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20세기
‘새 역사교과서, 식민지근대화 빼고 '촛불혁명' 담는다’. 11월 1일 노컷뉴스 기사의 제목이다. 친일·독재 논란을 불러왔던 박근혜 정권기의 국정교과서를 비판적으로 극복한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했다는 내용이다. 고등학교 한국사의 경우 10개 출판사 중 8개 출판사의 교과서가 검정을 신청하여 최종 통과했고, 중학교의 경우 7개 출판사 중 6개사의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교과서에 대한 비판은 국가가 역사해석을 독점한다는 형식적 차원, 식민지 근대화를 긍정하고 군사독재를 찬양한다는 내용적 차원의 두 가지 문제가 있다는 것이 반대의 주된 이유였다. 국정교과서의 방향, 내용에 대한 비판은 이미 많은 지면에서 이루어졌기에 이 부분은 생략한다.
이번 칼럼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식민지 근대’의 역사성이다. 일단 국정교과서는 채택되기도 전에 폐기되었으므로 역사교과서에 일제가 미개적 문명의 한국을 근대화시켰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이 기존 교과서에 받아들여진 적이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이런 논의도 무의미하다고 볼 수 있지만, 필자는 오히려 식민지 근대를 교과서에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교과서에서 지금까지 식민지 근대를 외면한 부분은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식민지 근대가 외면된 것은 21세기를 맞이한 지금에도 20세기의 진영 대립이 교과서에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식민지 시혜론을 넘어 식민지 근대와 마주하기
일단 식민지 근대 논의를 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할 것은 일제가 한반도를 식민화하여 야만적 조선을 근대화하였다는 식민지 시혜론과 역사적 현상으로 존재하는 ‘식민지 근대’는 분리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일견 비슷해 보이지만 그 차이는 매우 크다. 낙성대 경제연구소로 대표되는 일군의 경제사학자들이 주장하는 경제성장 지상주의에 입각한 식민지상이 식민지 시혜론에 가깝다(물론 해당 연구자들은 이런 비판에 동의하지 않는다). 필자는 이러한 역사인식에는 단호하게 반대한다. 그럼에도 식민지 근대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식민지 시기 공업화, 산업화, 근대적 제도 이식과 그에 따른 제반 사회변화들을 ‘근대’와 분리해서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식민지 半봉건 사회론의 문제의식은 식민지 수탈론의 입장에서도 부정된 지 오래다. 일본 제국주의가 식민지 조선에 대한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식민지 자본주의 이식을 통해 고도의 효율적인 수탈을 진행했으며, 그 결과 식민지 자본주의는 발전했으되 조선인의 피해는 가중되었다는 것이 한국사학계의 통설적 논리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식민지 자본주의의 성립이다. 근대와 불가분의 관계인 식민지 자본주의라는 역사적 현상을 부정하면 일제 ‘수탈’의 본질도 흐려지게 된다. 요컨대 일제의 수탈을 제대로 규명하기 위해서도 식민지 근대를 외면해선 안된다.
상술한 정치-경제적 측면을 제외하더라도 ‘근대’와 결부되는 사실들은 너무나 많다. 식민지 치하에서도 조선인의 참정권과 제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주민대회 등을 개최하면서 조선인의 권리를 주장했던 각종 청원운동, 세계사적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자유와 민주 등의 근대적 가치를 쟁취하기 위해 싸웠던 3.1운동의 주체들, 경성 시내 곳곳에 세워진 백화점과 딴스홀, 그 거리를 활보하던 모던보이와 모던걸의 존재를 ‘근대’와 분리해서 설명할 수 있을까?
이렇듯 식민지 시기 ‘근대’를 운위하는 논의의 결은 매우 다양하며, 그 논의들이 모두 ‘반일종족주의’ 류의 극우 담론과 유사한 것도 아니다. 아직 교과서 전문을 살펴보지 않아서 조심스럽지만 지금까지 언론에 보도된 내용으로 보면 아쉽게도 교과서는 다시 오래된 옛날 구도를 답습하고 있는 듯 하다. 실체적으로 존재하는 식민지 근대를 소거시켜 버리면 지금 20세기 초중반의 한반도 역사를 서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딜레마에 빠진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역사전쟁의 한계지점에 서서
이 문제는 지난 교학사 교과서 사태, 국정교과서 사태 투쟁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해야 한다. 전선을 친일/반일, 독재/반독재의 구도로 단순화하고 반대편 진영을 악마화했던 관성이 새 정부의 교과서에서도 이어졌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관성을 비판한 행사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2019년 4월 12일에 진보적 역사학을 추구하는 역사 3단체(한국역사연구회, 역사문제연구소, 역사학연구소)가 개최한 「국가 정통론의 동원과 ‘역사전쟁’의 함정」이라는 제목의 학술대회가 그것이다. 이날 학술회의에서는 과거 ‘진보’ 역사학계는 남한 국가주의를 강화하는 임시정부 법통론을 비판해왔지만 보수 정권에서 1948년 건국절론이 강화되자 ‘진보’ 역사학계는 침묵 속에 임시정부 법통론을 방관하거나 동조했다고 성찰했다. 이는 역사학이 국가주의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이며, 다원적인 역사서술의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었던 2000년대 이후의 역사학(교육)과도 배치된다고 비판했다.
이렇듯 역사학계 내부에서도 역사전쟁의 한계지점을 성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제기를 계승하여 이젠 20세기 역사교육의 관성과 작별해야할 시간이 왔다. 선악의 경계를 넘나들고 정의와 부정의를 동시에 내면화한 인간군상들의 회색지대를 섬세하게 그려내지 못하는 ‘당위의 역사’는 언젠가는 한계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어쩌면 이미 그 시점이 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식민지와 전쟁경험을 겪은 세대들은 역사 속에서 사라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후 세대들이 느낀 역사인식은 모두 학습된 것이며, 전승된 기억과 학습된 기억은 현재까지는 상호보완을 이루지만 점차 후자만이 남을 것이다.
그리고 무수한 독립운동가와 단체들의 이름은 대입을 위해 외워야만 하는 주입된 기억으로 남겨지고 있다. 이렇게 주입된 저항의 기억은 필연적으로 도그마가 되고 당위의 영역이 된다. 그 당위는 다른 해석을 만났을 때 일거에 무너지게 될 수도 있다. 이런 현실을 인정한다면 식민지 근대도 자연스럽게 우리 역사의 일부분으로 용해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식민지 근대가 자연스럽게 역사 속 여러 기억 중 하나로 남겨질 때, 오늘날 역사교육의 의미도 더욱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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