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들이 연애하는 곳 / 김보슬

지금부터 쓰려는 이것을 원래는 개인적인 사연쯤으로 여겼었다. 블로그에 올릴 법한 넋두리를 늘어놓다가 공식 지면을 낭비하면 어쩌나 하는 고민도 했었다. 가까운 이에게 털어놓자, 페이스북 따위에 썼다가 “어느 '관종'이 떠드는구나”로 끝나버리기엔 아까운 내용이겠다는 의견이 돌아왔다. 나는 약간 솔깃하여 ‘그러면 어디 한 번…?’ 하고 궁리하던 사이, 한국 사회에서의 학벌주의에 관한 논란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그러자 더 이상 개인적이지 않은 이야기가 돼 버렸다.

그러니까 불과 얼마 전이었는데, 별안간 나 자신의 허영과 속물근성을 고발하고 싶어졌다.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부유한 집 지하에 숨어 살던 병든 남자처럼, 내 바닥에 오래 기생하며 충혈된 눈으로 나를 지켜보았을 어느 불청객을 끌어내고 싶던 것이다. 그리고 나의 무의식을 발가벗긴 뒤 모처럼 자유로움과 홀가분함을 느끼고자 했다. 환부를 도려내겠다는 충동에 사로잡혀 나를 가장 오래 알아 왔던, 지금은 외국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카카오톡 메세지를 보냈다. “만천하에 고백하겠어!”

그가 별로 놀라지 않는 기색으로 대꾸했다. “만천하에 하기 전에 나한테 해 봐.”

나는 지체없이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내가 남자 보는 기준

1. 학벌: 국내에선 최소 스카이, 해외에선 그 이상이어야 함. 

2. 외모: 180cm 이상의 키에 호리호리하고 날렵해야 한 몸매여야 함. 

3. 운전: 무조건 잘해야 함.

4. 흡연: 안 됨. 전자담배도 안 됨. 

5. 음주: 즐겨야 함. 고주망태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함. 

6. 식성: 건강해야 함.

7. 문화: 음악을 다양하게 알고, 유머가 넘쳐야 함.

(...)

14. 기타 신체특징: 피부가 곱고, 문신이 없고, 피어싱이 없어야 함. 

의식에 표상되는 그대로를 타인이 보도록 적나라하게 펼쳐놓는 것은 말하자면 이렇다. 울다가 웃은 대가로 엉덩이에 털이 난 환자가 의사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바지를 내리는 심정에 비할 만한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또한!)

여기까지 보내고서 덧붙였다.

이해의 포인트는 1번으로 저것을 꼽았다는 것, 내가 얼마나 속물인지를 보여줌!

이렇게 말하면, 욕망하는 쪽, 욕망의 대상이 되는 쪽, 욕망의 내용 그 자체에도 속되고 비천한 등급이 매겨진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억울해할는지 모른다. 본인 의지와 하등 관계없이 부러움의 대상이 된 명문대 출신들, 속물근성하고는 전연 다른 사정 때문에 그들을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까지도 난데없이 ‘의문의 1패’를 당하게 된다. 물론, 나의 목록 전반에 작동하고 있는 것은, 비단 한 명의 자연인이라기보다 문화나 공동체에서 출발한 욕망에 기대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 없다. 그래서 우리는 혐오의 대상을 빗댈 목적으로 ‘공부 못하는 사람’을 데려오는 것이 껄끄럽다. 그것에 경악하면서도, 어쩐지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특정인의 얼토당토않은 표현력이 공부 못하는 사람에게 모멸감을 주었다고 해 버릴 수 있다면 차라리 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중 일부가, 그것도 커다란 부분집합을 이루는 일부가 공부 못하는 이에게 모멸감을 주어 왔으며, 우리들의 그러한 약점이 생각지 못하게 기습을 당하여 난처해진 것은 아닐까. 이 사회는 분명 공부 잘하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 나 역시 그렇다.

‘차라리… 날 한 대 쳐라.’

나는 이 와중에 시험 성적이 좋은 남자들에게서 매력을 느낀다. 그리고 그 때문에 고초도 많이 겪었다. 이렇게 노처녀가 돼 버린 것으로 대가를 치르는 중인지도 모른다. 나의 부모는 결혼에 연연하지 않고 행복한 삶을 살겠노라는 나의 포부를 마지못해 인정했으면서도 딸의 출가에 내심 미련을 두는 점에 있어서 평범한 한국 어버이라고 할 수 있다. 베이비부머 세대로 태어나 자신들의 가난한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재산 없이 순전히 두 사람의 맞벌이로 나와 동생을 길러낸 점에 있어서도 역시 그렇다. 방과 후에 엄마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것은 내게 한갓 남의 이야기였다. 80년대생인 나의 세대에서 아버지들은 물론, 어머니들도 일을 해야 했다. 전통사회의 공동육아 체계가 흩어지고, 선진 복지국의 ‘아이 돌봄’ 시스템도 부재한 상황에서 일인다역을 해내는 엄마들이 가장 쉽게 기댈 수 있는 탁아시설은 할머니, 할아버지였다. 요즘은 풍속이 달라져 고부관계가 살가워졌다지만 대대로 그들은 별 수 없이 가족으로 지내면서도 갈등을 겪는 사람들이었고, 우리 집도 그랬다. 나는 할머니와 엄마 사이에 흐르는 냉기를 피부로 느끼곤 했다. 유독 엄마에게는 매번 악역인 할머니에게 마음을 활짝 열기가 어려웠다. 학교가 끝나면 동생만 할머니 집으로 가게 하고 나는 텅 빈 우리 집, 서른 평 남짓의 아파트로 혼자 돌아오는 편을 택하는 날이 많아졌다.

나는 정말로 ‘우수한 아이’이고 싶었다. 부모의 자랑이 되고자 했다. 서울보다 경쟁이 느슨한 작은 도시에 살았지만 거기서 공부도 잘했고, 학교나 학급을 대표하여 각종 경시대회 출전자로 발탁되기 일쑤, 백일장이나 사생대회에서 곧잘 입상했고 선생님들과 친지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렇지만 내내 사막에 던져진 기분으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었다. 방과 후에 학원으로 향하는 길, 집 앞을 지날 때면 주방 창문을 올려다보며 거기에 돌아온 엄마의 모습을 그리워하곤 했다. 오후 내내 남모를 상사병을 앓고 나서야 엄마의 퇴근을 맞이했다. 그런 모든 것을 속으로 숨기며 내가 지키고 싶었던 것은 의젓함이었는데, 태연을 가장하는 동안 마음의 병이 깊어졌다. 우울과 싸우노라면 귀를 찢는 듯한 빈 집의 적막이 괴로워 공부가 안 됐고, 그래서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다른 방에 들어가 책을 펴면, 텔레비전 소리가 거슬려 또 공부가 안 됐다. 이걸 입 밖에 냈다간 핑계로 들릴 것이 분명하여 아무에게 말하지 않았을뿐더러, 도움을 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당시에는 ‘우울’, ‘학습장애’ 같은 어휘를 동원하여 내 상황을 체계적으로 설명할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처럼 맞벌이 부부와 자녀 한둘로 구성된 전형적 핵가족들이 학급에 많았던 것 같은데, 그 아이들은 다 어떻게 지냈을까? 나의 부모는 최근까지도 내가 학창시절에 공부를 게을리했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부모들은 흔히 자식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노는 걸 좋아했다고 회고한다. 무슨 상관이랴. 나는 그들의 오해를 바로잡는 데에 관심이 없었다가 최근에서야 이런 사정을 털어놓은 적 있었다. 그들은 놀라면서도 내 술회에 귀 기울여 주었다.

결국, 나는 서울의 중위권 대학에 합격한 것으로 그럭저럭 타협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자기애와 자신감이 충만한 편이라 전형적 미인형이 아닌 외모에도, 평범한 소득에도, 작은 보금자리에도 불만를 느끼지 않고, 친구를 만드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다. 그렇지만 반드시 콤플렉스를 꼽아야 한다면 그것은 단 하나, ‘학벌’임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은 내가 서울로, 그리고 외국으로 유학하여 그만한 대학과 대학원을 나오고서도 왜 그런 콤플렉스 가지는지 도무지 의아하다고만 한다. 그런데 나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학력이 아니라 학벌이다. 세월이 많이 흘러서야 재수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재수를 하더라도 원래 목표했던, 더 좋은 ‘간판’을 달았어야 했다고…. 어떤 이유에서건 나는 끝내 공부 잘하는 사람이 되지 못했다. 객관적 지표로 꼽을 수 있는 시험 성적으로 보아 그것은 틀림없다. 공부 잘하는 사람은 나의 결핍으로만 남아, 이윽고 그런 남자에게 합격점을 주는 여자가 되고 말았다. 나의 ‘아니무스’를 확인할 때마다 정작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것만 같아서 얼마나 괴로웠던가. 이상에 목말라 하다가 결혼에서 멀어졌음을 부모에게 이해시켜야 하는 못난 자식일 뿐이다.

이렇게 욕망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것으로 내가 빼닮은 이 사회를, 그러면서도 화해할 수 없는 이 사회를 돌아본다. 이 욕망을 부수어 달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당신이 얼마나 근사한지, 내 욕망이 얼마나 초라한지, 부디 입증해 달라는 구조요청이다. 물론 내 과거의 연애사를 되짚어볼 때, 모범생하고만 사귄 것은 아니다. 이상형을 정해두고 대상의 범위를 아무리 좁히려고 해도, 사랑은 때때로 그 바깥에서, 위아래에서 속절없이 쳐들어왔다. 그러니 내 욕망이 유리알처럼 가냘픈 것이라는 점 또한 나는 경험을 통해 알고는 있다.

지인들과 전라남도 바닷가엘 왔다. 가을 바닷바람은 짠내 없이 차갑게, 스웨터 올 사이를 파고든다. 소금기를 별로 머금고 있지 않은듯 청량하고 가볍게 나부낀다. 머리칼을 쓸어 넘기던 중 어린 날이 떠오른다. 버스정류장에서 엄마는 내 머리를 매만져주다가 이렇게 말했다.

“잔머리가 많네. 잔머리 많은 여자는 남편 사랑을 많이 받는대.”

다섯 살배기의 뇌리에 "남편 사랑"이라는 말이 어떻게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그 얘기를 여태 기억하고 있었다니. 아뿔싸, 입때껏 잔머리만 많고 남편은 없네?

같이 온 사람들과 전날 밤 나누던 얘기 중에 ‘가방끈’이란 말이 오갔다. 우리들 중 둘은 커플인데 한 명은 가방끈이 길고, 다른 하나는 짧다고 했다. 물때 달력을 보면 길고 짧음이라는 게 흡사 이렇다. 밀물과 썰물 때의 수위 차이가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바다는 불안을 떨치고,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야 마는 것이다. 날마다 다르게 조수간만의 차가 이루어지는, 생생하게 우주와 소통하는 공간에서 바람을 품어 안으면 가방끈 같은 것을 가뿐히 뛰어넘는 원시적 감각체계가 현존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백사장 한켠으로 대숲이 펼쳐져 있다. 그 안을 거닐다가 대나무들 사이로 수평선이 보이자 우리들 중 하나가 말했다.

"바다에 붙어사는 귀신과 대나무숲에 붙어사는 귀신이 만나 연애하는 곳이다!"



(사진 1, 2, 3. 제공_김보슬)

의식과 무의식 간 치유되고 화해될 수 없는 관계에 놓여있던 내가 거기에 있었다, 여의히 서로를 사랑하는 귀신들 한 가운데에. 남도 전통문화에는 ‘산다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섬이나 갯가 마을의 청춘남녀가 한데 어울려 춤추고 노래 부르는 것을 ‘산다이 한다’, ‘산다이하고 논다’와 같이 이른다. 젊은이들의 연희문화이며, 연애문화인 것이다.

나는 어찌하여 이 귀신들 사이에 와 있을까. 우리는 언제 어떻게 만나 산다이 해 볼까.

김보슬(Otis College of Art and Design 공공예술 M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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