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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한 기계와 가혹한 삶 - 냉장고와 에어컨은 우리 사회를 어떻게 구분지었나 / 강부원

냉장고를 둘러싼 모종의 농담

   

기억이 날 지 모르겠지만 한 10년 전쯤인, 2013년 한 인문학자는 냉장고가 현대인의 소외를 가속화시킨다고 주장해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적이 있다. 물을 마시고 숨을 쉬는 것처럼 가전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대 사회에서 상실감을 유발하고 관계를 단절하는 원인으로 냉장고를 거론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이 쏟아졌다. 이 인문학자가 없애야 할 대상으로 하필 냉장고를 지목했고 사람들은 처음에 그 이야기를 듣고 그저 실소를 금치 못했다. 냉장고는 죄가 없다는 말부터 현실 상황과 동떨어진 진단과 처방을 내놓는 인문학의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비판까지 냉장고를 둘러싼 실로 황당한 소동이 벌어졌다.

물론 인문학자가 말한 냉장고라는 예시는 자본주의 기계문명이 인간 소외를 가속화하고 공동체성을 약화한다는 점을 말하기 위한 하나의 은유적인 방법론이었을 게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공동체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현대인이 살아가는데 필수불가결한 장치가 되어버린 냉장고를 없애야한다는 과격한 주장에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한다며 비판을 했을 뿐이다. 나는 새삼 다시 그 인문학자의 주장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그것에 과민하게 반응한 대중들의 비난에 편을 들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냉장고라는 가전제품이 하나의 사회적 이슈가 되고 이것이 인문학적 사유의 출발점으로 되새겨졌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

보통의 사람들은 이미 익숙해진 환경이나 안정적인 체제에 대한 불만을 갖기보다 그것이 별 탈 없이 유지되고, 지속되길 원한다. 자연과학의 입장에서는 이를 ‘적응’이라 표현하고, 정치사회학적으로는 ‘순응’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육체적인 노동력의 소모를 줄이는 방식으로 기계 문명을 발전시켜왔으며 그에 맞는 여러 장치를 개발하고 제도들을 고안해냈다. 더욱이 근대 사회이후 가장 유력한 자연과학이자 사회과학의 테제이기도 한 ‘다위니즘’에 따르면 인간은 합리적인 사유와 객관적인 판단을 통해 끊임없이 진보하고 발전하는 집단이다.

‘다위니즘’은 과학의 분야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손쉽게 적용되는 이론이었다. 생물학계에서 수 억 년에 걸쳐 진행된 수많은 진화와 퇴화의 사례들이 이를 증명하고, 근대적인 물질문명 사회로 이행한 인간 사회의 유구한 역사발전 단계론들이 이를 뒷받침해주었다. ‘다위니즘’은 때로 종교적인 맹목과 신념에 의해 오인되기도 하고, 비인간적이고 비도덕적인 윤리적 퇴행을 보여주는 사건과 사고 때문에 간단히 그 믿음이 배반되기도 하지만, 보편적 차원에서의 발전과 진보라는 가치를 믿어온 근대적인 사회 구성원들의 오랜 믿음은 ‘다위니즘’을 불변의 진리로 받아들인다.

한 인문학자가 야기한 냉장고 사건은 이제 너무나 익숙한 사물이자 기계인 냉장고를 근본적으로 다시 돌아보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인문학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냉장고라는 기계는 사회진화론에 입각한 적응과 순응의 산물로 등장했다. 이제 마치 자연화 된 배경처럼 가정마다 사용하고 있는 냉장고라는 대상을 우리가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는 점에서 냉장고 논쟁은 의미를 갖는다. 현대인들에게 이미 너무도 당연한 쓸모로 간주되는 기계장치들을 자신의 환경에서 탈락시키거나 삭제하라는 것은 가혹한 요구일 것이다. 인간이 물건을 집기 위해 손을 사용하거나, 밥을 먹기 위해 입을 사용하는 것처럼, 현대인은 음식이나 식재료 등을 보관할 때 당연하게도 냉장고를 사용한다.     

냉장고는 전기력을 사용해 냉매를 순환시키고, 일정 공간의 저온 상태를 유지해 식품 재료를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도록 고안된 기계이다. 냉장고는 점점 더 커지고, 기능을 발전시켜 왔다. 이제 냉장고는 각 가정과 개인의 식량을 저장하는 창고 역할을 떠맡게 되었다. 도시에 거주하는 많은 사람들은 한 달에 한두 번 대형마트에 들러 몇 십만 원어치의 식품을 구매해, 자신의 냉장고에 저장해둔다. 보통 가정의 냉장고에는 언제 넣어두었는지도 모를 고깃덩어리가 검은 봉지에 쌓여 있는 채 발견되기도 한다. 때로는 몇 해 전 친구의 돌잔치에서 답례품으로 받아둔 백설기 떡이 그 때 그 모양을 그대로 보존된 채 발굴되기도 한다.


     

취향과 계급으로서의 냉장고

   

냉장고는 자연 상태에 비해 저장과 보존 능력을 탁월하게 향상시킨 기계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영구적으로 그 식품의 질과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는 기계인 것은 아니다. 다만 천천히 좀 더 오랫동안 식품의 상태를 연장하는 기술을 적용했을 뿐이다. 때문에 냉장고는 자연의 시간을 인위적으로 거슬러 조정하는 기계라고 볼 수 있다. 보존에 대한 새로운 시간관념이 생겨난 것이다.

또한 냉장고는 사람들의 생활 감각과 섭취 가능성을 큰 폭으로 바꾸어 놓았다. 뛰어나게 발달된 냉장고의 냉각 기술 덕분에 음식 재료의 신선도를 유지하는데 매우 효과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자연 상태에서는 쉽게 썩어 버려 불가피하게 변질된 음식을 섭취할 염려와 걱정을 크게 낮췄다. 뛰어난 식품 보존력과 신선도를 유지하는 냉장고가 발명되고 난 뒤부터 누구나가 음식을 저장하고, 저장된 재료를 간편하게 조리해 먹는 문화가 발달하게 된 것이다. 냉장고를 둘러싼 모종의 농담과 이야기가 불편하거나 마뜩치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냉장고에 적응된 우리의 삶이 너무나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한편, 냉장고는 가정 구성원의 계급과 취향을 반영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냉장고의 브랜드와 용량, 디자인 등은 그 냉장고를 사용하는 사람의 경제적 수준 및 미학적 안목을 종합적으로 보여준다. 더 나아가 냉장고의 색깔과 수납방식, 도어의 배치 등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기호와 삶에 대한 철학을 나타내주는 단적인 증거가 된다.

가령 냉장고의 냉장-냉동 기능보다 그 디자인을 더 중시하는 사람은 냉장고가 사용하는 냉매의 종류 따위와 계란을 저장하는 칸이 몇 구 있는지는 별로 관심 없는 경우가 많다. 이 사람에게는 365일 묵묵히 주방의 한편에 자리하고 있는 냉장고가 자신의 집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미적 취향을 무엇보다도 단박에 설명해줄 수 있는 오브제로서 작동한다. 이런 경우 냉장고가 본연의 기능보다 일종의 생활의 디스플레이 감각으로서 대상화된 셈이다.

최첨단 냉장고 옆에 최정상의 인기스타를 함께 배치해 광고를 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냉장고는 이제 소비자의 기호와 취미를 반영한 선택을 기다리는 현대의 사치품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기백반원을 호가하는 세련된 냉장고를 사용하는 사람은 아마 전에 쓰던 냉장고가 기능고장을 일으켜 냉장고를 교체한 경우보다, 냉장고 디자인의 새로운 유행의 흐름을 따라잡기 위해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가정주부를 떠올리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연예인을 주요 모델로 내세웠던 1980~90년대를 지나 2000년대 이후 냉장고 광고는 휴대폰(통신사와 스마트폰), 화장품, 아파트 등의 광고와 함께 당대에 가장 급이 높은 배우를 모델로 활용함으로써 고급 지향과 세련된 이미지를 획득하려는 전략을 노골적으로 전시하였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1980년대 이전까지 냉장고는 소유하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원에서 계급을 나누는 지표로 사용되었다. 1990년대 이후 냉장고는 크기와 용량의 차원에서 자신의 존재성을 드러내었다. 2000년대 이후 냉장고는 다양한 기능, 혹은 용도에 따른 분화의 형태로 다각화되었다. 이제 2010년대 이후의 냉장고는 실내 인테리어의 매우 중요한 요소이자 주방의 얼굴로 그 역할을 확대하였다.

자동차와 시계와 같은 기계는 인간의 필요와 쓸모에 의해 발명-진화-확산되었지만, 소비재 기계장치들이 으레 그랬듯 이 기계들은 그 자체로 자신의 지위를 드러내는 일종의 상품이기도 했다. 번쩍이고 모양이 예쁜 장신구가 그것으로 치장한 사람의 맵시를 표현하거나, 허영을 드러내기도 하듯, 자동차와 시계 등속의 기계들은 소유자의 경제적 능력과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도 한다.

이제 가정의 냉장고도 한 집안의 품격과 수준을 드러내는 기계장치가 되었다. 흔히 백색가전으로 분류되어 일찍이 살림에 필수적인 기초 도구로 자리 잡았지만, 이제 냉장고는 가정 구성원의 기호와 취미를 드러내는 지표로도 활용된다. 가령, 현란한 색채감을 지닌 컬러풀한 냉장고를 사용하는 사람은 화려하고 다채로운 삶을 영위하고 싶어 하는 축일 것이며, 고고한 은빛 광택의 메탈 소재로 만들어진 직각 냉장고를 사용하는 사람은 어느 자리에서든 자신을 세련되게 꾸밀 줄 아는 사람일 공산이 높다. 전통적인 화이트 톤의 수수한 냉장고를 꾸밈없이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언제라도 단정하고 명민한 태도로 사람들을 상대하려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물론 냉장고와 같은 가전제품은 한 번 구입하거나 교체한 뒤에 일반적으로 최소 5년 이상, 혹은 족히 10년 이상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유행에 민감하게 따르기보다 개인의 취향과 성격을 반영해 신중하게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냉장고를 고를 때 악취탈취, 신선해동 같은 기능을 고려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늘 문이 닫혀있는 채로 약 1 제곱미터(0.3평)의 면적을 차지하고 10년을 우뚝 서 버티는 냉장고의 특성상 외관의 디자인 및 색을 따지는 사람이 많은 것은 자명한 이치다.

     


냉방 기술과 에너지 빈곤

   

냉장고는 말 그대로 인간이 발달시킨 냉방 기술을 식품을 저장하고 보존하는 방식으로 특별하게 고안된 기계이다. 아주 오래전 인간은 겨울철에 채집한 얼음을 여름까지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냉장 기술을 개발하였다. 즉 과거의 냉장 기술은 시간을 지체시키거나 지연하는 방식으로 구동되었다. 자연스러운 계절의 순환을 거스를 수 있는 인공의 기술이 부족한 시기에 겨울철에 획득한 얼음을 최대한 천천히 녹게 만드는 기술이 관건이었다. 하지만 근대 사회에 접어들어 냉장 기술은 전기의 사용과 관련되어 획기적인 발전을 이룬다. 단순히 온도가 변화하는 시간을 지체하는 방식을 뛰어넘어, 지정된 공간 내부의 온도를 직접적으로 통제해 물질성의 변화를 급격히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기술의 진보를 이뤄냈다.

냉방과 난방 등 전열기술의 발달은 현대인의 삶의 질 문제와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오랫동안 이어져온 인류의 냉난방 기술과 지혜가 총화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현대의 냉난방 기계의 성능과 건축 공법은 획기적으로 발전해 실내생활을 주로 하는 사람들은 과거처럼 꼭 철에 맞는 옷차림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되었다.


폭염이 드러낸 에너지 빈곤(사진출처-경향신문)

추운 겨울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지하주차장으로 바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차에 올라타 엔진을 가동한 뒤에 곧바로 열선시트와 히터를 작동시킨 뒤에 난방이 완벽하게 관리되는 회사로 출근하는 사람들에게 두껍고 불편한 겉옷은 전혀 필요 없게 되었다. 드라마에서도 상류층을 표상하는 인물들의 옷차림은 얇고 가벼운 경우가 많다. 보온 기능보다 미적 감각에 더 치중한 하늘거리는 소재로 만들어진 실크 재질의 옷을 걸쳐 입은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두꺼운 패딩 점퍼를 입고 추운 겨울 밖에서 일해야 하는 안쓰러운 주인공과 대립 관계 혹은 경쟁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제 몸을 따뜻하게 하는 옷보다 따뜻함을 별도로 구할 필요가 없는 생활이 더 윤택한 것으로 간주된다.


서울 영등포 쪽방촌의 에너지 빈곤 가정 실태(사진출처-파이낸셜타임즈)

한편 적시에 냉난방을 공급받지 못하는 이들을 ‘에너지 빈곤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에너지 빈곤층은 소득의 10% 이상을 전기나 기름값 등 광열비로 사용하는 가구를 일컫는다. 서울 전체 가구의 10%인 36만 가구가 에너지 빈곤층에 해당한다. 에너지 빈곤층의 4%는 집에 선풍기를 한 대조차도 운용할 수 없을 정도로 척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 자기 소득의 많은 부분을 광열비 지출에 사용해야만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 온도 변화가 극심한 한국의 사계절은 최악의 생존 환경이다. 폭염과 한파는 이들에게 재앙이다.

이러한 에너지 빈곤층을 위해 정부는 부족한 냉난방 비용을 공급하는 ‘에너지 바우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기초생활수급자 등 겨울철 난방에 어려움을 겪는 ‘에너지 빈곤층" 절반 이상이 에너지복지 제도를 모르거나 혜택을 못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에게 에너지 바우처 제도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지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지만 예산은 오히려 수년째 뒷걸음질치고 있다.

에너지 빈곤층에게 냉난방이 가능한 에너지를 공급하고 비용을 절감케 하는 것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꼭 필요한 제도이다. 불균등하고 차별적인 냉난방은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이 곤궁함과 절박함을 드러내는 가장 비참한 조건인 셈이다.


강부원( 작가,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현재는 성균관대, 한양대, 방송대 등지에서 강의하며 학생들과 문학·문화와 역사에 대해 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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