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던 7월 마지막 날, 연세대학교 맞은 편 굴다리 건너 작은 골목 주택가의 빌라 4층에 위치한 신촌극장을 찾았다. 우편물과 택배 상자 등이 문 앞에 놓인 집들을 지나쳐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계단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고백하자면 5년 전 가정집 빌라 꼭대기 층을 개조한 이 극장을 처음 찾았을 때 같은 자리에서 지속될 것을 의심하기도 했었지만, 신촌극장은 빠르게 연극인들과 연극을 사랑하는 마니아 관객들이 꾸준히 찾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오히려 코로나 팬데믹 중에도 25-30여석 블랙박스 공간에 십여 명 남짓의 관객들만 수용하며 작은 극장만의 특별함에 어울리는 다양한 작품들과 실험이 꾸준히 이어져 왔다.
극장에 들어가기 전 4층 입구 계단 통로에서 체온측정과 손 소독을 끝내고 문을 열어주는 김은한 배우이자, 연출, 작가를 만났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적당한 자리를 잡고 다른 사람들이 들어와 나머지 의자들이 채워지길 기다렸다. 무대 뒤에서 객석 등이 꺼지면 나타나는 배우가 아니라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을 맞이하고 마지막 관객까지 자리에 앉자 뒤에서 극장 문을 닫고 드디어 “파도가 몰려오듯이 어떤 세계를 불러오기” 시작했다. 구석진 모서리에서 발견한 미지의 존재 같은 극장의 호흡 속에 들어가자, 김은한 배우는 그의 공연 중 관객들이 할 수 있는 것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60분으로 예정된 <멀리서 응원하고 극장을 찾지 않는 사람들>의 전개가 지루할 때 몇 분이 남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핸드폰을 봐도 되고, 공연 중 촬영을 해도 되고, 경직된 자세가 불편하다면 자세를 고쳐 앉으며 봐도 된다는 둥 통상 엄숙한 극장에서 지켜야 할 수칙들을 무너뜨릴 것을 당부했다.
배우 자신도 시계를 보며 시간 끌기를 시전하듯 집요하게 늘어뜨린 안내가 약 20여분 지속되었을까? 마침내 하나의 챕터가 마무리 되고, <멀리서 응원하고 극장을 찾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공연 제목에 어울리는 응원은 하고 오지 않는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을 원맨쇼의 형태로 제시하기 시작했다. 조금은 어색하고 당혹스러운 그의 모습을 앞 뒤, 두 인물로 분열된 자아가 ‘이래도 되는지’, ‘결국 무언가 탄로 나고 관객이 실망하는 것은 아닌지’ 갈등 상황에서 논쟁해 가며, 그럼에도 끝까지 공연 이어가기를 멈추지 않고 말하고 움직이고 갑작스러운 발차기 등 할 수 있는 열심을 다했다. 극장 속에 들어서서 무대에 오른 순간, 그 공간에서 함께 있는 모두가 즐겁던 그렇지 않던 시간을 견뎌내고 끌어가고, 살아내는 광대로서 충실했다.
배우 한 사람의 몸짓과 입담만으로 풀어가는 무대라는 점에서 스탠드업 코미디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대화를 중심으로 등장인물과 사건, 갈등을 펼쳐 간다는 점에서 극의 요소를 갖췄다. 하지만 김은한은 관객들이 다른 연극에서 감각하기 힘든 새로운 즐거움을 주기 위해 정돈된 신체와 화술이 아닌 좀 더 거친 방식, 느슨하고 대충하는 연기를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고, 그것을 위해 일부러 연습하지 않는 부분을 두기까지 한다고 한다. 한편 그의 1인 프로덕션이자 1인 극장인 ‘매머드머메이드’는 소멸해 잊힌 멸종동물 ‘매머드(맘모스)’와 환상의 생물 ‘머메이드(인어)’에서 이름을 따왔다. “작은 규모로도 할 수 있는 것, 이래도 되나 싶은 것, 형편없음에 집중하는 1인 극단으로 소멸과 환상, 관객의 기쁨, ‘이런 것도 즐겁지’를 생각하고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한다”고 소개하며 8년째 이어오고 있다.
기본적으로 느슨한 코미디로 시작한 <멀리서 응원하고 극장을 찾지 않는 사람들>의 전반부가 지나고 기다리는 친구에 대한 이야기로 공연의 분위기는 이전과 다르게 전환된다. 배우는 간절히 기다리는 친구가 나타나기만 한다면, 10분이 흘러도, 20분이 흘러도, 공연이 끝나 무대 인사를 하는 60분이 되어서라도 나타나기만 해 준다면 그는 기다릴 수 있고 마침내 반갑게 맞을 수 있다고 했다. 이전까지의 우스꽝스럽고 다소 산만했던 몸짓이 반전을 이루었다. 마침내 그를 맞아 처음 관객들을 맞을 때처럼 문을 열어주고, 손전등을 비춰 안내하며 환영처럼 나타난 검은 그림자를 무대 위로 소환했다. 그림자 속의 친구는 입도 없고 말도 없고, 움직임도 없이 이미지로만 존재하며 객석이 환해지면 사라져버릴 상실을 품은 존재였다. 김은한은 “극장은 여러 창작자가 생각하는 것처럼 폐허의 공간이고 관객은 유령이라면 극장은 담력시험을 하는 곳, 두렵지만 매혹적인 곳”이라고 한다. 폐허도 유령도 모두 실은 잡을 수 없는 상실의 언어이지 않은가? 텅 빈 공간, 떠돌다 사라지는 환영 같은 관객들,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그는 온전한 시간동안 언어와 몸짓과 호흡으로 가득 몸을 부풀려 기차가 지나가는 바깥의 소음마저 공기의 일부로 붙잡아두고 관객을 그의 폐허로 끌어들인다.
“사냥꾼이 긴 공연 안내를 시작합니다. 사람들을 잡아두고 언젠가 반드시 연극을 끝내기 위해서요.”
신촌극장의 시그니처 공연 엽서에 인쇄된 <멀리서 응원하고 극장을 찾지 않는 사람들> 소개 글의 일부이다. 내키는 일은 전부 해보자고 생각한 어느 날로부터, 관객이라는 유령과 담대히 맞서 되풀이되는 폐허 속에서도 멸종하지 않고 낯설고 놀라운 이야기로 결국 반드시 오고야 말 친구를 기다린다.
극장을 찾은 관객들을 위한 그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마지막 시간동안 그는 <광대조차 부활하지 않는 밤>이라는 자신의 소설집에 실린 짧은 소설 하나를 낭독했다. 보면대 위에 인쇄물을 놓고 차분히, 그 어떤 과장이나 익살꾼의 흉내 내기도 없이 담담한 어조여서 집중하지 않으면 따라가기 어렵고 지루해지기 쉬운 방식이었다. 이야기를 사랑해서 이야기에 갇힌 인물의 낯설고 이상한 세계 속으로 관객을 붙잡아두고 그는 극으로부터 빠져나와 진지한 자신의 모습으로 서 있었다. 엉터리가 되어버리는 것도 공연의 재미라고 생각한다는 그가 사무엘 베케트의 말처럼 더 잘 실패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길이 없으면 ‘반걸음 더 나아가보는’ 방식으로 자신의 길을 닦아가며 관객 앞에 선 모습을 보며 끝내지 못한, 시작도 해보기 전에 도망친 나의 무수한 이야기들을 생각했다.
결국 60분의 약속된 시간이 채워지고 약속한 연극은 끝나고 그는 관객이 되돌아 나갈 문을 열어 배웅하고 다음 관객을 기다린다.
* 9월에는 모므로살롱(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1가 서울숲2길 45-1)에서 매머드머메이드의 <사신과 담소>라는 짧은 공연과 ‘괴담 수다모임’이 예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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