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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사실 ‘칼데라’다 -김재민이 작가 인터뷰 / 김보슬

인천광역시 부평구와 경기도 부천시는 비슷한 이름 때문에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사실 두 지역은 엄연히 다른 동네다. 위치부터 다르다. 부평구는 인천 계양구, 동구, 남동구와 접해있는 반면, 부천시는 서울시, 시흥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지리적으로도, 행정구역상으로도 완전히 다른데 어째서 사람들은 둘 다 ’부평’이라고 하거나, 부평으로 가는 이에게 “부천까지 가려면 한참이네”와 같은 말을 건네는 걸까?

* 부평칼데라 *

이유를 알아보자. 원래 부개동 일대는 1973년까지는 부천군 부내면(富內面)이었는데, 인구 증가로 인해 동·리 통폐합 과정에서 지금의 부평구가 되었다. 부계(富溪)라는 한 가지 지명을 공유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즉, 애초에 경계부터가 오락가락하였던 셈이다. 좀 더 실생활을 가깝게 파고드는 이유로는 칼데라의 영향을 꼽아본다. 칼데라는 2km 이상의 직경을 지닌 넓은 분화구를 말하며 ‘부평칼데라’는 학술적 용어이다.


[사진 1. 부평칼데라 전경, 영상 장면 발췌_https://youtu.be/ZabRK3ZRPes?t=213]

“부평지역과 부천지역은 중생대 쥐라기~백악기 사이에 마그마가 분출한 화산지대로 지반이 침강과 융기를 거듭하면서 형성된 칼데라 지역입니다. 분출된 용암은 북동쪽으로 흘러가 김포평야를 이루었지요. 계양산과 천마산, 철마산, 원미산, 소래산 등 [원 모양으로 에워싼] 산들은 이 칼데라의 외측 외륜산*의 일부입니다. 이 지역을 학술적으로는 ‘부평칼데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분화구의 최대 장경은 13km 정도입니다.”


[설명 1. ‘윤진수와 함께하는 지질 여행’ 블로그 발췌https://blog.daum.net/earthstudy/6088575]

*외륜산(outer rim): 화산 지형에서 중앙의 분화구를 둥글게 둘러싸고 있는 바깥쪽 산.

[사진 2. 부평칼데라 위성사진, 영상 장면 발췌_https://youtu.be/ZabRK3ZRPes?t=59]

그러니까 부평과 부천 두 지역은 어쩌면 운명공동체로서 분화구 안에 함께 묶인 채 서로 화합하거나 경합하면서 외륜산 너머로 팽창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은 조용해 보이는 인천과 서울 사이. 그곳에 화산 분출의 중심이 있었고, 아직까지도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 아닐까? 해질녘, 사람들은 인천-부천-서울을 연결하는 꽉 막힌 경인고속도로에 갇혀 출발지와 도착지가 하염없이 멀어지는 것만 같은 효과를 체험할 뿐이지만 말이다.

마침 인천, 부천, 서울을 직접 걷거나 뛰어서 실험 중인 예술가가 있다. 김재민이는 도시의 팽창이나 도시 간 종속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변두리’ ‘언저리’ 등을 키워드로 삼아 미술 퍼포먼스를 선보여 왔다. 이 대화는 김재민이의 최근 활동 무대의 제일 서쪽으로부터 출발한다.

* 인천 — 짝퉁 또는 산자이 *

그는 이번 여름에 인천에서 <공장달리기>라는 타이틀로 항만시설과 공장이 섞여있는 만석부두에서 달리기 코스를 발굴했다. 2022년 인천아트플랫폼에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 중이었던 그가 열 명 가량의 참여자를 모집하여 그 코스를 달려보기로 했던 날, 나도 거기에 있었다. 그날 들었던 인천의 ‘짝퉁문화’가 인상적이었다. ‘대놓고 베끼는’ 행위를 저급한 것으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흥미로운 현상으로 바라보는 그의 시선 때문이었다.

나: 아마 서울과의 관계나 개항도시로서의 역사성 때문에 인천에는 특수한 경향성이 생겼을 텐데요.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작가로 인천에 살아본 느낌은요?

김재민이: 부평·부천권에서 다섯 살부터 열아홉 살까지 살았어요. 학교는 제물포와 석바위 쪽에서 다녔고요. 다 커서 다시 인천에 와서 살게 된 느낌은 그때와 달랐어요. 묘한 구석도 있지만 대체로는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입니다. 여긴 뭔가 허술하지만 자기만의 것을 찾아가고 있어요. 바로 그 자체를 특성이라 부를 만하겠지요. 발전에 대한 조바심이나 은근히 퍼져있는 자조적 분위기도 이런 의미에서 인천만의 특성이 되기를 한편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중국에 ‘산자이문화’라고 있는데, 창조적 모방을 의미하지요. 처음에는 조악한 복제와 위조를 일삼는 공장생산을 꼬집는 말이었는데 거기에서 점차 긍정성을 발견하게 된 거예요. 인천에도 혀를 내두를 만큼 놀라운 공공 설치물을 찾아볼 수 있어요. 우리가 함께 달렸던 부둣가, 거기 개발 홍보용 대형 광고판에 붙여진 사진 기억하시죠? 언뜻 보아도 화려한 인천 모습을 홍보하고 있는데, 그곳에 걸리는 사진조차 귀퉁이에는 조그맣게 ‘홍콩섬 사진’이라고 적혀 있었잖아요? 누가 보더라도 인천인데, 자세히 들어다보면 홍콩을 베낀 거예요. 그런 게 산자이문화를 연상케 해요. 차이나타운 뒤에 꾸민 일제 강점기 복원 거리에 식민지 시대 건물과 콘크리트 건물들이 나란히 뒤섞인 모습도 또 다른 예인데, 얇은 합판을 대어 표면적으로만 일견 일본식인 듯 꾸며 놓았어요. 이것이 혹자에게는 자괴감을 낳을까요? 저는 시간이 흐른 뒤에는 고유한 문화코드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날카로운 자기검열과 수치심만 들이댈 필요는 없어요.

* 부천 — 변방에서 변방으로의 순례 *

나: 여기서 서울로 가는 길에 부평을 지나는데요. 같은 인천이지만 거긴 부천하고 더 가깝다는 인상을 줘요. 사람들은 왜 부천과 부평을 자주 혼동할까요? 어떤 개연성이 있을까요?

김재민이: 제 생각엔 헷갈리는 게 자연스러워요. 부평과 부천 사이에 살던 저에게는 그 둘이 하나의 생활권이었고, 실제로도 지리적·역사적으로 같은 권역이라고 알고 있어요. 당장 지도를 켜고 스카이뷰로 그 일대를 보시면 거의 완전한 원형의 산세를 확인하실 수 있을 거예요. 김포 쪽으로 뚫려있긴 하지만….

[이 말을 할 당시, 김재민이는 그곳이 칼데라인 것을 모르고 있었다.]

실제 살아보았던 입장에서는 같은 생활권이라는 점에도 불구하고 경기도와 인천시의 경계 인식에 계속 부딪히게 되었어요. 학교 진학도 그렇고, 버스나 택시도 전에는 경계를 잘 넘지 못했거든요. 어릴 때 놀이터나 길에서 자주 보던 친구들을 커 가면서 아예 마주칠 수도 없게 되더라고요. 어디에 있는 학교로 진학하느냐에 따라서요.

다른 동네에 대해 잘 모르는 건 서울 혹은 중심지의 오만한 무지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같은 서울에 살아도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한강 한 번 안 건너가 본 사람도 많이 봤어요. 심지어 자기 구를 벗어갈 일이 거의 없다고 하더라니까요. 한정된 물리적 반경 안에서 교육, 쇼핑, 레저, 교우생활 등 모든 것이 다 해결되고 일가친지가 멀리 살지 않는다면 정말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부천이라는 이름은 부평과 인천에서 한 글자 씩 따서 만들었다고 알고 있거든요. 정말 헷갈릴 수밖에 없는 운명일지도요.

나: 잠시 부평칼데라를 등지고 서울 방향으로 시점을 이동해 보겠어요. 부천에서 서울까지 걸어가는 코스를 짜셨죠. 이름은 <오근세의 길>이었고요. 그런데 오근세가 누구죠?

김재민이: 오근세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가상의 인물이에요. 입주 도우미의 남편이자 지하에 숨어 살고 있던 바로 그 사람이에요.

[영상 1. 오근세의 길, 영상기록 버전 <오근세 씨를 찾아서>]

나: 오근세의 길은 어떤 길인가요?

김재민이: 영화 속 어떤 장면에서 오근세의 출생지와 현 주소가 적힌 있는 혼인신고서가 잠깐 스쳤는데, 하필 그 출생지가 제가 잘 아는, 그러니까 15년 넘게 살던 동네의 주소였어요. 부천의 서쪽 끝자락 한 과수원에서 오근세의 현 주소지로 설정된 영등포구 대림동 빌라 건물까지 순례길을 제안하고 싶었습니다. 실존 인물은 아니지만 저에겐 어쩐지 우리 동네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사진 3. 오근세의 길, 제공_김재민이]

[사진 4. 오근세의 혼인신고서]

나: 변방에서 또 다른 변방으로의 순례길이었군요. 변방은 경계에 붙어 있는 곳이니까 어디를 중심으로 볼 것인지가 관건인데요. 인접도시의 시가지들이 확산하여 서로 달라붙는 현상을 도시연담화(都市連擔化)라고도 하죠. 힘의 우위를 확보한 도시가 세력을 확장하는 과정으로도 볼 수 있고요. 중심이 주변을 집어삼켜 점점 경계를 바깥쪽으로 밀어내는 것은 우리에게 유해할까요? 예컨대, 넓이의 둘레가 길어지면서 중심에 닿기 어려운 지역들이 더 많아질 수도 있으니까요.

김재민이: 제가 오근세의 길을 걷고 관찰하는 동안 받은 인상은 서울의 경계를 중심으로 그 변두리가 서울에 흡수되거나 서울로부터 소외된다기보다 수도권 자체가 방대해진다는 것이었어요. 동네와 동네 사이의 작은 틈새가 새로운 주거지로 메워지고 있었거든요.

저는 이 질문을 ‘도시화는 어느 누군가에겐 유해할까요?’로 이해해 봅니다. 도시의 거대한 돔이 확장하면 중심 가까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계속 편리함과 쾌적함을 누릴 수 있지만 공장이나 축사 등의 시설은 대형화되어 외곽으로 이동하고, 그에 따라 그 시설에 종속되는 삶은 도시에서의 편의나 안락하고는 거리가 멀어지는 걸 보게 되었어요. 도시 개발의 틈새에 스며들어 생존하거나 — 이를테면 쪽방촌처럼 — 아니면 외곽으로 밀려나는 걸 고려하면, 비대해진 도시가 유해한지의 여부는 어디에 사는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다를 것 같군요.

나: 수도권이 전체적으로 가득 차오르는 모습을 실감하신 거로군요. 그러니까 그 과정에서 다양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관심도 높아지는 것 같아요. 경쟁이 심할수록 서로 획일화될 위험도 커지고요. 전지구화의 영향 속에서는 자본력이 강한 도시가 지구 정 반대편의 도시를 장악하기도 하구요. 그런데 그 위협적인 면을 재미있는 양상으로 보여 준 것이 앞서 말씀하신 ‘인천의 짝퉁문화’는 아닐까요?

김재민이: 네, 중심의 문화에 거리낌 없이 구애의 몸짓을 보내는 일은 이미 일상이 되어버렸어요. 미국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알려진 ‘로데오거리’가 제가 적어 본 숫자만 50여 군데에 달하더라고요. 서울, 경기, 인천은 물론이고 춘천, 충주, 대구, 대전, 부산, 진주까지…. 제주만 없는 것 같아요. 여기에 ‘~로수길’, ‘~리단길’까지 합치면,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에요. 쉬운 표현으로 짝퉁이란 말을 빌었지만, 정통성에 대한 집착을 벗어던진 채 이제 중심의 오리지널리티를 가지고 놀이하는 경지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어요. 그야말로 중심의 문화는 단순히 레퍼런스로만 작용하는 거예요. 저는 변두리의 문화가 어떤 단계를 거쳐 자존을 찾아가는 과정에 동참하고 싶어요.

나: <오근세의 길> 이후로 서울 용산과 인천 등지에서 <공장달리기> 시리즈를 펼치고 계신 것으로 알아요. 왜 도시를 작품의 소재로 택하고 계신가요?

김재민이: 제가 살던 변두리 동네에도 이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어릴 때 먼지 풀풀 날리던 길은 이제 어느 지역에 가도 많이 남아있지 않아요. 사람이 떠나간 곳에 생기는 거리가 어떤 의미인지를 묻게 되고요. 산업 구조가 바뀌고 해서, 이제 어느 정도 거리(距離)가 생기니 공업 지대나 농장을 옆에 두고 살았던 이들이 어떤 이웃이었던가 생각하게 돼요. 특히 공장에 관해서는, 일본에서 들여온 기계들이 우리나라 도시 변두리에 머물다 이제 더 멀리 빠지거나 해외로 나가는 과정을 쫓아가고 싶어졌어요. 세상이 어떤 사이클로 돌아가는지 몸으로 호흡하고 이해해 보고 싶어서 도시를 소재로 골랐고, 자꾸 걷고 뛰고 하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진 5. <공장달리기-용산> 포스터]

* 서울 — 파일럿 전시 *

나: 자, 작업 따라서 오다보니 이야기가 구로와 대림을 지나 서울 한복판인 용산까지 왔어요. 다음은 어디인가요? 서울시립미술관 행사를 준비 중이시라고요.

김재민이: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이례적인 시간, 불확실한 움직임>의 한 파트로 제 작품이 소개돼요. 11월 22일부터 27일까지. ‘작가와의 대화’는 25일에 마련됩니다.

한때는 서울 변두리였던 금천구에 새로운 미술관이 생긴다고 해요. 개관에 앞선 일종의 준비 프로그램인데, 저는 변두리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참여합니다.

[사진 6. 공장달리기 스틸컷, 출처_www.seo-sema.kr]

한때 선박회사 직원이었던 김재민이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영국으로 떠나 사회학과 이미지 그리고 순수예술로 진로를 바꾸었다. 돌아와 경기창작센터, 고양창작스튜디오 등에서 입주 작가로 활동하였으며, 서울, 광주, 방콕 등에서 전시를 열었고, 여러 지역들을 오가며 도시연구와 예술창작을 병행하고 있다. 어린 시절을 보낸 인천에서 후기 식민주의, 후기 산업사회의 이야기를 조사했고, 전후 산업변천과 군사문화를 토대로 하는 아시아적 상황을 농작물 가꾸기, 동네 청소하기, 공장지대 달리기 등의 체험을 통해 밝혀내고 있다. 그는 인천 사람이 아닌 부평 사람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한다. 세계의 중심으로 ‘해가 지지 않는(않았던) 나라’와 화산 분출의 중심이었던 부평칼데라에서 살아온 그의 내면 한 가운데에 놓인 변두리. 그것을 부평 사람으로 요약한 걸까? 오근세가 태어난 곳은 칼데라다. 용암처럼 가운데에서 변두리로 흘러내려 식어가는 것들을 김재민이는 두 발의 속도로 뒤쫓는다. 건각(健脚)을 빈다.

[사진 7. 화산 칼데라 단면, 출처_www.worldatlas.com]

* 부평칼데라에 관하여 유익한 답사 자료를 제작·공유해 주신 윤진수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김보슬(Otis College of Art and Design 공공예술 M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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