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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책으로 수다 떨기: [사이버네틱스] & [린 마굴리스] / 박성관

글 쓰는 걸 평소 힘들어하는데, 왜 때문에 SNS에 쓰는 건 날아갈 듯 휘갈길 수 있는 걸까? 그렇다고 소위 ‘원고’와 가령 얼굴책의 글 사이에 수준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다. 참 이상타. 이상한 건 이상하다고 하고, 그렇다면 이번엔 아예 얼굴책에 먼저 쓰고 그걸 새롭게 손질해서 쓰면 되지 않겠어? 생각하며 써봤는데, 결과는 목표 초과 달성! 너무 많이 써서 대폭 덜어내야 할 판. 게다가 지난달 예고할 때 컴북스 총서 두 권을 다루겠다고까지 했기 때문에, 그중 한 권도 페북에 시험 삼아 써보니 역시나 일필휘지.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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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너의 [[사이버네틱스]]가 번역 출간된 소식은 지난달에 이미 전했다. 출간 직후 2쇄를 찍었다고 하니, 독자들 사이에서 이 책의 명성이 얼마나 자자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아마 여기까지일 것이다. 읽었다는 포스팅, 읽었는데 어땠다는 등의 이야기들이 sns에 보이지 않는다. 한 번도 못 봤다. 아마도 비슷한 시기에 새 번역으로 재출간된 해러웨이의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도 비슷할 것이다. ‘잠깐 화제를 뿌린 후 공동묘지에 함께 사장’되는 게 아닐까 우려섞인 예상을 해본다. 이렇게 되면 애써 출간한 책이 넘 아까워진다. 이 귀한 책들이 읽히고, 토론되고, 비판되어 21세기의 새로운 미래에 기여했으면 싶다. 책은 읽혀야 책이고 독자에게 새로운 변화를 초래해야 책이다.

한데 이 책은 읽기 쉽지 않으며, 그러니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독해는 언감생심이다. 그렇다면 어쩌지? 어쩌긴 뭘 어째! 언제나 그렇듯이 독서는 아나키즘과 코뮤니즘으로 하는 행위다. 아나키즘! 갑자기?

이 책이 위대하다 해도 그 권위에 주눅 들거나 그걸 무슨 신비한 대상으로 섬겨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내가 이 “위대한 고전”을 감히 읽어도 될까? 이 책에 나오는 수학을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읽으면 안 된다던데... 같은 걱정들은 모두 아르케(두목)에 복종하려는 노예들이나 하는 짓이다. 나. 이 책, 위너는 모두 동등하다, 인간이 여타 동식물은 물론이고 사물과도 동등하다고 소위 ‘플랫한 존재론’의 시대에, 하물며 같은 사람이 쓴 책과 독자의 우열 관계 운운하다니 이 무슨 해괴한 발상이랴! 대략 이런 태도로 책과 마주하면 된다.

그렇지만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니 우리에겐 코뮤니즘이 또한 필요하다. 당당한 나와, 나와 동등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읽고 토론하며 공부하면 된다.

그래서 강의를 열기로 했고 벌써 다음 주 수욜(11월 1일) 개강이다. 아나키즘과 코뮤니즘의 장에서 사이버네틱스에 대해 열나게 공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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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인간의_인간적_활용]](1950) 원서가 배송 왔다. 이른 아침 산행을 앞두고 세 쪽 정도 읽으면서 “그렇구나!”, “그렇구나!”를 연발했다. [[사이버네틱스]](1948)에서 연주된 현대의 클래식이 다르게 편곡된 악보 하에 연주되니 또 하나의 명반이 된 것이다. [[인간의 인간적 활용]]은 이번에 [[사이버네틱스]]를 번역 출간한 김재영 박사에 의해 2011년에 이미 번역된 바 있다. 번역도 좋고 역주는 최상급이었지만 6장부터였던가, 아무튼 중반 이후부터 번역이 덜 정교해졌고, 또 원서로 읽으면 다른 차원의 풍성함을 선물 받기 때문에 계속 별러오다가, 강의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읽게 되었다.

읽어보니 (아직 극초반이긴 하지만) 역시나 좋다. 번역본으로 읽은 책을 원서로 읽으면 느낌이 여러모로 다른데, 심할 땐 다른 책을 읽는 거 같다. ^^

같은 해(1948년) 출간된 클로드 셰넌의 [[수학적_커뮤니케이션_이론]]은 흔히, 물리학자들은 공학에 약해서, 공학자들은 물리학에 약해서 제대로 읽지 못한 책이라고 한다. [[사이버네틱스]]와 [[인간의 인간적 활용]]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말할 수 있다. 말인즉슨, 이 두 권은 수학 못하는 사람만 어려운 게 아니라는 말이다. 사이버네틱스는 단순히 물리학의 공학적 응용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쟁, 프래그마티즘, 진화론, (수학, 그중에서도 특히) 알고리즘, 게임이론 등이 다차원적으로 버무려진 책이다. 허허, 이거야말로 첩첩산중이고 설상가상이네. 그 많은 분야들을 알아야 저 두 권을 읽을 수 있다는 건가? 이렇게 질문할 분들에게 나는 도리어 정반대라고 답하고 싶다. 저 두 권이야말로 “이 모든 것”에 대해 펼쳐 보여주는 최상의 이야기라고. 그러니 무엇보다도 이 책으로 시작하시라고!

[[인간의 인간적 활용]]은 [[사이버네틱스]]의 해설서 겸해서 쓰인 책이다. [[사이버네틱스]]가 넘 좋은데,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책인데 넘 어려우니 해설서를 하나 꼭 써달라는 주변 동료들의 부탁에 위너가 한 권 더 쓴 책이다. 그렇지만 이 역시 어렵긴 마찬가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책은 마찬가지로 어렵다기보다는, 어렵기로는 덜 하지만 그 의미를 충분히 알고 음미하기란 역시나 어렵다고 표현하고 싶다.

이 책 역시 볼츠만과 깁스의 물리학을 알아야 한다. 한데, 다시 한번 강조해 말하지만, 볼츠만과 깁스를 알기 위한 가장 좋은 책도 위너의 두 저서다. 하지만 일반독자들에게 이런 말만 줄창 늘어놓을 순 없다. 이 두 권과 함께, 이 양서에 액세스하기 위한 책들이 더 필요하다. 특히 내겐 그랬다.

[[볼츠만의_원자]](이덕환 역, 승산출판사). 참 좋은 책이다. 처음 읽었을 때도 이 사실은 알았지만 내용이 뿌옇게만 들어와서 나중에 두 번은 더 읽었다. 읽을수록 볼츠만이 현대물리학에 왜 그토록 중요한지, 통계역학이란 게 과연 무엇인지 더 분명히 알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통계역학은 단어가 풍기는 이미지와 상반되는 측면들이 적잖아 놀랐다.

그러던 와중에 예전부터 들어왔던 소위 ‘맥스웰의 도깨비’가 점점 더 문제가 되었다. 얘기의 내용 자체는 별로 어렵지 않은데, 이런 걸 왜 얘기하는지, 그 의미가 잘 와닿지 않았다. 여러 번 다른 책에서 다른 방식으로 하는 설명을 들어도 오리무중이었다. 그러다가 [[사이버네틱스]]를 읽던 중에 “아하!” 순간이 왔다. 그러고는 [[맥스웰의_도깨비]]에 다시 도전했다. 이 책의 저자 츠지키 타쿠지는 예전 그의 다른 저작을 읽고 탁월한 과학 커뮤니케이터라는 걸 알게 되어 [[맥스웰의 도깨비]]도 큰 기대를 품고 있었는데, 여러 번 중도 포기라는 결과로 끝나고 말았더랬다. 그런데 이번에 읽어보니 많은 것들이 이해되었다. 결정적으로 말해서 ‘에르고드 가설’과 ‘맥스웰의 도깨비’, 이 두 가지는 위너의 저서를 읽으려면 또렷이 알아야 한다.

[[볼츠만의 원자]]에 [[맥스웰의 도깨비]]까지 장착하고 나자(전자는 재장착) 나의 전투력이 배가되었다. 위너와의 만남을 통해 그동안 내 과학공부의 길을 막아서왔던 세 개의 장벽이 촤자작! 허물어진 것이다. 이 두 권, 구하실 수 있는 분은 얼른 구입해 두시라. 특히 [[맥스웰의 도깨비]]의 저자 츠지키 타쿠지는 이 번역본의 책날개에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블루 백스》 시리즈를 17권이나 저술하였다. 물리학의 대가라 칭할 만하다.”라고. 《블루 백스》 시리즈가 뭔지 아는 분들이라면 순간 옷깃을 여밀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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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강의의 첫 강을 ‘전쟁에서 돌아온 세 사내’라 제목 달았다. 위너의 사상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프래그마티즘과 연관지어야 하고, 프래그마티즘이란 윌리엄 제임스, 존 듀이, 찰스 퍼스에 의해 구축된 사상인데, 이 사상이 전쟁을 통해 태어난 사상이기 때문이다(프래그마티즘이 전쟁에서 피어난 사상이란 걸 빼어나게 지적해 준 건 레베카 솔닛의 명저 [[이 폐허를 응시하라]]였다. 이 책은 또 하나의 위대한 사상(가령 또 하나의 프래그마티즘)이 전쟁과 정반대되는 ‘절대적 상호주의’에 의해서 가능한 것임을 ‘재난 유토피아’를 통해 빼어나게 보여준, 가히 불후의 명저다.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의 뒤를 잇는다). 나는 이런 아메리카의 사상이 2차 대전 직후 다시 한번 비상하며 [[사이버네틱스]]가 태어났다고 표현하고싶다.

프래그마티즘은 인류 사상의 진화론적 전회와 연관되는 것이며, 그래서 ‘대공포 제어’ 문제가 그 핵심에 들어 있는 것이다(위너도, 폰 노이만도 전쟁에 참가하여 대공포 연구에 크게 공헌했다). 아울러 튜링의 암호 해독 문제나 폰 노이만의 게임이론이 연루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앞서 말했듯 1948년에는 셰넌의 수학적 통신 이론까지 가세하였다. [[수학적_커뮤니케이션_이론]]은 실제로 언론학에서도 고전 중의 고전으로 꼽힌다. 우리말 번역본도 언론학자가 ‘커뮤니케이션북스’ 출판사에서 번역본을 냈다. 이 책에도 수학이 많이 나온다. 그래서 폰 노이만의 해당 논문이 발표되었던 해에 워런 위버가 해설 논문을 발표했다. 셰넌의 논문과 그에 대한 해설 논문이 한 권으로 묶여나온 게 바로 [[수학적 커뮤니케이션 이론]]이다. 이 책을 폈다가 수식들이 무서워 그만 눈을 가린 분들에겐 평이하게 쓰인 셰넌의 평전 [[저글러, 땜장이, 놀이꾼 디지털 세상을 설계하다]]를 권한다. 이 책은 반 정도로 압축했으면 더 좋았을 거라 생각한다. 괜찮은 책이지만 그 이상의 찬사까지는 좀 그렇다. 아무튼 잘 알려지지 않은 셰넌에 대해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꽤 유익한 책이다.



의외로 노버트 위너의 평전은 번역된 게 없다. 가장 유명한 게 바로 [[Dark Hero of the Information Age]]다. 며칠 전에 배송 왔다. 첫 페이지부터, “아~ 이 책이 손꼽힐만 하구나” 느껴지리만큼 문장이 괜찮았다. 나는 프롤로그를 읽고나서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이 책을 중간부터 읽기로 했다. 상당히 두꺼운 책인데, 마지막 6강이 끝날 때까지라도 다 읽을 수 있을는지 모르겄다. 암튼 이 책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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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에 깊고 친한 분들이라면? 내 애정하는 승산에서 냈던 튜링 전기 [[너무 많이 알았던 사람]], 얼마 전 출간된 [[미래에서 온 남자 폰 노이만]], 올해 읻다에서 출간된 [[야콥슨-레비스트로스서한집]] 같은 책부터 마수를 뻗쳐보는 건 어떨까? 나는 이 세 권을 아직 읽지 못했다. 세 번째 책의 서문을 보았고 두 번째 책을 조금 읽기 시작했을 뿐이다. 아마 이 중 두 권은 며칠 안에 읽을 거 같다. 나와 같이 달려볼 사람, 손 ~ ! 내가 지금 보려고 계속 시도하고 있는 영화 [[이미테이션_게임]]은 본 분들이 워낙 많으실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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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릭의 [[인포메이션]]은 유명한 책인데, 그의 전작 [[카오스]]와 마찬가지로 이 저자는 나와 궁합이 참 안 맞는다. 글이 매끄럽게 이어지질 않는데, 많은 사람들이 평가해주는 거 보면 나와 상성이 안 맞는다고 할 밖에. 그래도 중간중간 통찰력을 맛볼 수 있어 덮어놓고 쳐낼 책이라곤 할 수 없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사귀어 가며 나름 잘 읽고 있는 중이다, 두껍기 때문에 발췌해가며 순서 없이. 아마 1/5 정도 읽을 듯.

[[과학의 새로운 언어, 정보]]는 오래전 읽었던 같은 저자의 책이 하도 인상적이고 재밌어서 사둔 책이다. [[맥스웰의 도깨비가 알려주는 열과 시간의 비밀]]. 이 책은 2008년 7월 5일에 구매했다고, 2009년 3월 16일에 읽고, 2011년 4월 5일에 재독했다고 책 속표지에 메모되어 있다.

책이 매우 재밌었는데, 게다가 표지부터 나를 내내 뻑가게 했는데, 정작 맥스웰의 도깨비란 주제에 대해서는 핑!하고 느낌이 오진 않았다. 하지만 저자의 긴 이름(한스 크리스천 폰 베이어)은 기억해 두었다가 [[과학의 새로운 ...]]을 사둔 것이다. 이 기회에 읽어두고자 한다. 최소한 글릭 책보다는 낫겠지.

<現代思想>의 올해 7월 특집은 ‘계산의 세계’다. 기대 이상으로 좋다. 거의 동시에 방탕하게 읽어제낀 <現代思想> 2012년 임시증간호 ‘튜링’은 나를 사로잡았다. 그의 흉내 게임에 대해서도 그동안 지겹도록 들어온 천편일률적인 해설들과는 전혀 판이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고 도대체 계산가능성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다각도로 조명해주었다. 아울러 <現代思想>의 2013년 임시증간호 특집은 ‘폰 노이만’도 좋다.

<現代思想>이란 월간지는, 특히 자연과학과 수학, 공학 특집들은 일본의 과학자, 과학철학자들의 깊이있고 경쾌하며 와일드하고 치밀한 글들이 실려 늘 감동의 연속이다. 이를 포함해 나를 끊임없이 공부시켜주고 내 공부길이 끊이지 않게 계속 열어주는 일본어 서적들에 새삼 감사를. 실린 글들 모두를 번역해 우리나라 독자들에 선물해주고픈 마음 굴뚝같다. ^^ 생각만 해도 흥분된다. 그렇지만 늘 상상만으로 끝나는 게 분하다!

아울러 언급할 것은 <現代思想> 2001년 10월호 특집 ‘오토포이에시스의 원류’다. 당시 갑자기 사망한 프란시스코 바렐라를 중심으로 꾸려진 특집이라 귀한 필독서이며, 특히 권두의 대담(가와모토 히데오(河本英夫) 참여) ‘마음과 몸의 포이에시스’는 오토포이에시스에 깊이 입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읽어야 한다.

이와나미에서 내는 월간지 [[思想]]의 2010년 7월호 ‘네오 사이버네틱스와 21세기의 앎’ 역시나 필독서다. 이것만은 빠뜨릴 수 없다. 권두의 좌담을 비롯해 주옥같은 글들이 많지만 특히 하시모토 와타루의 ‘하인츠 폰 푀르스터의 사상과 그 주변’은 필독 중의 필독물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캐서린 헤일즈의 [[우리는 어떻게 포스트휴먼이 되었는가]]는 물론 읽을 가치가 있다.하지만 좀 별로인 측면도 있고, 아울러 이 헤일즈의 책과 꽤나 다른 방향을 제시해준다는 점에서 하시모토의 글은 지금의 우리에게 대단히 시사적이다. 단, 꽤나 어렵다는 점은 미리 감안하시기 바란다. 이 경고에도 불구하고 꼭 읽어야겠는 분들 중 입문자들은, 마침 번역되어 있는 푀르스터의 [[진리는 거짓말쟁이의 발명품이다 - 회의론자들을 위한 대담]]이 유용할 거 같다. 나도 이제 막 중반부에 접어들려는 참이라 확언할 순 없지만.

* 페북 포스팅할 때 빼먹은 사항 한 가지 추가 : 같은 [[思想]]지에 실린 니시가키 도루의 글 ‘네오 사이버네틱스의 원류 : 위너와 윌리엄 제임스의 교차점’도 대단히 중요한 글이다. 필독!(필독이 넘 많....은가!) 이 글 역시, 우리 사회가, 지금의 세계가 과연 오토포이에시스를 넘어 3차 사이버네틱스(헤일즈가 말하는 인공생명 연구와 다른)를 열어젖힐 수 있을 것인가, 이 고민을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으며 깊이 고민해야 한다. 내 강의의 마지막은 이 글을 읽으며 이 과제에 도전할 예정이다. 6강의 제목이 [3차 사이버네틱스를 향하여 : 위너 사상과 프래그마티즘]인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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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북스 이론 총서 중 한 권으로 나온 손향구의 [[린 마굴리스]], 갈수록 재밌어지는 책이네. 첨엔 전개가 좀 빨라서 마굴리스의 마력적인 살과 뼈와 빠져나가고 심지어 갭들마저 메워져버리는 거 아닌가 걱정되고 그랬는데, 중반에 접어든 지금, 좋아, 잘 나가고 있다는 느낌. 판형도 작은데 페이지도 100쪽 정도, 시집보다 얇은 거 아님? 50쪽 넘었으니 벌써 반 넘이 읽어버렸네 ^^.

애정하옵는 린 마굴리스가 주인공이고, 그걸 차분히 설명하는 게 아니라 간명하게 정리해버리고, 곧장 이어지는 장에서 다른 각도에서 또 조명해주고 다음 장에서 다른 각도를 잡아 또 새로 조명해준다. 주구장창 설명하진 않지만 크게 어렵지 않고 뒤로 갈수록 속도가 붙는 건 이 때문이다.

지금 마악 읽고 있는 정중앙인 5장에선 리좀 철학으로 마굴리스의 연속 세포내 공생 이론(SET)을 또 쾌속 설명하고(아무튼 서술이 씩씩하다), 게다가 또한 나의 애정하는 하먼까지 출동시킨다. 하긴 하먼의 [[비유물론]]이 동인도회사를 설명한 것이고, 근데 그 설명 모델로 하먼이 채택한 게 바로 마굴리스의 공생론이니 당연하기도 ㅡ.

전반적으로 저자(손향구)의 설명이 무자게 간명해, 간단하면서도 명쾌하다구. 리좀 정의 봐봐, 얼마나 탁월한지. 나랑 정반대(내 설명은 하염없이 길어질 수 있는데다가 점점 이해로부터 멀어질 때조차 있으니...). 게다가 이 얇은 책에는 말이죠, 근래의 연구 추세와 논점들까지 알차게 담겨있슴다. 이런 구성 당분간 또 없습니다. ㅋㅋ 특히, 마지막 대목에서 이자벨 스텡게르스와 브뤼노 라투르가 소개되는 전체 구조는 꽤나 훌륭했다.

마지막으로 컴북스 이론 총서에 대해 한 마디. 2016년 첫 권 [[존 롤스]]를 낸 뒤 최근의 [[브라이언 마수미]]에 이르기까지 모두 85권. 모두 한국 필자들의 글이다. 해외 이론에 대해 우리말로 쓰인 글을 읽는 쾌락과 이해도와 상상력 등 그 가성비야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제 처음 읽어봤지만 품질도 꽤나 좋다. 이후 기회되면 종종 소개하고 싶다. 근 20여년 동안 프렌치 씨어리 편중이었던 우리 관행에서 상당히 벗어난 라인업도 인상적이다. 중국 학자들이 눈에 띄고 그러나 반대로 일본을 비롯한 다른 아시아 학자들은 거의 없는 거 같다. 그래도 훌륭하다 훌륭해. 이에 자극받아 다른 총서들의 출간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박성관(독립연구자, <분해의 철학> 번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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