 눈망울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노라는 글을 올리더군요. 자신의 여행지가 현지인에겐 삶의 터전일 거라는 생각을 못했던 거죠. 산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북한산 인수봉이나 설악산 울산바위를 목숨 걸고 등반해도 마찬가지예요. 이건 정말 등산이나 등반 자체에 관한 애정 때문에 하는 거지 거기서 깨달음을 얻으려고 하는 건 아니거든요. 천길 낭떠러지의 화강암벽 한복판에 온 힘 다해 가까스로 매달려서 드는 생각이라고는 ‘지금 왼발을 옮겨도 될까?’ 정도입니다. 하하하.

다만 저는 여행이든 등산이든 재미만을 추구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산, 나아가 자연을 대하는 태도와 맞닿아 있는 문제라서요. 인간이 왜 산에 올라야 하느냐, 혹은 인간이 어떻게 산을 이용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강도 마찬가지고 바다도 마찬가지겠죠. 2018년, 한국은 동계올림픽의 사흘짜리 스키 경기를 치르기 위해 500년이나 보호림으로 지정돼 철저하게 지켜지던 가리왕산의 원시림을 밀어버렸어요. 아니, 지척에 널린 게 숲이고 산인데 가리왕산만 원시림이냐고 하는 분들이 있으실 것 같은데, 한반도의 숲은 조선 중기에 이미 거의 민둥산이었어요. 당시엔 연료가 나무뿐이었으니, 조선인들이 600년 동안 태운 땔감 양이 어마어마했겠죠. 당시 호랑이도 많았으니 호랑이 퇴치 목적까지 겹쳐, 벌목은 전국적으로 엄청나게 일어났습니다. 보다 못한 조선 왕실에서 보호림을 지정해 사람의 출입을 철저히 막았던 곳이 있었어요. 그게 가리왕산입니다. 전국의 헐벗었던 산들은 1970년대 박정희 정부가 산림청을 설립해 펼친 대대적인 나무심기 운동을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된 거고요. 이런 서사를 소개하는 이유 역시 인간이 산을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는 질문의 중요함을 강조하기 위해서예요. 평창 동계올림픽은 인간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방법으로 산을 대하는지를 고스란히 드러냈던 사건이죠.

암벽등반을 하다 보면 일반적인 등산로를 한참 벗어나 정말 빼곡한 숲을 기어오르다 바위에 도착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럴 때면 거기가 온갖 야생동물들의 터전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됩니다. 올가을에도 제 옆을 기어가는 유혈목이(뱀)와 마주치기도 했고 이 인터뷰를 하기 직전 주말엔 큰딱따구리가 저를 보고 놀라 날아가는 걸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저는 이내 좀 미안해져서 인간의 흔적일랑 가급적 남겨두지 않으려고 애를 써요. 눈에 보이는 쓰레기들을 주워가며 등반합니다. 이런 감각은 일상적으로 마주할 수 있는 건 아니죠. 깊은 숲에 들어가야 겨우 느낄 수 있는 거거든요. 저는 최대한 이 감각을 일상으로 가져오려고 노력합니다. 아마 작업에도 드러나겠죠.

나: 가리왕산에 그런 역사가 있는 줄 몰랐네요. 저도 스포츠 정신, 올림픽 정신에 우호적이면서도 스포츠 메가 이벤트 개최에는 회의적입니다. 그 업계 관련자로 일할 때 불필요한 ‘스포츠 건축’이 밝은 면보다 어두운 면을 점점 더 많이 가질 수 밖에 없는 시대상을 절감했거든요. 산에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산행 코스는 언제였나요?

최황: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최근이 아닐까 싶어요. 암벽등반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와 연결된 로프를 잡고 내가 땅으로 곤두박질 치는 걸 방지해 줄 확보자(빌레이어, belayer), 소위 ‘자일 파트너’를 만나는 건데, 한동안 이 자일 파트너를 구하지 못해 다른 등반팀에 끼어가서 겨우 등반하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친구이자 <인터넷산악회> 회원인 권용득 작가와 박철휘 작가를 포획(?)하는데 성공했어요. 클라이밍 한 번 해보지 않겠냐고 꼬셔서 처음엔 인공암벽에 끌고 가고 그 다음엔 산악 장비 전문점에 끌고 가고 결국엔 그 ‘수직의 세계’로 제가 모시고 다니게 됐죠. 가장 즐거운 순간은 이분들이 이 수직의 세계에 빠지고 있는 걸 암벽에 매달려 구경했던 순간이었죠. 엊그제 한국 암벽등반의 메카인 북한산 인수봉에 갔는데, 중간에 갑작스럽게 비가 내리기 시작해 탈출하면서 이분들이 한 말이 떠오릅니다.

“다음 주에 다시 오자.”

물론 도전하고 싶은 산행 코스는 따로 있습니다. 40대 언젠가 세계의 중심, 요세미티를 등반해보고 싶어요.

나: “산에 갈 때 꼭 이걸 기억하라!”와 같이 추천하거나 소개하고 싶으신 것이 있나요?

최황: 2019년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상을 수상한 <프리 솔로>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미국의 등반가 알렉스 호놀드의 프리 솔로 클라이밍을 다룬 지미 친 감독의 다큐멘터리인데요, ‘프리 솔로’라는 건 ‘aid-free solo’, 즉 인공 장비 없이 혼자 오르는 등반법을 말합니다. 알렉스 호놀드는 로프와 같은 일체의 안전 장비 없이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있는 900미터 높이의 엘 캐피탄 절벽을 올랐고, 이 프로젝트의 과정을 찍었어요. 영화를 보기 전에 설명만 들으면 미친 사람의 기행을 담은 영화 같겠지만 이 영화는 한 인간이 바위, 산 나아가 자연을 대하는 철학에 관한 영화예요. 알렉스 호놀드는 자신이 인간이기 때문에 극도로 최소한의 흔적만을 남긴 채로 환경을 대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꽤 오랜 시간 동안 집 없이 밴에 살았고, 환경을 생각해 채식 위주로 먹고 심지어 전 세계 오지 마을에 태양광 발전패널을 설치하는 재단을 설립한 활동가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영화가 국내에 정식 개봉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녹록치 않네요. 현재는 아마존 비디오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친환경 소재로 옷을 만듭니다. 대표적으로 파타고니아는 최근에 해양 생태계를 파괴하는 주범인 폐그물만을 사용해 옷을 만들어 팔고 있죠. 블랙다이아몬드에서는 암벽에 드릴로 구멍을 뚫어 앵커 볼트를 박는 대신 암벽 본연의 틈(크랙)에 끼워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장비를 오래전에 개발했고요. 한국의 오름이라는 클라이밍 의류 브랜드는 폐 자일을 사용해 벨트나 가방끈을 만들고 있어요. 특정 브랜드를 홍보하려는 건 아니에요. 요즘은 정말 많은 브랜드에서 이렇게 플라스틱이나 재사용 섬유를 활용해 옷을 만드니까요. 중요한 건 인간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라는 겁니다.

산에 갈 때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다름 아닌 인간이라는 거예요. 스스로 산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한 번 더 생각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사진 1-5. 클라이밍 사진과 드로잉, 제공_최황]

최황과 나눈(또는 나눌) 대화가 아직 조금 더 남아있다. 공공예술과 장소성에 초점을 둔 내용들이 산 이야기에서 자연스럽게 갈라져 나온 것이다. 이 다음에 이어가기로 한다. 돌아오는 주말에 인터넷산악회와 함께 북한산에 가자고 초대를 받았다. 지금 나는 결정을 앞두고 있는데, 불과 며칠 후면 이 글에 담긴 이야기 속으로 몸소 뛰어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김보슬(Otis College of Art and Design 공공예술 M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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