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했다. 푸틴은 이를 ‘특별 군사작전’이라 명명했지만 명백한 침략전쟁이다. 세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돌이켜보면 ‘충격’이라는 표현은 어쩐지 어색하다. 단지 유럽 대륙에서 일어나지 않았을 뿐이지 전쟁은 세계 도처에-특히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다양한 형태로 지속되고 있었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도 갈등이 고조되고 있었다. 침략 전쟁을 일으키고 백린탄과 확산탄 등 비인도적인 무기를 사용하고 민간인을 폭격하는 등 무수한 전쟁 범죄를 저지른 러시아와 푸틴은 말할 것도 없고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 또한 전쟁을 피하려는 노력보다는 전쟁을 준비하는 데 더 많은 힘을 썼다. 우크라이나 평화연대(Ukrainian Pacifist Movement) 사무국장 유리 셸리아젠코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쟁을 멈추고 평화협상을 하겠다는 공약으로 2019년 당선되었지만 이 약속을 깨고 친 러시아 언론과 우크라이나 내 반대 세력을 억압하기 시작했고, 만 18세에서 60세 사이의 징집 가능한 나이대 남성들의 출국을 금지하는 등 전쟁을 착실하게 준비했다. 전쟁은 끔찍한 비극이지만 이런 비극이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첫 번째 답답함: 지정학적 분석 속에선 보이지 않는 시민의 힘
전쟁이 일어나고 세계의 관심이 우크라이나로 쏠렸다. 푸틴의 책임, 나토와 서방의 책임, 젤렌스키의 책임을 성토하는 지정학적 분석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평화운동을 하는 활동가로서 쏟아지는 지정학적인 분석에 약간은 막막함과 무력감을 느꼈다. 지정학적인 접근은 전쟁의 원인을 찾고 전쟁을 중단하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하지만 지정학적인 접근만을 강조하다 보면 전쟁을 입체적으로 보기 어려워진다. 전쟁터 안팎에서 세계의 시민들이 전쟁과 맺는 다양한 관계들-전쟁에 협력하거나 지지하고, 방관하거나 방조하고, 전쟁에 저항하는 다양한 시선을 놓치게 된다. 전쟁이 일어나는 것에는 정부와 국가, 즉 정치인들과 고위 군인들의 책임이 가장 크겠지만 그들 간의 권력의 작용에만 초점을 맞추면 결국 전쟁을 멈출 수 있는 힘 또한 그들에게만 존재한다.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몇 년마다 돌아오는 선거 때 정치인을 잘 뽑고 평소에 감시하는 역할밖에 없다. 물론 이는 무척 중요한 일이지만,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전쟁에 저항하는 방법은 아니다. 전쟁의 행위자를 국가와 정부로만 보지 않고, 시민들이 어떻게 전쟁에 동참하고 저항하는지를 이해한다면 시민들의 힘으로 전쟁을 멈출 수 있다. 평화운동은 바로 시민들의 힘을 조직해 전쟁에 저항하는 운동이다.
전쟁을 멈추는 시민들의 평화운동은 대규모 시위를 조직하거나 전쟁에 반대하는 공개적인 의사표현을 통해 자국 정부를 압박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도 전 세계 여러 도시들에서 대규모 반전집회가 열렸다. 한국에서도 평화단체, 인권단체를 중심으로 촛불집회가 열렸다. 과거 베트남전 반전운동이나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규모가 크지 않게 느껴졌을 수도 있지만 코로나가 극심한 시기였다는 걸 염두에 둔다면 정말 많은 이들이 모였다. 전쟁이 발발하고 난 직후 러시아 대사관 인근에서 열린 촛불집회에는 당시 방역 당국의 가이드 인원인 300명을 훌쩍 넘는 사람들이 왔고, 많은 이들이 멀찌감치 떨어져서 촛불집회에 참석해야 했다.
두 번째 답답함: 사그라드는 관심
대규모 시위를 조직하는 방식은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독려할 수 있고, 많이 모인다면 정말 큰 힘을 발휘하지만 꾸준히 지속되기는 힘들다. 푸틴의 바람과는 다르게 전쟁이 길어지면서 대규모 시위 방식의 반전평화운동도 조금씩 힘이 빠져갔다. 한국에서도 촛불집회는 회차를 거듭할수록 참가 인원이 줄어들었다. 쉽게 사그라드는 사람들의 관심이 서운할 수도 있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사람의 감정은 똑같이 지속되지 않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온 신경을 쓰기에 우리는 멀리 떨어진 땅에 살며 우리 사회의 여러 산적한 문제도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는데 전쟁을 멈출 수 있는 시민들의 힘은 흩어지는 상황. 평화활동가들이 가장 무기력감을 느끼는 순간이다. 연일 들려오는 전쟁의 끔찍한 참상에 가슴 아파하며, 그 아픔마저도 익숙해지는 순간에 과연 우리는 전쟁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인류애와 인간성에 호소하는 것은 한계가 분명했다.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인 면에서 세계 질서 속 한국의 위상을 이야기하며 지금 당장 전쟁을 멈추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를 중재하는 데 한국 정부가 나서라는 이야기는, 참 좋고 옳은 이야기다. 하지만 평화의 중재자가 될 마음도 실력도 없는 윤석열 정부가 나토와의 접촉면을 의도적으로 늘려가는 상황에선 뜬구름 잡는 이야기에 불과할 뿐이었다. 안보에 대해 완고하게 군사적인 방식을 고수하는 정부, 점점 사그라드는 전쟁에 대한 관심과 시민들의 행동력을 고려했을 때 정부를 압박해 정부가 태도를 바꾸거나 전쟁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기를 기대할 수 없었다.
우리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 러시아 병역거부자 난민
대규모 시위는 큰 힘을 발휘하지만 정치지도자의 선택에 기대야 한다는 점이 단점이다. 그래서 평화운동은 때때로 정부를 압박하기보다는 정부가 전쟁을 수행하거나 전쟁에 동참하는 것을 물리적으로 방해하는 방식으로 전쟁에 맞선다. 병역거부운동처럼 전쟁에 동참하거나 동원되기를 거부하는 불복종 운동을 떠올리면 된다. 이런 방식의 운동은 소수일 때는 큰 힘이 없다는 것이 단점이지만, 정부가 전쟁을 지속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방해하기 때문에 정부에게 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큰 부담을 안긴다.
이 글에서 다루지는 않겠지만 무엇이 우크라이나의 평화인지에 대해서는 한국의 시민사회도, 전 세계의 사회운동 그룹들도 의견이 갈렸다, 우크라이나의 군사적 승리 없이 평화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고, 군사적 대결은 평화가 아니며 평화협정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확실하게 합의할 수 있는 것은 러시아의 군사적 승리는 평화의 확실한 반대말이며, 러시아가 전쟁을 자신들의 뜻대로 이어가지 못하도록 하거나 전쟁을 지속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 또한 전쟁에 저항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침 한국에 전쟁을 피해 러시아를 탈출해 온 난민들이 있었다. 그들 중 다수는 2022년 9월 푸틴이 동원령을 발표한 뒤 징집되어 전쟁터에 끌려가는 것을 피해서 온 병역거부자였다. 수백 명이 인천공항으로 들어왔다. 윤석열 정부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가치동맹을 역설하고 있지만 전쟁을 피해 자유와 민주주의를 찾아온 이들에게 난민심사 기회조차 주지 않았고, 기다리다 지친 러시아 난민들은 한국을 떠났다. 최종적으로 3명의 러시아 병역거부자 난민이 행정소송을 통해 이제 겨우 난민심사 자격을 확보했다. 전쟁 전 한국에 거주하다가 전쟁이 발발한 뒤 난민 신청을 한 러시아 병역거부자들도 있다. 정확히 몇 명인지 파악조차 어려운데 이들 중 한 명은 난민심사에서 떨어졌고 심사 결과에 대한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우크라니아 전쟁에 대한 사회 전반의 관심도가 낮아진 지금, 나는 한국의 시민사회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멈추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가장 효과적인 일 중 하나가 러시아 난민들을 지원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가 러시아 병역거부자 난민을 받아들이는 만큼 러시아는 징집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고, 이런 일이 반복되고 늘어난다면 결국 전쟁을 지속하지 못할 만큼 큰 영향을 행사할 것이다. 우크라니아에 무기를 지원하는 것보다 러시아가 전쟁을 지속하지 못하게 병역거부자 난민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훨씬 효과적이고 평화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 한국산 무기 수출 반대
사람은 누구나 자신과 가까운 거리 혹은 자신이 연루된 문제에 관심이 높기 마련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비교해 보자면 이라크 전쟁은 마찬가지로 한반도와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일어난 전쟁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미국과 영국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많은 군인을 파병했고, 이 때문에 한국 정부가 아주 깊숙이 개입한 전쟁이 되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당사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비해 이라크 전쟁의 당사국인 미국은 좋든 싫든 많은 면에서 한국과 아주 깊게 연결된 국가다. 그러다 보니 한국 사회의 관심도가 굉장히 높았고, 반전운동도 거세게 일어났다. 반면 우크라이나 전쟁의 경우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겪는 고통에 마음 아파하고 러시아의 전쟁범죄에 분노하지만 우리와 직접 연관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관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국이 이 전쟁에서 직접적인 행위자는 아닐지 몰라도, 우리 또한 이 전쟁에 깊이 연루되어 있다.
뭇 전쟁이 그러하듯 우크라이나 전쟁 또한 방위산업체들에게는 좋은 돈벌이의 기회가 되었고 그중에서도 한국 방위산업체들의 기세가 눈부셨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 방위산업체들의 주가는 큰 폭으로 상승했는데(2022년 12월 1일 기준) 전쟁 전과 비교해 세계 굴지의 기업인 록히드마틴은 47.7%, 레이시온은 24.9%, 노스롭그루먼은 무려 54.1%가 상승했다. 이들조차도 한국 군수산업체의 주가상승률에 비하면 소소한 수준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72%, 한국항공우주산업은 75.1%, 현대로템은 74.8%의 주가상승률을 기록했다.
2022년 내내 한국 경제가 저성장에 무역수지 적자가 누적되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방산 수출의 성과는 눈이 부실 지경이다. 한국의 방위산업은 2022년 역대 최고인 170억 달러 수출을 기록했는데 이는 그전까지 기록적인 1위였던 2021년의 72.5억 달러의 두 배가 넘는 수치다. 폴란드에만 124억 달러어치 무기 수출을 했는데 이는 명백하게 우크라이나 전쟁 특수다. 전쟁은 우크라이나에 비극을 가져다주었지만 한국의 방산기업들에게는 막대한 이윤을 가져다준 셈이다. 한국 정부는 비극으로 돈을 버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전쟁을 틈타 더 많은 외화를 벌어들인 것을 성과로 포장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직접 무기를 지원해 전쟁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며, 당장의 한국산 무기 수출을 막는 것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중단시키고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가져오는 데 크게 기여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우리가 우크라이나 전쟁 특수로 무기수출에 열을 올리는 것보다 인도적 지원을 늘리는 것이 우크라이나의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최소한 전쟁이 일어났는데 평화를 위한 노력은 하지 않고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외치는 까닭은 당장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멈추는 것뿐만 아니라 앞으로 다른 곳에서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전쟁은 이미 시작되고 나면 어떤 결말이든 비극이다. 승리 아니면 패배, 아군 아니면 적군, 전쟁에 동참하는 애국자 아니면 전쟁에서 도망치는 비겁한 사람. 이분법으로 나뉜 폭력의 세계가 일단 열리면 평화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운동의 진정한 성공은 앞으로 일어날 전쟁을 막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쟁을 부추기고 전쟁 가능성을 높이는 전쟁무기 산업에 우리는 맞서야 한다. 세계 10위권의 무기 수출국이자 무기 수입국의 시민으로서, 지구와 인류를 위한 책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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