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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성의 후퇴와 급조된 자유 - 보수우파가 그토록 옹호하는 헌법상의 자유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 강부원

‘최고의 문서’이자 ‘최고의 교양’, 헌법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규범과 가치의 기준과 근거가 어디에 있느냐를 생각할 때 많은 사람들이 헌법을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헌법이야말로 대한민국의 국체이자 법통이기 때문이다. 1948년 제정된 헌법과 법률은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공적 가치의 원점으로 기능한다. 현실 세계에서 극심한 의견 대립이나 사상 혹은 가치의 충돌이 발생하면 헌법상의 규준을 대조해가며 판단을 얻는 게 우리 사회가 최종적으로 의지하는 절차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헌법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제헌은 8.15 해방을 통해 얻게 된 날것에 가까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동시에, 신생 민주 공화국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공적으로 분배받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해방 직후 식민지 시기 억압되었던 정치적 자유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고, 이로 인해 들뜬 분위기는 곧 제헌이라는 사회적 합의에 의해 잦아들 수 있었다.

거리를 가득 메운 해방 인민들의 “자유의 함성”과 지면을 뒤덮고 있는 “통일국가 건설”의 주장들은, 가장 강력한 동시에 존엄해야할 “최고의 문서”1) 헌법에 의해 거의 완전하게 통제됐다. 대한민국이라는 정치적 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한 양보와 타협이었다. 신생 공화국의 주체적인 공민이 가져야 할 “최고의 교양”2)을 마련하는 작업이 바로 제헌이었다. 제헌은 1945년 8월 15일 이후 얻게 된 개인의 정치적 자유와 단정 이후 민족의 최대 과제였던 통일에 대한 의지를 다시 제한하는 행위이기도 했다. 이렇듯 제헌은 공동체 구성원 간의 합의에 의한 것이기도 했지만, 이데올로기 투쟁을 동반한 냉전 체제의 산물이기도 했다.

     


‘공공성’의 존중과 ‘사회국가’라는 이상

     

우리는 흔히 대한민국의 헌법이 “자유 경쟁의 가치를 수호하는 민주 국가 건설”을 제일의 사명으로 여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헌을 통해 마련된 대한민국의 헌법적 법통은 ‘자유경제’에 방점을 찍기보다 모두가 균등하게 경제적 결실을 누리는 ‘사회국가’를 지향하는 쪽에 더 가까웠다.3) 실제로 제헌을 담당한 유진오를 비롯한 헌법기초위원들은 자유시장경제는 큰 문제점을 안고 있기에 공정성 보장을 위해 국가의 개입이 필연적으로 요청된다고 보았다. 사회적 소수자와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역할이 어느 개인이 다른 개인을 강박하지 못하도록 법과 질서를 유지하고, 자발적으로 맺은 계약의 이행을 강제하고, 재산권의 의미를 규정하고, 이를 해석하여 집행하는 데에만 국한될 수 없다는 것이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에 들어와서는 각종의 견지에 자유방임주의는 비판되기 시작하여 국가는 형식적인 국민의 자유평등의 확보와 소유권의 절대불가침의 원리로부터 일보 나아가서 실질적으로 각 국민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확보하는데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으며 국민의 권리와 자유도 그 범위 내에서 보장되며 국가는 다만 질서유지를 위하야 필요할 때 뿐 아니라 공공의 복리나 문화를 증진시키기 위하야 필요할 때에도 국민의 권리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것이 인정되었다. 그러하므로 19세기말부터 20세기에 드러와서는 국민경제나 국민생활에 대한 국가의 기능은 전에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증대되었으며 따라서 국가의 행정기능은 그의 입법기능이나 사법기능보다 더 중요하게 되었다. 그러함으로 20세기에 드러와서는 국가는 ‘행정국가’, ‘경제국가’, ‘사회국가’, ‘복지국가’ 또는 ‘문화국가’가 되었다고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4)     

유진오에 따르면 제헌 헌법이 모색하는 국가의 성격은 자본주의체제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불평등이나 빈곤 등의 사회문제를 직접 나서서 해결하는 사회국가이다. 사회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그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시킴으로써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책임이면서, 그것에 대한 요구가 국민의 권리로서 인정되어 있는 국가”이다. 

사회국가는 사회모순을 방치하는 방관자가 아니라, 평등권과 사회적 기본권 실현을 위해 사회적 안전과 사회정의, 사회통합에 적합한 새로운 사회질서를 창출해야 의무가 있다고 여긴다. 사회국가는 국민의 복리를 증진하기 위하여 필요할 때에는 국민 생활이나 국민경제에 적극 간섭한다. 헌법학계에서도 사회국가 원리를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원리로 설명하고 있으며, 헌법재판소 또한 줄곧 같은 입장이다.5)

     

  「우리 헌법의 경제 질서는 사유재산제를 바탕으로 하고 자유경쟁을 존중하는 자유시장 경제 질서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이에 수반되는 갖가지 모순을 제거하고 사회복지·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국가적 규제와 조정을 용인하는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6)

     

  「우리 헌법은 자유시장 경제 질서를 기본으로 하면서 사회국가 원리를 수용하여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을 아울러 달성하려는 것을 근본이념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7)

     

  「사회국가란 한 마디로, 사회정의의 이념을 헌법에 수용한 국가, 사회현상에 대하여 방관적인 국가가 아니라 경제·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정의로운 사회질서의 형성을 위하여 사회현상에 관여하고 간섭하고 분배하고 조정하는 국가이며, 궁극적으로는 국민 각자가 실제로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그 실질적 조건을 마련해 줄 의무가 있는 국가이다.」 8)

     

사회국가는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확보할 수 있도록 근대입헌주의 헌법을 기초로 하면서 사회적 기본권을 보장하는 체제이다. 역사적으로는 바이마르헌법이 이를 최초로 명문화함으로써 사회국가 원리를 헌법에 수용했다.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 사회적 민주주의와의 조화’를 기본정신으로 삼은 한국의 제헌 헌법 또한 사회국가의 원리를 수용했다. 대한민국은 자본주의의 폐해를 막기 위해 사회국가를 지향하는 출발을 시도했던 셈이다.

사회국가의 원리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 인간다운 생활권(생존권)을 비롯한 일련의 사회적 기본권이 보장되고, ㉡ 재산권의 사회적 기능이 강조되며, ㉢ 기회균등의 보장과 소득의 적정한 분배 등 경제민주화가 실현되어야 하고, ㉣ 사회보장제 · 사회복지정책이 추진되어야 하며, ㉤ 경제 질서에 대한 규제와 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제헌 헌법은 사회국가 원리를 실현하기 위해, 첫째, 경제 질서에 대한 규제와 조정을 위해 통제경제질서를 표방하고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를 수용하였으며, 둘째, 인간다운 생활권(생존권)을 비롯한 일련의 사회적 기본권 보장을 위해, 각종 수익권에 관한 규정을 두었으며, 셋째 재산권의 사회적 기능을 강조하기 위해, 소유권의 사회적 의무와 계약의 자유 제한 등을 규정하였다.

제헌 헌법 제5조는 “대한민국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자유, 평등과 창의를 존중하고 보장하며, 공공복리의 향상을 위하여 이를 보호하고 조정하는 의무를 진다”고 적혀있다. 자유, 평등, 창의의 보장을 강조하면서도, ‘공공복리의 향상’을 위해서는 이를 조정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국가가 공공의 선을 위하여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고 한 것은 국가의 공공성을 강조한 것이었다. 또 헌법 84조에서는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된다”고 하여, 역시 경제활동의 공공성을 강조하였다.

     


폐기된 공공성과 선택된 자유

     

하지만 1950년대 이후 한국의 정치-경제 권력들은 헌법의 이와 같은 조항들을 대부분 삭제해버렸다.9) 그 결과 제헌 헌법이 정초한 ‘사회국가’의 의미는 퇴색해버렸다. 대한민국은 재산권의 사회적 의무성을 강조하고, 경제적 · 사회적 민주주의 입각하여 사회적 시장경제질서와 통제경제질서를 채택한 사회국가 즉 복지국가를 이념으로 삼고 출범하였다. 사회국가 경제체제를 채택한 것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인식하면서 그 폐해를 최소화하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 현실의 이승만 정부는 ‘사회국가’ 체제는커녕 온전한 국가성을 갖추지도 못한 상태였다. 근대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아래(‘민(民)’)로부터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시민사회가 동시에 형성돼야만 했다. ‘좌우(左右)의 정치 시대’라고 부를 수 있는 해방공간을 지나, 단독정부수립 이후 제헌을 통해 합의된 ‘자유’와 ‘민주’의 가치는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생활규범 차원에서도 급격히 이데올로기화 될 수밖에 없었다.

1950년대 접어들어 헌법은 ‘새로운 체제를 구성’하기 위한 성격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분열과 갈등을 경험한 뒤에 ‘만들어진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적용된 법규범으로 변화했다.10) 제헌의 과정에서 강조했던 사회국가의 공공성을 뒤로 밀어두고 자유시장경제의 개념을 노골화한 것은 분단과 전쟁으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에 가까운 결정이었다.

그러니 현재의 헌법 조항에 명기된 ‘자유경쟁’, ‘시장경제’의 개념은 국체와 법통에 맞는 본래적이고 근원적인 성격이라기보다는, 사회국가로서의 공공성을 축소하면서까지 체제를 옹호할 수밖에 없었던 당대의 사정을 반영하는 절충과 합의의 맥락으로 도입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게 적당하다. 즉, 현재의 보수우파세력이 그토록 옹호하고 부르짖는 ‘자유’라는 헌법적 개념의 기원 자체가 출발부터 반쪽짜리인 동시에, 체제 수호를 위해 마련된 대항담론으로 급조된 측면이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체제 경쟁과 이념 갈등에 휩쓸리지 않을 정도의 체급을 갖추게 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체제 경쟁 시기에나 사용했던 소모적인 방식으로 ‘자유’의 씨를 전 사회에 파종할 시기는 지났다. 그런데도 여전히 한국의 대통령은 틈만 나면 자유 이념을 강조하느라 혈안이 돼 있다. 마치 ‘자유’만이 우리가 수호해야 할 가치의 전부인 것 마냥 목소리를 높인다. 이런 분위기에서 사회국가의 공공성을 회복해야한다는 주장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기 쉽다. 보수 우파가 정성스럽게 떠받들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체와 법통의 근거인 제헌 헌법을 다시 살펴봐야 할 사정이 여기에 있다.


1)성낙인, 󰡔헌법과 생활법치󰡕, 세창출판사, 2017.

2) 「안녕 헌법, 헌법은 시민이 알아야 할 최고의 교양」, 󰡔국회보󰡕 521호, 2010년 4월호.

3)제헌 헌법은 경제적으로 균등경제와 사회적 경제의 이상을 추구했다.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해, 헌법은 국가적 필요로 보아 어떠한 부문의 산업을 진흥시킬 필요가 있는 경우, 국가는 이 모든 문제에 관해 조정할 의무를 진다. 이어 국민경제가 전체적으로 균형 있는 발전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국유화와 사회화를 광범위하게 규정하여 통제경제질서를 표방했다. “광물 기타 중요한 지하자원, 수산자원 수력과 경제상 이용할 수 있는 자연력은 국유로 한다.”(제85조), “중요한 운수, 통신, 금융, 보험, 전기, 수리, 수도, 가스 및 공공성을 가진 기업은 국영 또는 공영으로 한다.”(제87조). “대외무역은 국가의 통제 하에 둔다.”(제87조)는 내용은 국유, 국영, 공영을 규정하여 자유 시장경제를 지양하고, 균등경제를 위해 한결같이 국가의 강력한 경제개입을 명문화한 것들이다. 게다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에 있어서는 “국방상 또는 국민생활상 긴요하고 절실한 필요에 의하여 사영기업을 국유 또는 공유로 이전하거나 또는 그 경영을 통제, 관리할 수도 있다.”(제88조)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4)유진오, 󰡔헌법해의󰡕, 탐구당, 1952, p. 29.

5)권영성, 󰡔신헌법요론󰡕, 1989, p. 139.

6)헌재 1996. 4. 25. [92헌바47]

7)헌재 1998. 5. 28, [96헌가4등]

8)헌재 2002. 12. 18, [2002헌마52]

9)1954년 1차 개헌 시 “사회경제”, “사회적 경제” 용어는 폐기되고, “자유시장경제”란 용어를 전면에 내세웠다.

10)1954년의 1차 개헌은 한국전쟁 이후 이데올로기화된 ‘자유’의 개념은 십분 강조하는 방향으로 이뤄졌다.



강부원( 작가,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현재는 성균관대, 한양대, 방송대 등지에서 강의하며 학생들과 문학·문화와 역사에 대해 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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