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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화하는 소리, 귀 기울이는 화음 / 최엄윤

벚꽃이 피는 4월이 오면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10년 전, 아침 뉴스로 세월호의 침몰을 TV 화면으로 바라만 보고 있던 4월 16일, 출근길에 등굣길에, 누군가는 집에서 학교에서, 지하철에서 각자가 있던 그 자리에서 지켜만 보고 있던 침몰하는 세월호에 대한 기억은 그날의 내 모습마저 선명하도록 함께 각인되었다. 사실 나는 그때 한국에 없었다. 그래서 그 시각 뉴스를 접하지 못했음에도, 일곱 시간의 시차가 나는 회사의 책상 모니터 앞에 꼼짝없이 앉아 전날의 뉴스를 보던 그 오전을 기억한다. 오늘에도 반복 재생되는 그날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화면만 바라보던 무력했던 순간을.

     


4160인의 합창   


작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1주기 시민추모대회가 있던 날, 처음으로 용기 내어 이태원 참사 현장을 찾았다. 참사 후 차마 직면하기 힘들었던 미안함과 슬픔을 연대의 힘에 기대어 친구의 손을 잡고 길 위에 함께 섰다. 참사의 원인과 책임을 따지고 유가족의 비통한 목소리가 발화되기도 전에 누구보다 먼저 정부가 앞장서 장례를 기획하고 속히 흩뜨려버려 추모와 애도의 시간을 갖지 못했던 이태원 참사. 길 한가운데서 어처구니없게 죽은 159명의 희생자들은 2014년 세월호와 함께 침몰한 304명의 희생자를 떠올리게 했다. 여전히 길 위에서, 지하차도에서 시스템의 부재, 책임자 없는, 국가 없는 재난에 각자도생을 궁리하며 살아야 하는 현실은 슬픔을 넘은 분노가 되었다. 나 하나의 분노는 힘이 약해서 겨우 우울과 불면, 그리고 체념과 냉소가 몸과 마음에 각인되는 걸로 그쳤는데, 이태원 참사 1주기 시민추모대회에서 만난 세월호 합창단의 모습은 그런 나를 전율케 해서 침잠해 있던 마음을 깨웠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의 손을 맞잡은 세월호 유가족의 마음을 감히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나로서는 절대 가늠할 수 없는 사랑의 힘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그저 세월호 합창단의 노래로 불리게 된, 정희성 시인의 시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의 시구를 되새길 뿐이다.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

     

안산 화랑유원지 4.16생명안전공원부지에서 진행된 세월호 10주기 기억식에서 4160명이 온·오프라인으로 함께 기억하는 마음을 담아 합창했다. 4.16연대가 2023년 11월부터 <세월의 울림> 시민합창단 모집을 시작하여 영상 참여와 4월 16일 당일 현장 참여까지 전국에서 세월호를 기억하는 마음을 모았다. 남녀노소, 장애유무에 상관없이 노래와 퍼포먼스, 악기와 수어 등 4160인의 울림은 감동의 파장이 되어 퍼졌다.

     

기억식에 앞서 진행되었던 4월 13일 기억문화제에서는 4.16공방, 4.16목공소, 4.16기억상점 등에서 준비한 체험부스와 기억과 다짐을 쓸 수 있는 칠판, 설치 작업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세월호 유가족 극단 <노란 리본>의 공연, 100인의 춤 퍼포먼스 등이 순서대로 진행되고 마지막에는 객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 중 대다수가 하나둘 앞으로 나가더니 무대는 물론 무대 앞과 양옆을 빽빽이 메워 나갔다. 박미리 지휘자의 손끝을 따라 화음을 맞춰 부르는 노래는 안산 화랑유원지를 배회하며 기억문화제를 방해하던 불편한 메가폰 음성을 덮어버렸고, 기억문화제의 모든 순간을 문종택 감독이 기록하고 있었다. 그는 세월호 참사로 딸을 잃은 유가족으로 지난 10년의 기록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바람의 세월>을 만들었다.

     


삶은 지속되고 우리가 짓는 성

     

브라질 출신의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아우구스트 보알의 <억압받는 자들의 연극>은 오래된 이론이지만 문화예술의 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유효한 예술교육 방법론이자 예술을 통한 사회 참여와 변화의 가치를 담고 있다. 아우구스트 보알은 교육학자 파울로 프레이리를 비롯한 사진작가 등과 함께 페루 리마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스페인어 교육을 위해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사진작가는 이미지를 제시하는 대신 아이들에게 직접 카메라를 주어 일상 풍경을 찍어 설명하게 한다. 그들이 찍어 온 모습은 쓰레기를 먹고 사는 펠리컨, 쥐에게 코가 물린 동생 사진 등 가난한 리마의 풍경과 사회 부조리가 그대로 담겨 있었고 아이들은 생생한 목소리로 현실을 증언한다. 이후 보알은 ‘포럼 연극’ 형식을 만든다. 연극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마치 카드놀이에서 조커 카드처럼 관객-배우가 스톱을 외치며 개입하게 함으로써 관객 스스로 자유롭게 생각하고 능동적으로 바꾸어 나가는 방법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알은 연극은 그 자체로 혁명이 아니라 혁명을 위한 리허설이라고 말한다.

     

세월호 유가족들에겐 분노와 절규만이 아닌 또 다른 언어도 필요했다. 침몰하는 대한민국에 제동을 걸어 스스로를 구하고 타인을 구하기 위한 언어. 그 언어는 거리와 천막을 넘어 공방의 뜨개질로, 압화로, 목공으로 제작되었고, 노래와 연극, 영상, 그리고 증언을 담은 책을 통해 발화되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시민이 함께하며 유가족의 소리에 화답했다.

     

극단 <노란 리본>의 활동을 기록한 이소현 감독의 다큐멘터리 <장기자랑>에서 배우 이미경(영만 엄마)은 "그냥 나는 더 멋지게 살고 싶을 때도 있다"고 말한다. 힘들고 지치는 투쟁 속에서 유가족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시선은 살아야 할 사람을 계속 장례에 묶어 두기도 했고, 이제 그만 잊으라며, 그만하라며 상처를 주는 말들이 모질게 날아오기도 했다. 다큐멘터리 <장기자랑>은 유가족들이 연극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담았다. 세월호 참사와 희생자들을 관객들이 잊지 않기를 바라며 작품을 만들어 가지만, 무대에서 원하는 배역을 받고 싶고,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배우로서의 욕망과 갈등을 따라가며 참사에서 멈춘 삶이 아닌 지속되는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극단 <노란 리본>의 이미경 배우는 지난 2023년 함께해 온 예술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들의 이름을 딴 ‘이영만연극상’을 제정하기도 했다. 안전한 사회와 생명 존중의 가치를 구현하는 연극인들과 창작 활동을 응원하며 새로운 연대의 길을 열게 된 것이다.

     

오래된 배를 사서 무리한 증축을 하고, 과적하고, 편법을 쓰고, 원칙을 무시하고, 사람들의 눈앞에서 그 커다란 배가 침몰해가는 시간 동안, 결정의 순간에 아무도 퇴선 명령을 내리지 않은 그 모든 원인으로 304명이 목숨을 잃었다. 매뉴얼과 컨트롤타워가 없는, 실상은 책임자 없는 현실에서 유가족은 법과 사회 구조를 바꾸어 나가는 언어를 발화하는 중이다. 단지 배 한 척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이고 이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그리고 책임자가 누구인지 명명하고, 그 책임을 다할 때까지 변화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 다른 세월호 침몰을, 이태원 참사를, 오송 지하도 침수를 겪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세월호를 기억하고 잊지 않는 것은 더 이상 이런 사회적 재난과 참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한 우리들의 다짐이다.


    

사회적 참사 이후 특별법이 만들어지고 독립된 조사 기구를 만들어 체계적 조사를 해 나간 경험은 전례 없는 일이라고 한다. 특히 세월호 참사의 경험은 피해자 지원에 대한 여론의 공감을 모으고, 안전 사회를 위한 제도 마련을 요구하는 중대재해처벌법, 생명안전기본법 등의 법 제정 운동으로까지 확산하였다. 그러한 사회의 진보를 견인하는 앞머리에 세월호 유가족들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일상을 살아가며 이러한 참사와 재난이 예외적이고 나와는 동떨어진 것으로, 마치 피해자들이 운이 없었던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회적 재난과 참사는 언제든 모두에게 닥칠 수 있고, 우리 모두에게 물리적·정신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포르투갈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는 “길에 돌이 있다고? 나는 그것을 일일이 주워 간직한다. 그랬다가 언젠가 성을 지을 것이다.”(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 창비, 2022, p.9.)라고 했다. 우리 뒤에 오는 사람들이, 우리가 겪은 장애물을, 같은 비극을 겪지 않도록 바라는 마음으로 발화하는 그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화음을 맞추어야 한다.



최엄윤 / 독립문화 기획자 예술가와 행정가, 연구자와 활동가를 넘나드는 경험을 쌓고 독립문화 기획자로 활동 중이다. 사무엘 베케트의 “실패하라, 더 잘 실패하라”는 말을 삶의 좌우명으로 삼고 언젠가 결국은 창작자가 되기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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