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
2023년 외교부 자료에 의하면 우리 재외동포는 708만 명이 해외에 체류하거나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가히 노마드(Nomad)의 시대이며, 디아스포라(diaspora)의 시대이다.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는 현대사회를 ‘노마드의 시대’로 규정하고, 현대문화의 특징을 ‘노마디즘’(Nomadism)으로 정의한 바 있다. 그는 국가, 인종, 민족 간을 초월하여 끊임없이 이동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을 ‘호모 노마드(Homo Nomad)’ 즉 유목하는 인간이라고 지칭하였다. 바로 이러한 ‘노마디즘의 시대’에 수많은 디아스포라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이제 한국문학에서는, 국내 문학뿐만 아니라 그동안 경시되거나 소외되어온 디아스포라 한인문학에 관한 연구가 꽤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경향과 태도는 그동안 한국문학이 고집했던 국내 중심 문학의 견고한 패러다임을 탈피하여 한국문학의 저변과 인식의 지평을 확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재외한인들의 문학유산을 한민족의 문학으로 통합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며 당연한 귀결이라 여겨진다.
그동안 디아스포라 한인문학에 관한 연구는 중국, 구소련, 일본 등을 비롯한 북중미 미국이나 캐나다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여기에 재외한인문학 중에서도 주변부에 해당되는 호주, 남미대륙의 한인문학 연구가 더해졌으며, 특히 기존에 다루어지지 않았던 유럽의 재독 한인문학에 대한 이명재의 본격적인 연구(이명재, 「유럽지역의 한인 한글문단-<Berlin 문향>, <재독한국문학>, 기타 경우」, 『한국문학과예술』,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2014)는 주목되는 성과라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유럽지역에서 거주하고 있는 한인들이 쓴 작품을 모은 『유럽한인문학』1)이 발간되기도 하였다.
이제 점차 디아스포라 한인문학 연구는 재외한인문학 중에서도 소외되어온 주변부로 확대되어 가고 있지만, 그 중요성에 비해 여전히 미개척상태로 남아 있는 지역이 실재한다.
이러한 문제의식하에 이 글은 아직까지 연구가 전무한 오스트리아 한인문학을 소개하고자 한다. 분량의 제한으로 인해 개괄적이나마, 시론(試論)으로서의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이 글에서 다룰 텍스트는 재오 한인들이 ‘오스트리아 한인문우회’(오스트리아 한인여성문우회)라는 명칭으로 발간한 문집인 『도나우 담소』이다. 『도나우 담소』는 2013년 창간되어 2년 주기별로 간행되는 종합문예지로서, 오스트리아의 유일한 한인문학 잡지이다. 이 글은 2013년 창간호부터 2019년 제4호까지 간행된 텍스트를 논의의 대상으로 하며, 주된 논의 텍스트는 필자가 입수한 제2호부터 제4호까지이다.
오스트리아에는 2023년 외교부 자료에 따르면 2,681명의 재외동포가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이는 결코 많지 않은 숫자이나, 오스트리아 한인문학은 한인문학의 붐을 일으켜, 홍진순, 김자경 등이 국내 문단에 공식적으로 등단하는 성과2)를 낸 지역이기도 하며, 그 어느 지역보다도 한글문학에 대한 의욕과 열의가 지대한 곳이다.
2. 재오스트리아 한인문학의 형성과 『도나우 담소』에 수록된 작품 현황
‘오스트리아 한인문우회’는 2012년 창립 당시 처음에는 ‘오스트리아 한인 여성문우회’라는 명칭으로 창립되었다. 이 명칭은 2015년 『도나우 담소』 제2호까지 유지되다가 2017년 발간된 제3호부터는 ‘오스트리아 한인문우회’로 개칭하였다. 이어서 2019년 11월 23일에 제4호 문집인 『도나우 담소』를 발간하였다.
오스트리아 한인문우회는 처음에는 20명의 회원으로 시작하였다.1주일에 한 번 글짓기 시간을 가졌으며, 매년 ‘이리수 글방’에서작문을 통해 서로의 생각과 경험을 함께 나누면서 문학작품을 창작하게 되었다. 또한 한인문화회관 등에서 문학작품 수업을 열었고, 국내외의 문인들과 종교인 등을 교사로 초빙하여 문학 활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작품을 창작하는 회원들은 다른 지역의 디아스포라 한인문학처럼 이주 1세대들이다. 제3호에 수록되었던 비엔나 한글학교 3명의 학생들의 작품을 제외하면 아직 2, 3세대들의 작품 창작은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작품을 창작하고 있는 이주 1세대들은 대부분 고령의 여성들이다.
현재 확인할 수 있는 『도나우 담소』 제2호부터 제4호까지 작품을 실었던 회원들은 강선덕, 강유송, 김귀중, 김방자, 김양미, 김자경, 김현숙, 명경아, 무개, 박영숙, 서혜숙, 신경옥, 유순희, 은가비, 이영실, 이은희, 전윤령, 정화자, 최차남, 홍진순, 황병진 등 총 21명이다, 물론, 글짓기 지도교사였던 최영식, 백충관의 작품도 수록되었지만, 실질적으로 작품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회원은 21명이며, 최영식, 백충관을 제외하면 회원은 모두 여성으로 파악된다.
다음은 필자가 현재까지 자료상으로 파악한 회원들에 대한 정보를 토대로 회원 구성원들의 면모를 간략하게나마 제시한 것이다.
먼저 파독된 간호사 출신이 재오 한인문우회 구성원 일부를 이루고 있다. 김방자, 정화자, 홍진순 등과 같이 파독 간호사로 파견되었지만 독일의 이민법 개정으로 자리를 얻지 못하고, 다시 오스트리아로 재이민을 떠나 현지인 남자와 결혼하여 다문화가정을 이루면서 글을 쓰는 회원들이 그들이다. 이들은 간호사로서 파독되었던 점은 동일하지만, 조금씩 다른 상황과 배경을 지녔다. 주지하듯이 1966년부터 1976년까지 한국 정부에서는 실업 문제 해소와 외화획득을 위한 해외 인력수출의 일환으로 서독에 1만여 명의 간호사를 파견하였다. 김방자와 정화자는 국가에 의해 파독되었으며, 홍진순은 한국에서 국군간호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간호장교로 복무하다가 예편하여 1981년에 스스로 취업하기 위해 서독으로 이민을 떠났다. 그 외 김자경이나 김현숙처럼 국내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오스트리아로 이민을 떠나 현지인과 결혼한 이후 정착하면서 글을 쓴 경우 역시 있다.
한편, 오스트리아의 유일한 한인문학 종합문예지인 『도나우 담소』에 수록된 한인들의 작품 현황을 창간호부터 제4호까지 검토해보면, 유별나게 수필 장르가 많이 창작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재오 한인들은 왜 그렇게도 수필 장르에 유독 집착하여 다량의 작품을 창작했을까? 이에 대한 단서를 다음과 같은 글에서 쉽게 포착할 수 있다.
타국에 와서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면서 이중문화 속에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게 된다. 아울러 그 속에서 ‘나’라는 존재의식과 ‘고향’ 그리고 의사소통의 근원인 ‘우리말’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것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자신들의 삶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자손들에게 남기기 위한 일환으로 글이란 매체를 통해 기록을 하면서 문학에 대한 관심을 갖고, 또 문학이란 형태의 글들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밑줄-필자) (쾨펠연숙, 「유럽 속의 한글문단-타향 속의 고향」, 『제2회 세계한글작가대회 발표 자료집』, 2016, 153쪽)
인용문은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재외한인들이 문학작품을 쓰는 근본적인 이유를 표상하는 매우 중요한 진술이다. 인용문에 의하면, 디아스포라 한인들은 국내외 문단에 등단을 위한 수단으로 글을 쓰기보다는, 자신들의 후손들에게 자신들의 삶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 글을 쓴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그들의 글이 곧 자신들의 디아스포라 삶의 기록이며, 역사이자 삶 그 자체라는 인식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과정이야 어떻든 고국을 떠나 이방인으로서 타국에서 살아가기 위해 감내해야 했던 그들의 각고의 체험과 노력, 그리고 그 정신을 기록하여 그들의 후손들에게 남기고자 한 의지가 글쓰기라는 행위로 귀결된 것이다. 이렇게 보면, 그들에게 글쓰기란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아가는 그들의 생생한 삶의 체험이자 역사인 셈이다. 글쓰기의 행위 그 자체가 문인으로서 어떤 문단 데뷔나 영광을 누리겠다는 의식의 발산이 아닌, 낯선 땅에서 소수민족인 디아스포라 한인으로서 살아가는 그들의 삶의 역사를 후손들에게 남기고자 한 숭고한 정신이 깃든 의식적인 행위인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재오 한인들이 왜 그렇게 유독 수필에 관심을 보이고 다량으로 창작하였는가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수필은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나’를 드러내고 표출하기 용이한 장르이다. 수필은 짧은 서정시에 담을 수 없는 서사를 비교적 쉽게 담아낼 수 있으며, 자신의 정서를 직접적으로 고백하는 1인칭 문학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다시 말해 형식적인 개방성과 소재의 다양성 그리고 자신의 정서를 직접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1인칭 문학이라는 점에서 수필이라는 장르는 그 어떤 문학적 장르보다 그들의 삶의 역사를 효과적으로 재현하고 전달할 수 있는 매우 적합하고 유용한 장르였던 셈이다. 바로 이러한 요인으로 재오 한인들은 유독 수필을 다량으로 창작하여 그들의 문집인 『도나우 담소』라는 그릇에 자신들 디아스포라의 서사를 담아냈다고 할 수 있다.
3. 재오스트리아 한인문학의 성향
3.1. 그리움의 정서, 노스탤지어(nostalgia)의 문학
재오스트리아 한인문학 역시 다른 재외한인 디아스포라 문학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그리움의 정서를 담고 있는 작품이 전 장르에 걸쳐 표출되고 있다. 이는 디아스포라 한인문학에서 가장 본질적인 성향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오스트리아 한인문우회의 유일한 문학작품집인 『도나우 담소』에 수록된 작품을 검토해보면, 그리움을 표출한 노스탤지어 성향의 작품이 압도적으로 주류를 이룬다. 그리움을 표출한 대상은 고향이나 현지인 남편, 친족, 친구 등으로 재현되고 있다. 이 중에서도 고향이나 현지 남편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를 담은 작품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3.2. 이방인(경계인)으로서의 외로움과 문화적 차이로 인한 갈등
한편 현지에서 느낀 이방인 혹은 경계인으로서의 정서를 표출한 대표적인 작품은 신경옥의 시 「5월에 내리는 눈」이 있으며, 현지인 남편과의 갈등을 다룬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홍진순의 단편소설 「연어」를 들 수 있다.
「5월에 내리는 눈」에서 하얀 ‘홀씨 꽃’은, 낯선 이국땅에서 정처 없이 걷고 있는 화자에게, 애틋한 고향과 그 고향에 남겨 두고 온 자신의 딸을 떠오르게 하는 반가운 대상이면서, 동시에 고향에 두고 온 딸과 공존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상기시키는 야속한 대상이기도 하다. ‘홀씨 꽃’은 화자와 동일시되면서 ‘홀씨 꽃’ 역시 자신과 같은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며, 시상은 마무리된다. 결국, 이 시는 노마디즘의 시대에 낯선 이국땅인 오스트리아에서 디아스포라 이방인으로서 살아가는 외로움과 서글픔의 정서를 시화(詩化)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방인으로서 현지인 남편과의 갈등을 그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홍진순의 단편소설 「연어」가 있다. 이 작품은 현지인 남편과 결혼을 하여 아이까지 낳고 살아가지만, 이방인으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견디기 힘든 남편과의 갈등을 그린 결과물이다. 「연어」에서 화자는 문화적 차이 혹은 가치관의 차이로 인해 남편과 심한 갈등을 겪으면서 하루하루의 삶을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것으로 제시된다. 화자는 남편이 바라는 ‘이상형의 조각상’으로 점점 변하게 되었고, 자신의 ‘심장의 피는 다 말라 버렸으며, 교양 있는 박제가 된 귀부인이 되었다’라고 토로한다. 결국, 단편소설 「연어」는 문화적 차이나 가치관의 차이에서 비롯된 부부간의 심한 갈등을 그리고 있지만, 결국 엄마의 삶이 그랬듯이 화자 역시 자신의 원래 자리를 찾아 회귀하는 연어의 고유한 습성처럼 자신의 가정으로 되돌아가는 일련의 과정을 그린다.
3.3. 정체성 자각과 민족적인 동질성 확인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관한 대표적인 작품은 강유송의 시 「내 남자」(제4호), 황병진의 수필 「붉어진 김밥」(제4호), 김현숙의 동화 「꿈」(제3호) 등이 있다. 아울러 두 나라 간 민족적인 동질성을 다룬 작품으로는 홍진순의 수필 「나치소녀」(제4호)가 있다.
「내 남자」는 화자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성장했던 남편이 자신의 고국인 한국의 문화를 습득하는 과정을 제시하고 있으며, 남편과 화자가 죽음을 맞이할 때, “존경하는 단군의 후손”으로 남으리라고 노래한다. 특이하게 화자는 오스트리아 현지 남편에 대해 ‘야만인 타국에서 태어나 젓가락 사용법도 모른다’라고 진술하면서 ‘해가 거듭될수록 이러한 남편은 반 한국인으로 변해가고 있는데, 아직도 남편을 제대로 된 사람으로 만들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에 남편과 함께 살아가길 바란다’라고 진술하고 있다.
이 시는 화자가 의도적으로 진술했든 안 했든 간에 완전히 현지 문화에 적응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현지 문화에 적응하고 그것을 수용, 포용했기에 자신의 고국인 한국의 문화와 단군의 후손이라는 자부심이 거침없이 표출되기에 이르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남편을 “야만인의 타국” 출신으로 명명하고 있으며, 그러한 남편이 반 한국인으로 변해가는 모습에서 화자의 기쁨과 보람이 배어남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결국, 이 시는 디아스포라 문학의 전형적인 특징인 혼종성과 탈민족적인 성격을 여실히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뿌리에 대한 정체성의 자각을 표출한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한편, 현지 문화에 적응하는 과정, 그리고 이를 통해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자각하는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황병진의 수필 「붉어진 김밥」이 있다. 초등학생인 화자의 큰아이는 소풍을 가게 되었는데, 화자는 새벽부터 전형적인 한국식으로 큰아이와 담임 선생님의 도시락을 온갖 정성을 들여 준비한다. 목적지에 도착한 후 점심시간이 되자 한국식 엄마가 된 화자는 큰아이의 담임 선생님에게 도시락을 드렸으나, 담임 선생님은 뜻밖에 깜짝 놀라며 자기가 준비해 온 빵을 먹겠다며 화자가 준비해 온 도시락을 극구 사양한다.
이에 화자는 한국식 풍습과 너무나도 다른 의외의 상황에 무척 당황스러워하며 부끄럽고 무안한 감정을 느끼며 얼굴이 붉어지게 된다. 그와 같은 얼굴 붉어지는 경험을 한 이후 화자는 ‘한국적인 정서로는 소풍 가는 날만이라도 학부모가 선생님을 위해 도시락을 준비하여 감사의 뜻을 표하는 것이 훈훈한 정인데, 그 후 학교에서는 우리의 것만, 내가 해야 할 역할만 하며 자신도 인정이 없는 사람으로 변해가는 것은 아닌지 하는 혼동을 느끼게 되었다’라고 고백한다. 이러한 혼동은 곧 깨달음으로 이어지는데, 그 깨달음은 ‘처음에는 서양 사람들은 에고이스트라고 생각했는데, 화자는 오랜 세월 동안 서양에서 살면서 시행착오를 거친 후, 그들의 사고가 꼭 이기적인 것만이 아니라는 것, 오히려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상대방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예의 있는 태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밝힌다. 동시에 화자는 ‘자신의 몸에는 여전히 한국인의 정서로 흠뻑 적신 피가 순환하고 있으며, 그래도 한국인은 역시 마음이 푸근해지는 정으로 엮어야 한다’라고 되새기면서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기에 이른다.
이상과 같은 작품들은 ‘정체성 특히 사회, 문화적 정체성이 한 집단에 고착된 속성이라기보다는 다양한 집단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의 결과로 생기게 되는 산물이고, 그 정체성은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타 집단과의 관계나 문화 접변을 통하여 새롭게 형성되고 변화해 나가는 것’(김완규, 「다문화주의 시대의 문화상호적 문학텍스트 분석」, 『독일어문학』 40, 한국독일어문학회, 2008, 27쪽)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홍진순의 수필 「나치소녀」는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시어머니가 겪은 제2차 세계대전과 화자 자신의 고국에서 벌어진 한국전쟁을 대비하면서 서로 다른 두 나라 간의 고통스러웠던 역사적인 삶을 함께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음을 내비치는 작품이다. 이와 같은 점에서 「나치소녀」 역시 디아스포라 문학의 성격인 혼종성과 탈민족적인 색채가 두드러진 작품으로서, 두 나라 간에 민족적인 동질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민족이란 ‘상상의 공동체3)’라는 말을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상기한 특징 외에도 현지에서의 일상적인 삶을 노래한 단상적(短想的)인 서정시가 『도나우 담소』 제2호에서 제4호까지 전 장르에 걸쳐 주류를 형성하였다.
4. 맺음말
이상과 같이 디아스포라(diaspora) 한인문학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다루어지지 않았던 미개척 분야인 재오스트리아 한인문학의 현황과 작품의 성향을 살펴보았다. 전술한 바와 같이 현대문화의 특징은 ‘노마디즘’(Nomadism)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시대에 낯선 이국땅인 오스트리아에서 한인들은 그들의 삶과 문화를 문학적으로 재현하여 작품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지금도 그 문학 활동은 지속되고 있다. 그들이 고국이 아닌 낯선 이국에서 살아가는 자신들의 삶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그들의 문학은 디아스포라 문학이며, 그들의 문학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그동안 국내 중심의 문학에 집착하여 고집해왔던 견고한 패러다임을 깨고 한국문학의 저변과 지평을 확장하는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오스트리아 한인문우회’는 2012년 창립 당시 ‘오스트리아 한인 여성문우회’라는 명칭으로 출발했으나, 그들의 유일한 문집인 『도나우 담소』 제3호(2017)부터는 ‘오스트리아 한인문우회’로 개명되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들이 문학 활동을 전개하는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는 자신들의 디아스포라의 삶의 역사를 후손들에게 전하고자 함이며, 그래서 다른 장르보다 자신들의 삶의 역사를 기록하기에 더 수월한 수필 장르를 눈에 띄게 다량으로 창작한 것으로 이해된다.
디아스포라 재오스트리아 한인 작품의 성향은 그리움의 정서를 담은 노스탤지어(nostalgia), 이방인 혹은 경계인으로서의 외로움 표출, 문화적 차이로 인한 갈등, 정체성의 자각, 민족적인 동질성 확인, 현지의 일상적인 삶을 노래한 단상적(短想的)인 서정시 등이 있다.
문학적 평가나 작품의 질적인 평가를 떠나, 디아스포라 재오스트리아 한인문학은 소수의 회원 중심으로 구성된 단체에 의해서 전개되고 있으나, 그 어느 지역보다 일정한 문학적 성과를 냈고 한글문학에 대한 의욕이 제고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재오스트리아 한인문학에 참여한 모든 재외동포 문인들에게 심심한 존경과 경의를 표하기에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미주>
1) 유럽 전 지역에서 한글로 작품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한인들의 작품을 모아 펴낸 『유럽한인문학』은 2017년 4월에 국내 출판사 꿈과 비전에서 창간호와 2019년 6월에 제2호가 발간하였다. 제3호는 국내 에디아출판사에서 2020년에 간행되었다. 2) 홍진순은 2019년 『한겨레문학』 제1회 수필부문에 「나치소녀」로 당선되어 공식적인 문인으로 데뷔하였으며, 김자경은 2019년 『문학나무』 가을호 신인 작품상에 응모해 단편소설 「메리크리스마스」로 신인작품상을 수상하여 등단하였다 3) ‘상상의 공동체’란 민족의 정체성이 원래부터 존재하던 본질적 요소라기보다는 여타 민족들과의 관계 즉 갈등이나 교섭 등을 통해 후천적으로 형성된 사회적, 문화적 구성물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다.(베네딕트 앤더슨, 『상상의 공동체』, 나남출판사, 2007,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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