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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대학도서관을 위기로 내모는가? / 정재영

최종 수정일: 7월 4일

2000년대 초 전국 대학도서관에 장서 백만 권 채우기 경쟁이 벌어진 적이 있다. 대학이라면 최소한 백만 권의 장서는 확보해야 하지 않느냐는 총장을 비롯한 대학 당국의 생각과 요구에 대학도서관 사서들이 백만 장서 확보를 위한 경쟁 아닌 경쟁에 내몰렸다. 그러나, 왜 꼭 백만 권이어야 하는지, 도서관에 백만 권을 채우면 왜 좋은 대학이 되는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나 이유는 없었다.


유명 인사나 명망 있는 학자들이 소장하고 있던 장서를 기증받기 위한 시도와 함께, 일간에는 단기간에 백만 권의 장서를 채울 수 없어 중고책방이 몰려있던 청계천에 트럭을 대고 무게로 책을 구입해 장서인만 찍은 후 지하 창고에 쌓아 두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대학도서관계에 공공연하게 회자되곤 했다.     


전 세계에서 발간하는 학술과 연구 정보를 시대와 세대 간에 연결하기 위한 노력과 함께, 학생들의 학문적 성숙과 지혜를 고취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학술 및 교양도서를 구입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사서들에게 이와 같은 지시는 맑은 하늘의 날벼락에 가깝다. 국내·외 각종 출판사에서 발간하는 신간을 포함한 출판정보를 분석해 자료를 선정하려고 노력하는 사서들에게 시한을 두고 백만 권을 채우라는 지시는 대학이 학문의 전당이기를 포기하는 것이자 대학도서관의 위기를 불러오는 것과 다름없다.

     

불과 20년도 지나지 않아 이제는 장서의 증가에 따른 공간 부족과 디지털 시대에 종이책의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대학도서관 장서를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실제로 증가하는 장서에 비해 공간의 부족으로 한계 소장책수를 넘어선 대학도서관이 많이 있다. 경북대학교의 소장 책수는 342만 7573권으로 한계 소장책수 168만 8640권보다 2배 이상 많아 장서포화비율이 203%에 달한다. 제주대(189%), 부산대(173%), 서울대(160%) 등을 비롯한 대부분의 대학도서관이 공간 부족 문제를 안고 있다(매일경제, 23.10.25).

     

최근 모 대학도서관에서 새로 부임한 관장이 직원들을 모아놓고 ‘읽지 않는 책을 쌓아만 놓지 말고 폐기한 후 그 공간에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휴게실과 카페를 만들자’는 의견을 내놓았다고 한다. 말이 의견이지 관장의 권위를 내세운 명령이자 지시였을 것이다.


자신의 연구에 대한 업적과 성과에 대해서는 전문가 대접을 받고자 하면서 정보의 선택과 수집을 담당하는 대학도서관 사서의 전문성은 무시하는 이런 행태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대학당국에 성과를 보여주고 싶어 하는 신임 관장의 결정은 도대체 어느 정도의 무게를 갖는 것일까.

어떤 조직보다 최신 정보를 찾을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시대의 변화를 누구보다도 먼저 감지할 수 있다고 자부하는 대학도서관이 왜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일까. 학생들에게 학습과 연구를 위한 최첨단 정보탐색기술을 교육하는 전문사서들이 존재하는 도서관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생각할수록 막막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비단 몇몇 대학도서관만의 문제는 아니다. 많은 대학도서관에서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와 학생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이유로 장서를 폐기하고 그 자리에 다양한 이름의 디지털기기 활용공간과 휴게공간을 설치하고 있다. 도서관에 닥친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서들이 장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단순히, 책 읽기와 도서 대출 증가를 유도하기 위한 대출 기한 및 대출권수 상향조정이나 이벤트성 행사가 아닌 보다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차원의 방법이 필요하다. 학과와 연계한 주제별 도서 큐레이션 작업 즉, 학과의 학문 주제와 관련 있는 과거와 현재의 도서 목록과 실물도서를 수시로 학과와 연계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소개하는 작업을 통해 이용의 활성화와 장서의 소중함을 체험토록 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이용자들이 최첨단의 디지털 매체와 가상공간을 이용한 서비스만을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인쇄자료에 대한 선호 경향과 일상생활 속 디지털 환경에서 벗어나 오프라인 도서관의 고즈넉한 맛을 느끼고 싶어 하는 이용자들도 많다. "도서관 대여기록의 종이책 이용은 전자책보다 2.5배 높다. 따라서 학생들이 여전히 종이책을 선호해 아직은 한 번에 많은 양의 장서를 폐기할 계획은 없다."(미디어 한남. 2024.3.22) 어느대학 도서관장의 말이다.      


또한 장서가 주는 힘 즉, 장서의 미학적 활용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실제로 스페인 빌바오에 위치한 한 도서관은 인류의 지혜와 지식의 전달자로서의 도서관과 장서의 위대함을 보는 것만으로도 느끼게 하겠다는 의미로 서고를 전면 유리로 된 6층 건물로 조성했다. 이 도서관의 서고는 도시의 명물이자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스페일 빌바오 비스케 법정도서관 서고의 모습 [Biscay Statutory Library. Bilbao, Spain]

장서의 보존 공간이 문제라면 기존에 연구된 공동보존서고의 구축과 활용에 대한 논의가 보다 구체화 될 수 있도록 대학과 대학도서관의 적극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미국의 대표적인 공동보존서고 ReCAP(Research Collections and Preservation Consortium)의 운영 사례를 참고로 국내 상황에 맞는 공동보존서고 설립과 운영 방안에 관한 논의를 구체화할 시기가 되었다고 판단한다. 공동보존서고의 효율적 운영 시스템 구축을 위해서는 자료 보존의 최적성, 자료 이용의 신속성, 이용의 편의성 등이 고려된 공유 장서 및 공유 이용으로의 서비스 확대가 보장되어야 한다.      


조사에 따르면, 과거 2003년부터 2020년까지 리모델링을 포함한 공간변화를 시도한 대학도서관의 수가 99개 도서관에 이르고 투입된 금액이 1조 1천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1) 정보통신 및 기술환경의 변화, 그리고 대학도서관 평가항목 중 공간에 대한 투자 지표가 포함된 것 등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이용자들의 도서관 방문 횟수가 줄어드는 상황에 대한 해결방안 모색이 공간변화의 가장 큰 요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도서관 공간의 변화

최첨단 디지털 도서관을 지향하고, 대학도서관 공간을 학생들이 선호하는 화려하고 쾌적한 북카페 형태의 공간을 꾸미기 위한 시도는 역설적으로 늘 공간 부족의 문제를 불러온다. 이에 대한 해결을 논의하는 자리에선 언제나 장서를 폐기하면 되지 않냐는 말이 나오기 십상이다.    

  

책을 버린 자리에 북카페를 비롯한 휴게공간을 만들고 도서관 이용자 수의 증가를 치적으로 자랑하기에 바쁜 사람들은 누구인가. 단순히 도서관 방문자 수가 증가하는 것이 대학도서관 활성화이자 효율성을 증명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대학도서관이라면 도서관 출입자가 얼마나 늘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이용자가 어떤 목적을 갖고 도서관을 방문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대학도서관에 소장된 장서에 대한 필요성과 가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사서일 것이다. 그럼에도 마구잡이로 단시간에 많은 도서를 폐기할 수밖에 없는 것은 공간의 부족 문제를 장서폐기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이다. 대학도서관 사서가 장서의 확보보다 장서의 폐기에 내몰리는 상황은 분명 정상적이지 않다. 장서의 폐기에 대한 판단과 결정이 대학 당국의 요구와 결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상황은 결국 대학과 대학도서관의 질적 저하는 물론 학문연구의 위기를 불러오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1.정재영, 2022, 대학도서관 공간변화의 방향성에 관한 연구, 사대도협 연구보고서. 한국사립대학교도서관협의회.



정재영(문헌정보학 박사, 서강대학교 로욜라도서관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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