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의 계단을 오르다 / 김보슬

번역의 계단을 오르다

- 터키에서 발견한 무라카미적 기회 -

알리 볼칸 에르데미르(Ali Volkan Erdemir)의 문학번역 이야기


지난 달에 이어, 또 다른 번역가와의 만남이다. 2016년 여름, 터키의 정중앙이며 실크로드의 서쪽 끝, 카이세리(Kayseri)에 체류 중이었다. 도시의 외곽 탈라스(Talas)라는 동네의 카페에서 만난 볼칸은 번역에 몰두하느라 방학 내내 칩거하다가 모처럼 외출한 날이었다. 그는 일본의 현대 소설과 하이쿠를 주로 번역한다. 1974년 터키 데니즐리(Denizli) 출생으로, 앙카라대학교에서 미국문학을 공부하던 중 4학년 때에 일본문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일본 문부과학성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교토대에서 문화비교연구와 번역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터키 국립 에르지예스대학교(Erciyes Üniversitesi) 일어일문학과 교수로, 그리고 문학번역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오에 겐자부로, 무라카미 하루키, 유키오 미시마 등을 터키어로 옮겨 왔고, 2016년 터키어로 출판한 『스푸트니크의 연인』(무라카미 하루키 저)은 초판을 인쇄한 해에만 17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때의 우리 대화다.

[사진 1. 볼칸과의 대화]


나: 언제부터 문학작품을 번역했고,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영향을 준 사람은? 볼칸: 오랫동안 여러 가지 경로로 번역에 참여했지만, 문학서적의 첫 라이센스 출판은 작년이었다. 이미 쓰여진 문장을 새롭게 다시 쓰는, 번역자로서만 누릴 수 있는 그 느낌이 각별히 좋다. ‘이런 건 일본어를 알지 못하는 터키 독자들도 읽었으면!’ 하는 생각을 할 때, 그리고 그런 희망을 이룰 때가 즐겁고, 시간이 잘 간다. 교토대 시절 나의 지도교수였던 나오키 이나가키 교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나가키는 원로 번역가이다. 좋은 일본어를 배울 수 있는 길이 번역의 태도 안에 있다고 나에게 항상 강조했다. 그에게서 번역의 기술이나 태도뿐 아니라 영감도 발견했다. 내 열렬한 팬심을 선생님이 아실까. (웃음) 실전 프로젝트를 맡게 된 것은, 유학 마치고 귀국하여 학술대회에 참가한 뒤였다. 거기서 내 발표를 들었던 어느 번역가가 나의 단어 선택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코멘트했다. 그가 직접 나를 출판일에 주선하면서부터 문학서적을 번역하게 됐다. 나는 이런 걸 "Murakamian chance(무라카미적 기회)"라고 부르곤 한다. 운명적인 것들을…. 나: "Murakamian chance"라. 신선한 조어다. 그간 어떤 작품들을 번역했나.

볼칸: 첫 공식 번역은 JIKAD(일본-이즈미르 문화교류재단)에서 발행한 『일본문화사』(요시카즈 마츠이 저)였다. 같은 해 8월 오에 겐자부로의 단편선을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소설번역에 발을 담갔다. 그 다음 두 편의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을 번역했는데, 올해 1월에 『여자 없는 남자들』, 그리고 7월에 『스푸트니크의 연인』이 나왔다. 12월에는 역시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상한 도서관』이 출판될 계획이고, 내년에는 유키오 미시마의 『금각사』가 나올 것이다. 그 외에 하이쿠를 번역하여 몇 개의 문예지에 싣고 있다.



[사진 2, 3. 볼칸의 번역서들] 나: 엄청난 속도다. 본업이 따로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볼칸: 그래서 사람 만나는 일이 줄었다. 나: 좋은 번역이란 무엇인가. 볼칸: 원전을 충실히 살리는 가운데 가독성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종종 상충하기 때문에 고난도의 균형 게임이다. 그래도 둘 중에서 내가 우선으로 여기는 것은 원전에 대한 충성이다. 가령, 오에 겐자부로의 경우엔 만연체를 그대로 살리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경우엔 간결체를 그대로 살리려고 한다. 번역어가 아예 없는 용어라든지, 터키어로 직관적 표현이 안 되는 것이 있으면 주석을 단다. 주석이 길어질수록 논문을 쓰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그 방법을 택하고 있다. 나: 겐자부로의 만연체와 하루키의 간결체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번역하기 까다롭던가. 볼칸: 꽤 자주 간결한 것이 더 어렵다. 짧은 문장은 그것이 감추고 있는 심리적, 사상적 배후를 더 깊게 파고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치열한 의미 추적이 요구된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하이쿠도 마찬가지다. 나: 하루키는 애초에 영어로 쓴 다음 그걸 일본어로 번역하는 방식으로 집필한다지 않는가. 군더더기 없고 독창적인 문체는 그런 독특한 글쓰기 방식에서 나왔다고 한다. 애초에 외국어 작문으로 출발하는 점 때문에 하루키 작품이 번역에 유리하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볼칸: 하루키뿐 아니라, 20세기 초반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같은 작가도 이미 그러한 메소드를 사용했다. 생각 자체를 영어로 하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확실히 출발이 영어일 때 번역하는 내게는 한결 투명하게 다가온다. 일본어는 내가 공부했던 다른 어떤 외국에 비하더라도, 글쎄, 어딘지 유별나달까? 섬나라인 탓일까? 하여튼 여러모로 곤란하다. 일본 문화에 대한 나의 이해가 아직 짧아서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곳에서 8년을 보내며 일본을 깊숙이 경험했다고 할 수 있는데도 그렇다. 터키는 오스만제국 때까지 유럽과 긴밀한 세계였고, 일본과 문물을 교류한 것은 1890년부터였다. 2011년에 일본인으로 귀화한 도날드 킨(Donald Keene)도 미국 출신의 일본 전문가로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지만, 그 스스로는 아직도 일본을 이해하지 못해 애를 먹는다고 하지 않나. 일본에서 오래 살았어도 영어보다 일본어 문장을 간파하는 일이 내게도 더 까다롭다. 나: 일본 생활이 마음에 들었나. 볼칸: 물론이다. 자연과 사람 사이에서 우리 터키 사람들이 사람 중심적인 것과 달리, 일본 사람들은 사람이 자연의 일부라는 사상을 관철하더라. 일상 속에서 자연환경을 존중하는 것 같았다. 특히 내가 살던 곳은 생활공간이 자연을 적극적으로 품고 있었다. 청정한 삶에 감사했다. 한국의 옛 이름이 '조선'이라고 하던데, 한자를 보니 'morning calm'이라는 뜻이더라. 그것도 멋지다. 다음에 일본에 갈 때엔 한국도 방문하고 싶다. 일본에서 내가 즐겨 찾던 카페와 바도 소중하다. 가끔 음악을 듣고 맥주를 마시러 가는 게 낙이었는데, 그런 위로와 낭만이 있었던 것이 좋았다. 그곳들의 공기와 분위기가 그립다.

나: 하루키도 음악광이고, 작가가 되기 전에는 재즈 바를 운영하지 않았나. 하루키를 만난 적은 없는지? 볼칸: 아직 없다. 곧 만나게 될 수도? (웃음)

[사진 4. 서점에 진열된 볼칸의 번역서]

나: 터키의 작가들이나 문학연구가들, 독자들이 번역의 중요성에 충분히 공감한다고 생각하는지. 볼칸: 별로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렇지만 그 중요성을 서둘러 강조할 필요는 없다. 앞으로 번역이론에 관해 책을 쓰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진지한 고민은 나중에 하겠다. 지금은 그냥 번역의 기쁨을 만끽할 요량이다. 나: 한국에서 당신처럼 번역가로 활동하는 교수들이 언젠가 나눈 대담을 읽은 적 있다. 그들은 우리나라 번역 현실을 비판했다. 문학작품보다는 학술 서적에 초점을 둔 대목이었을 텐데, 모국어로 쓰여진 서적에 비해 번역서는 시녀쯤으로 취급된다는 언급이 포함돼 있었다. 때로는 동료들에게서조차 좋은 번역을 위해 힘쓰라는 독려는커녕, 저급하고 지루한 일을 그만두고 학자의 본분에나 충실하라는 충고를 받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번역문화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겠냐는 한탄이 오갔다. 터키는 어떠한가. 볼칸: 별반 다르지 않다. 나는 내 본업이 연구와 지도이고 서적 번역은 부업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공이 번역이다 보니, 내게는 그 둘이 명확히 갈릴 수 없다. 나: 중학생 때에 유럽문학에 빠져서 번역서들을 접했다. 한 번은 친구와 막스 뮐러(Max Müller)의 『독일인의 사랑』을 우연히 서로 다른 번역본으로 읽게 됐는데, 같은 문장을 하나는 "나는 당신을 사랑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겁니다."로 옮기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난 당신을 사랑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겁니다."로 옮기고 있더라. 우리는 이 엇비슷한 두 문장을 두고, 무엇이 더 어울리는지를 고심하다가 전자를 선택했다. 번역에 관해서는 이런 추억이 있다. 볼칸: 나도 어린 시절에 외국 작품을 두고 궁리가 많았다. 당시엔 내가 독해력이 떨어지거나, 내용이 어려워서 이해가 더딘 줄 알았다. 자라고 나서 다시 읽어 보니, 대개 번역에 심한 오류가 있었다. 이면을 읽지 못한 채 단어 대 단어로 대응하는 번역을 한 것도 부지기수였다. 나의 독자에게 그런 폐를 끼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요즘은 역서를 읽을 때 역자의 교육적, 문화적 배경도 참조한다. 나: 한국의 영장류학자 김산하는 생물학을 포함하여 다방면의 주제로 수필과 칼럼을 쓰는데, 그의 글이 가진 위트와 개성을 나는 좋아한다. 그가 어느 강연에서 “전문적으로 글쓰기를 배운 적 없고, 심지어 외국 생활도 오래 한 당신이 한국어 글을 잘 쓰는 비결이 무엇이냐”는 청중의 질문에 이렇게 응했다. 자신은 어릴 때부터 자기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감성을 침해받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고. 그게 유치한 것이든, 촌스러운 것이든 말이다. 그때 사회자가 거들기를, 감성이 있으면 하고 싶은 말이 있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글이 써진다는 것이다. 모든 글쓰기가 그렇겠지만, 번역도 그렇지 않겠는가. 볼칸: 그렇다. 내 스승 이나가키 선생은 원전을 최소한 두 번은 정독, 숙독해야 한다고 했다. 그처럼 원전의 감성이 역자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돼야 한다는 게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한 문장을 옮기는 데에 이틀씩 걸리기도 한다. 『스푸트니크 연인』을 번역할 때는 작중 인물과 상황, 심리에 깊게 몰입할 수 있었다. 주인공 K는 외로움을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에 순응하는 캐릭터인데, 그러한 성정이나 사고방식은 나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 신기하게도 생일조차 똑같다! 그리고 내가 일본과 그리스에서 실제로 가본 적 있는 장소들이 등장하여 더욱 몰입했다. 그래서 만족스러운 번역이 나온 것 같다. 이제까지의 가장 재미있었던 작업이었다.

나: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가. 볼칸: 그렇다, K처럼. 번역일이 늘어난 후로는 더더욱 읽고 쓰는 일로 점철된 생활이다. 너무 예민하다는 질책도 자주 듣는다. 그나마 친구들은 너그럽게 이해해 주는 편이지만, 그들마저도 거의 안 만나고 있다. 나도 사람 좋아한다! 그런데 지금은 의도적으로, 쓰는 일에만 몰입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든다. 아, 20년 전에는 이렇게 열심히 글을 쓰지 않겠노라 결심했었다. 글을 쓰려다 보면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일에 가로막히고, 그때는 그게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인데… 그랬던 결심이 학교에 부임하면서부터는 흔들려서 소설도 쓰고, 시도 쓰고, 번역도 하게 됐다. 동화도 쓴다. (웃음) 어느 날 주방에서 달팽이 두 마리를 발견했는데, 놈들을 집요하게 바라보다가 스토리가 떠올랐다. 내년에 출판할 예정이다. 나: 동화라니, 멋지다! 꼭 읽어 보고 싶다. 내가 터키어를 공부할 테니 먼 훗날 한국어 번역을 나에게 맡겨달라! (웃음) 번역가의 일상도 궁금하다. 교육자이기만 할 때와는 다른 능력이 필요하지 않은가, 시간 안배랄지. 또는 특별한 일과랄지.


볼칸: 맞다, 시간 관리가 관건이다. 학교에서와는 달리, 절대로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확보하는 게 필수다. 퇴근 후 최소 네 시간, 보통 저녁 여덟 시부터 자정까지의 시간은 반드시 홀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어야 한다. 사적인 만남이나 독서나 다른 모든 계획은 이 고정된 네 시간 앞뒤로 구겨넣는다. 불가피하게 네 시간 중 일부를 할애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닥치면 대신 자는 시간을 줄인다. 허구헌날 수면부족이다. 번역의 마지막 한 달은 오로지 탈고만 하기 때문에, 그 한 달을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부단한 시간 관리가 필요하다. 그리고 온 감각을 열어두고, 마음을 침착하게 유지하려는 노력도 필요한데, 그건 운동의 도움을 받는다. 매주 두세 번씩 수영장에 가고, 그 외엔 산책을 한다. 이런 규칙적이고 절제된 생활쯤이야,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한테는 별로 놀랍지도 않을 것이다. 드물게는 콘서트에 간다. 전에는 많이 다녔는데. 나: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가. 볼칸: 락(rock) 음악 좋아한다. 예전에 락스타를 꿈꿨었다! 전자기타를 연주했다. 지금도 글이 잘 써질 때에는 신나서 메탈리카를 듣고, 집중이 안 될 때에는 모차르트를 듣는다. 나: 집중력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인가. 볼칸: 층간소음이 가장 방해가 되고, 날씨의 영향도 쉽게 받는다. 방안에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데에 주의를 기울인다. 나: 근사한 음악과 포근한 공기가 있는 번역가의 방을 상상해 본다. 작업실 풍경을 묘사해 줄 수 있나. 볼칸: 내가 집필하는 곳은 주로 우리 집 서재다. 원목으로 된 책상이 하나 있고, 그 위에 책, 필기구, 컴퓨터 따위가 있고, 그 옆에 블랙커피 한 잔을 늘 올려놓는다. 거실에서 기르는 카나리아를 책상에 앉을 때면 곁에 데려다 놓는다. 일하며 듣는 카나리아 소리가 좋다. 미친 사람 같겠지만, 새한테 말도 건넨다. (웃음) 그러면 안정이 된다. 습관적으로 손으로 책상을 문지르며 원목의 질감을 느낀다. 창밖에는 만년설로 덮인 에르지예스 산이 멀리 보인다. 인내심에 한계가 오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 그 산을 바라본다. 책상 앞에는 액자 세 개가 나란히 걸려 있다. 진척이 없을 때에 답답한 마음을 거기에 의탁하다. 하나는 "禪"을 붓글씨로 쓴 것, 또 하나는 "静"을 역시 붓글씨로 쓴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의 것은 비 내리는 교토의 풍경인데, 유명 화가의 작품이다. 그림 속의 거리는 좁고 구부러져 있어서 어디로 향하는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거리는 텅 비어있고, 한 남자가 홀로 어딘가를 향해 걷고 있다. 그런데 우산을 쓰고 있어서 그의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번역의 세계로 들어갔다가 나오기까지가 바로 이런 모습인 것 같다.


[사진 5, 6. 번역가의 방, 그 방에서 보는 창밖 풍경]


* 이 글은 계간지 『문학의식』 2016년 겨울호에 소개된 것을 수정‧각색한 것입니다


김보슬(Otis College of Art and Design 공공예술 M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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