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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책으로 수다 떨기: [나의 독서 근황] 사이버네틱스와 자기생성론이 닮았다? / 박성관

최종 수정일: 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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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에 들뢰즈 공부는 대략 없는 것으로 치고 있었다. 들뢰즈가 매혹적인 건 알고 있지만, 다른 하고픈 것들, 해야 할 것들도 많다 보니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요구하는 들뢰즈는 본격 공부할 시간을 결국 내지 못하고 여기까지 왔다. 이진경을 비롯해 국내외에 뛰어난 들뢰지언들이 워낙 많은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그들의 2차 문헌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고 유용했던 것이다. 한데 작년 여름, 수유너머104에서 김충한 선생님의 [[들뢰즈와 자연학]] 강의를 듣고 “나도 들뢰즈를 공부할 수 있겠네, 직접 체험할 수 있겠구나”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고, 그래서 그때 이래로 더피(Simon B. Duffy)의 [[들뢰즈와 수학사]](Deleuze and the history of mathematics)라는 영어책으로 동료들과 셈나를 하고 있다. 1장을 두어 달에 걸쳐 읽고 나니, 무척 좋긴 했지만, 아무래도 [[차이와 반복]] 4장을 별도로 공부해줄 필요가 있겠다 싶어, 한 달째 4장의 앞부분을 파고 있다. 김상환의 국역본은 장점이 많지만 단점들도 있어서 일역본도 참조하고 영역본과 불어본도 참조하면서 셈나를 진행하고 있다(그러자 김상환 번역본도 더 장점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셈나원들은 급한 사정이 생겼다며 몇 달만 쉬겠다는 사람들이 두어 주에 한 명씩 발생하였다. 이제는 3명이 되었고(돌아오시겠다고 한 분들 천천히 어서 돌아오세요), 그중 한 분이 한 주만 못 오게 되었다고 해서 이번 주엔 급기야 둘이서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경험해온 수많은 사례를 볼 때, 우리는 현재 세미나가 멸종되어 가는 전형적인 단계를 밟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한번 시작한 셈나는 거의 끝까지 한다. 조금 더 지속하며 셈나의 강도와 속도를 끌어올리다 보면 집 나간 탕아들이 하나둘 집구석으로 기어들어 올 것이다.


2>

조현수 샘의 <심층의식에 대한 베르그송-들뢰즈적 탐구> 강의의 강의 홍보문을 보고 크게 반해 그의 책 [[성, 생명, 우주]]를 읽기 시작했다. 여기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책이 들뢰즈의 [[자허-마조흐 소개]]인데, 이 책은 [[매저키즘]]인가 하는 제목으로 오래전 번역 출간되었는데(인간사랑 출판사에서였지, 아마?), 들뢰즈 저작 중에서도 가장 번역이 안 좋은 책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난 보지 않았지만 그런 소문만으로도 무서워서 거들떠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문헌에서도 이 책은 잘 언급되지 않길래 나는 막연히 이 책이 들뢰즈의 후기에 쓰인, 보편성은 다른 책보다 좀 떨어지는 특이한 책 중의 하난가보다 해왔다. 그런데 조현수샘의 책을 탐독하다 보니 글쎄 [[자허-마조흐 소개]]가 지금 내가 한창 열공중인 [[차이와 반복]]과 비슷한 시기의 초기작 아닌가! 전자는 1967년, 후자는 1968년이다. 나는 먼저 자허-마조흐의 소설 [[모피를 입은 비너스]]를 읽었고 이번 주쯤 [[성, 생명, 우주]]를 다 읽을 예정이다. 조현수의 [[성, 생명, 우주]]는 세계적인 저작이라 할 만하다. 왜 그렇게 느끼는지는 별도의 글로 써야 할 만큼 탁월한 면이 많지만 지금으로선 그냥 넘넘 훌륭한 책이니 여러분께도 강추한다는 말씀만 드리고 싶다. 책은 들뢰즈와 베르그손에 대해 쉽고 간단하며 강력한 설명을 해내는 데 크게 성공하였다. 이런 책을 그동안 모르고 있었다니.... 조현수 월드를, 아니 조현수 유니버스를 그 입구와 함께 친절하게 알려주신 김남수샘께 찐한 감사를!!!


3> [[성, 생명, 우주]]를 다 읽으면 베르그손의 [[창조적 진화]]를 (예전에 한두 번 읽었지만) 한 번 더 읽을 것이고, 다음엔 들뢰즈의 대망의 저작 [[베르그손주의]]도 읽을 거다. [[차이와 반복]]은 다양체에 대한 깊은 탐구가 나오는데, [[베르그손주의]] 역시 중요 주제 중 하나가 베르그손의 다양체다. 한데 내 예상에 들뢰즈가 다양체 개념을 수학에서 가져오는 건 맞지만, 그것과 베르그손의 다양체, 나아가 그에 대한 들뢰즈의 다양체는 사뭇 다른 면이 있을 거 같다. 그게 내가 이번 공부에 더 큰 기대를 품고 있는 이유기도 하다. 차후 공부를 진행하다가 의미 있는 사건이 터지면 또 소식 전하겠다.


4>

<사이버네틱스> 강의를 열었다가 진도를 다 나가지 못해 2탄 강좌를 이어서 열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 2탄에서는 책의 후반부이자 본론에 해당하는 5장부터 10장까지를 발췌 강독한다. 요즘 나는 노버트 위너가 쓴 [[사이버네틱스]]와 [[인간의 인간적 활용]]에 사로잡혀 자주 들뜬다. 심원하고 예리한 통찰력이 계속 흘러나오는 대단한 책들! 한데 이 못지않은 분야가 또 오토포이에시스다. 그래서 [[자기생성과 인지]] 및 [[생물학적 자율성의 제원리]]를 읽고 있다. 역시! 역시! 감탄해가며 그 생동감에 힘입어, 중간중간 쉽지 않은 대목들을 통과해 나가고 있다.


5>

[[사이버네틱스]]는 1948년작이고 움베르토 마뚜라나와 프란시스코 바렐라의 [[자기생성과 인지]]는 1980년에 출간된 책이다(영문 텍스트를 보면 1979년 출간된 것으로 적혀 있다). 후자는 두 편의 글로 구성되어 있는데, 한 편은 1969년에 마뚜라나가 발표한 글을 이후 더 확장 보완한 글 [인지 생물학]이다. 또 한 편은 마뚜라나와 바렐라가 함께 1972년 글 [자기생성: 살아있음의 조직]이다. 이 두 편을 합쳐 펴낸 책이 바로 [[자기생성과 인지]]인 것이다. 한편 최근 읽기 시작한 책은 [[Principles of Biological Autonomy]](생물학적 자율성의 제원리)다. 우리말 번역은 아직 없고 초반부의 일본어 번역문은 일본의 월간지 <현대사상(現代思想)> 2001년 10월호에 전체 3부 중 1부(1장부터 7장까지)가 번역되어 있다. 나는 영문과 일역문을 번갈아 읽고 있다.



6>

출간 시점을 말한 데는 이유가 있다. [[사이버네틱스]]는 클로드 셰넌의 [[수학적 통신 이론]]과 함께 1948년에 출간되었다. 한편, 튜링은 1950년에 저 유명한 [[계산 기계와 지능]]을 <마인드>지에 발표했다(그 14년 전인 1936년에 튜링은 중요한 논문 [[계산 가능한 수와 결정문제에 대한 이 수의 적용]]을 발표했다). 요컨대 2차 대전 직후에 오늘날의 정보통신 혁명의 기폭제가 된 주요 글들이 발표된 것이다. 여기에 다양한 방면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튜링의 내장형 컴퓨터를 실제로 제작할 수 있도록 결정적 기여를 한 존 폰 노이만의 활동 시기가 겹친다.


7>

이 분야가 이후 얼마나 눈부신 속도로 발전을 거듭해 왔는지는 따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 시기(1950년 즈음)와 마뚜라나와 바렐라가 활약한 오토포이에시스 출현 시기에는 커다란 시간의 차이가 있다. 나의 사이버네틱스 공부와 오토포이에시스 공부 역시 다른 관심에서 각각 출발하였다. 한데 그제 바렐라의 [[생물학적 자율성의 제원리]]를 좀 보고 어제 위너의 [[인간의 인간적 활용]]을 보다가 놀라운 일치를 발견했다. 출현 시기도 다르고, 문제의식이나 이론의 핵심 주장도 크게 차이 난다고 느꼈던 두 이론이 핵심에서 거의 같다는 것이다.


8>

물론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을 테다. 사이버네틱스의 핵심이 피드백이고, 오토포이에시스=자기생성도 핵심 기제는 피드백이니 두 이론이 유사하다는 게 그리 놀랄 일이냐고. 그렇게 생각하면 물론 그렇다. 그렇지만 그건 결과적인 이야기고, 이제 인용할 대목에서 확연해질 테지만 사이버네틱스의 내실은, 그 출발은 사뭇 다른 것이었다. [[인간의 인간적 활용]]의 대목 먼저 보라.


“그[윌러드 깁스]의 작업에는 다음과 같은 직관이 깔려 있었다. 즉 일반적으로 물질계의 한 집합 – 게다가 그 집합이 집합으로서의 자기 동일성을 계속 유지하는 그러한 집합 – 의 한 성원은, 거의 모든 경우에 그것이 임의의 한 시각에 그 집합 전체 중 어디에 위치할 것이냐를 가리키는 그 확률이, 그 집합 전체에 걸쳐 나타내는 분포를, 충분히 긴 시간 동안 결국은 재현한다. 바꿔 말하자면 어떤 조건 하에서 한 물질계는 충분히 긴 시간 동안에는 그 총 에너지하에서 허용되는 위치와 운동량을 갖는 모든 상태를 경과한다.”


이건 에르고드 정리의 내용인데 이 정리가 옳지 않다는 것, 아주 평범한 계 이외에서는 가능치도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래서 이 정리를 주창한 깁스도, 또 그 지지자들도 이후 이것을 고집하지 않았다. 대신 주장의 성격을 상당히 완화한 ‘유사 에르고드 정리’를 주장했는데, 이것은 상당히 타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정리의 근거는 부실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대서양 반대쪽에서 그 근거가 될 수 있는 연구가 르베그에 의해 이미 진행되고 있었음이 밝혀졌다(이것은 소위 ‘르베그 적분’으로 [[사이버네틱스]] 2장에서 위너가 설명해준다. 물론 매우 어렵다).


9>

보시다시피 (유사) 에르고드 정리는 물리학에서 통계역학과 관련된 정리고, 그 정당성은 물리학과 전혀 상관없는 르베그 적분에 의해 부여된다. 굳이 말하자면 엔트로피의 확률적 의미가 중심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다. 이런 에르고드 정리가 핵심으로 깔려 있는 사이버네틱스가 어떻게 자기생성론의 핵심과 닮을 수 있을까? 신비하다.


10>

자기생성론의 어떤 점이 방금 인용된 대목과 유사한지, 자세히 쓰기엔 너무 길어질 거 같아 생략한다. 함께 놀라고 싶은 분들은 바렐라의 [[생물학적 자율성의 제원리]] 중 1부 3장 2절을 보시기 바란다. 살펴보시고 좋은 의견이나 조언 있으면 아끼지 마시길 바란다.


11>

하나 더 귀띔해드리자면, [[인간의 인간적 활용]] 1장을 보면 첨에 정보를 말하면서 운을 띄우더니 이것이 ‘광학’ 논의로 이어진다. 그러고서 ‘관찰’에 대해 집중적으로 얘기한다. 관찰이라면 2차 사이버네틱스, 특히 자기생성이론의 핵심 중 핵심 아닌가! 조금 아까 말한 유사성보다 이쪽이 더 신비스러울 지경이다. 관심있는 분들, 함께 파봅시다~



박성관(독립연구자, <분해의 철학> 번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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