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널드 헨델의 <창세기와 만나다: 탄생, 갈등, 성장의 역사> 리뷰 /박영희


인류사에서 성서의 ‘창세기’만큼 논쟁적인 책은 드물다. 창세기에서 촉발된 논쟁은 항상 뜨거운 감자였다. 천동설과 지동설, 창조와 진화, 노예제부터 근래의 동성애 이슈에 이르기까지 논쟁과 대립은 지독히 격렬했고, 일부는 여전히 뜨겁다. 많은 이들이 창세기의 내용은 잘 몰라도 이 책이 비이성적이고 터무니없다는 비판에는 동의하곤 한다. 이쯤 되면 창세기의 생명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악평과 비판 속에도 창세기는 어떻게 소멸하지 않고 건재하면서 다방면에 지속적인 영향력까지 행사하는가? 이 의구심을 해결하기에 로널드 헨델의 『창세기와 만나다: 탄생, 갈등, 성장의 역사』는 매우 유용하다. 헨델은 방대하고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창세기의 기원부터 해석의 변천사, 현대의 읽기와 전망까지 군더더기 없는 분명한 말로 통찰한다. 종교의 유무를 떠나 이성과 과학이 지배하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지성인으로서 숙독할 가치가 충분하다.

“창세기의 참됨 여부가 도마 위에 오른 지금 이 순간에도 종교, 예술, 문화는 현실을 탐구하고 적절하게 표현하기 위해 창세기에서 자원을 끌어오고 있다.”(27~28쪽)

본 저서는 프린스턴 대학교 출판사에서 야심차게 펴내고 있는 ‘위대한 종교서의 생애’(Lives of Great Religious Books) 시리즈의 창세기 편으로 원제는 The book of Genesis: a biography이며, 저자인 로널드 헨델 교수(UC 버클리 대학)는 탁월한 히브리 성서학자이자 유대교 학자다.

창세기의 ‘전기’(biography)

“창세기라는 책은 인류의 현실 세계를 이루기 때문에 살아있으며, 오랫동안 생명력을 유지해왔다. 사람들은 창세기와 관계를 맺으며 이 책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한 사람의 ‘전기’(biography)가 가능하듯 창세기의 ‘전기’가 가능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창세기라는 책이 지닌 삶의 이야기(이것이 ‘전기’라는 말의 뜻이다)는 서구 문명에서 집단적 삶이 빚어낸 복잡다단한 역사의 흐름에서 하나의 줄기를 차지한다.”(16~17쪽, 본문 강조는 필자의 것임)

눈치 빠른 독자라면 책의 부제(‘전기’)에서 이미 헨델이 창세기를 어떻게 다룰지 눈치챘을지 모르겠다. 생애 시리즈답게, 헨델은 창세기의 ‘생애’(life)-책의 탄생과 본래 의미-와 ‘사후의 생애’(afterlife)-원작이 후대의 해석을 통해 새롭게 거듭나는 과정-를 총 7장에 걸쳐 살피며, 그 과정에서 창세기가 인류사에 미친 영향과 인류사의 전환이 창세기 해석에 미친 영향 또한 다룬다.

창세기의 ‘생애’

“이들이 합쳐지면서 … 창세기 전체는 현실에 대한 다면적인 그림, 모순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 동시에 신비로운 의미로 가득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42쪽)

유대교인과 기독교인이 창세기를 하느님이 주신 말씀으로 믿는 것과 별개로, 성서학자들은 그 본문에서 문체와 내용이 상이한 몇 개의 문서자료를 식별해냈다. 헨델은 창세기 본문을 발췌하여 신과 인류, 세계에 관해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진 자료들과 그 특성을 보여 준다. 창세기는 이런 이질적인 자료들이 결합하면서 복잡하고 난해한 본문이 되었고, 이런 상충하는 모순을 이해하기 위해 후대에 해석이 필요해졌다는 것이다.

창세기의 ‘사후의 생애’

“한때 널리 퍼져 있던, 성서를 이해하는 방법에 관한 가정은 분열되고 파편화되었다. 전통적으로 창세기가 답했던 신, 우주, 인간의 기원과 운명에 관한 질문들은 이제 열린 질문으로 남거나 심지어 답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사람들은 조각들을 다시 묶어내는, 그러면서도 현실을 참되게 볼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하는, 창세기를 새롭게 보는 방법을 요청하고 있다.”(254쪽)

창세기 해석은 시대 변화와 발맞추며 변화했다. 본디 신이 창조한 현실 세계를 묘사했지만, 같은 본문이 곧 도래할 미래의 낙원 혹은 플라톤적 형이상학 세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지다가 다시 상징 세계의 암호가 아닌 역사적 사실로 읽혔으며, 변곡점에는 늘 인류 문화사의 굵직한 변화가 함께였다. 사람들이 말로는 본문을 정확하게 읽는 것이 중요하다지만, 실상은 듣고 싶은 이야기와 의미를 찾으려 방법을 찾았고, 이에 그들이 창세기를 해석하고 활용하는 방식에서 그 시대의 요구와 욕망이 드러났다. 요구가 다른 무리는 서로 격한 논쟁과 격돌을 통해 어느 한쪽으로 수렴되거나 아예 양분되었고, 구체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이런 패턴이 2,500여 년간 반복되었다.


헨델은 각 장에서 인류사의 변화에 따른 창세기 해석의 변화를 요목조목 짚어내는데, 실로 방대한 자료와 통찰력 있는 해석으로 독자를 흡인한다. 고대 근동 신화부터 칠십인 역과 필론으로 대표되는 히브리 사상과 그리스 사상의 융합, 단테의 『신곡』과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 라쉬, 루터, 라블레의 풍자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갈릴레오, 스피노자, 에밀리 디킨슨의 시와 카프카의 『소송』, 아우어바흐의 『미메시스』에 이르기까지 온갖 분야를 총망라하며, 나열만으로도 벅찬 이들의 말과 주요 작품을 일일이 발췌하며 세밀하지만 거하지 않게 다룬다. 디킨슨의 시와 카프카의 『소송』이 창세기의 모티브를 활용하고 변용하는 지점에서는 감탄이 새어 나온다. 창세기는 근대 개념/사상과 상충하면서 예전의 권위는 잃었지만, 이제 문학적·도덕적 상상력의 원천이자 탁월한 문학적 가치를 지닌 본문으로 작동한다. 아우어바흐는 『미메시스』에서 창세기를 문학적 감수성으로 읽으면서 그 안에서 도덕과 현실의 중층성을 감지하고, 창세기가 복잡한 현실을 얼마나 정교하고도 세련되게 재현해내는지 발견했다. 헨델은 ‘이제 교회의 권위에 얽매이지 않고 비로소 있는 그대로의 더 멋진 읽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고 결론 짓는다.

창세기의 ‘아직 끝나지 않은 전기’

“우리는 창세기 이야기를 허구의 이야기로 읽도록 배웠다. 우리 동네(서구 문명)가 창세기 이야기들을 해석해온 방식도 대체로 허구였다. 해석조차 전설이 된 전설은 무슨 쓸모가 있는가? 소설로 포장된 소설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316쪽)


헨델은 나지브 마흐푸즈(Naguib Mahfouz)의 1959년 소설 『우리 동네 아이들』을 소개하면서 이 책을 마무리한다. 비참한 삶 속에서도 옛이야기를 하며 더 나은 날을 희망하는 동네 사람들의 모습에 진력이 난 소설 속 한 인물이 ‘우리 동네는 저 도움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대체 왜 그만두지 않느냐’고 묻는다. 헨델은 이 질문이 창세기의 생애와 관련된 핵심을 마주하게 한다고 말한다.

“왜 우리는 여전히 이 이야기들을, 이 이야기들에 대해 말하는가? 그 이야기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 동네 이야기기 때문이다. … 창세기의 이야기들은 우리의 이야기들이고 우리는 그 이야기들의 아이들이기 때문이다.”(316~317쪽)

박영희(연세대학교 교양교육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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