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적 리얼리즘과 내재된 승리 / 오영진

최종 수정일: 2021년 10월 26일

라이트노벨『All You Need Is Kill』(사쿠라자카 히로시 원작 2004년 『All You Need Is Kill』, 학산문화사, 2007. 이하『올유』로 줄여서 표기)에서 주인공 키리야 케이지는 자신의 신체적 힘의 수십 배를 발휘할 수 있는 증강장갑을 입고 전쟁을 수행한다. 전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진짜 힘은 기계에서 나오므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근력이 아니라 지구력뿐이다. 여성과 남성의 물리적 차이는 이러한 방식의 전쟁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올유』는 근미래에 벌어진, 외계인 ‘기타이’와 지구인 ‘통합 방역군’간의 전쟁을 그 사건의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몇 페이지 못 가 당혹스러운 경험을 하게 된다. 주인공 ‘키리야’가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투원인 키리야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이 살해된 전투의 30시간 전으로 돌아간다. 처음에는 이것을 꿈이라고 생각한 키리야는 점점 자신이 특정한 시간 속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주인공 키리야 케이지는 160회째 반복에서야 루프의 악순환을 끊어낸다 그러나 이는 주인공의 의지의 반영의 결과가 아니라 매우 필연적인 것이었다. 그 이유는 이 루프는 실제로 일어난 시간여행이 아니라 기타이가 자신들의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서 미래에서 기타이 안테나를 통해 기타이들에게 전송한 기억-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이 기억-이미지가 키리야 케이지에게도 우연히 전송된 것이다. 그러니 이 루프적인 시간이 지속되는 한, 이것은 나의 경험에 의한 경험이 아니라 기타이에 의한 경험의 이미지이다. 때문에 중요한 것은 루프적 시간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기타이로부터 온 경험의 이미지를 나의 리얼한 경험으로 바꿔내는 일이다. 그러나 주인공은 매회 자신의 경험이 기타이로부터 온 경험인지, 자신의 진짜 경험인지 모르기 때문에 순간 순간 자신의 경험으로 받아들여 열심히 싸울 필요가 있다. 결국에는 이 반복을 끊어내는 방법은 전투에서 완벽히 이기는 방법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기타이의 미래로부터 과거의 이미지가 회귀된다는 것은 기타이가 인간을 이기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그들 자신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 과거를 전송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타이를 전멸시키지 못했음으로 인간 역시 승리하지 못했다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이 싸움은 회귀가 필요없어져, 인간의 시간이 사라지거나(기타이의 승리) 루프가 끊어지는 방법(인간의 승리)밖에는 다른 귀착지가 없다. 그런데 키리야 케이지의 시간이 끝없는 루프의 형태지만 존재한다는 것은 기타이가 승리하지 못했다는 반증이므로 인류가 결국은 승리한다는 것의 논리적 증명이 된다.


'어린아이가 이길 때까지 반복해서 게임을 해 어쨌든 결국 승리'하는 것처럼, 루프의 악몽은 실은 인간의 승리를 내포한다. 그러니 『올유』의 핵심은 루프의 악몽과 이에 고분분투하는 인간의 고뇌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이길 수 밖에 없다'라는 것을 깨닫고, 매회 사건에 충실하게 참가하는 인간이 결국 승리의 순간을 담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때 승리의 순간은 루프가 종료되는 순간이 되며, 외부로 부터 온 ‘경험의 이미지’가 온전히 나의 ‘리얼한 경험’으로 전환되는 일이 된다. 즉 새로운 신체성이 획득되는 것이다.


이를 게임의 체험과 연관해보면, 게임의 반복회귀적인 시간은 결국 끝을 맺을 수밖에 없다는 것, 중요한 것은 게임에 참가하는 일이 아니라 게임의 엔딩을 봐야한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제 아무리 현실도피를 위한 게임일 지라도 엔딩은 존재하는 법이다. 이 체험 끝에 우리는 리얼한 경험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올유』에서 주인공이 160번째 도전에서 어느 때와는 달리 진한 커피향기를 맡고 감동하는 것은 그가 기타이로부터 온 경험의 이미지가 아니라 자신의 신체를 통한 경험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라이트 노벨 <올 유 니드 이즈 킬>(2004)를 기반으로 한 영화 <엣지 오브 투마로우>(2014)

이렇게 해석했을 때 『올유』는 소멸된 신체와 데이터베이스의 무한성이라는 환상 속에서 우리가 나아갈 길을 명확히 제시해주고 있다. 매 순간 순간마다 ‘선택’이라는 불안을 맞이하는 우리는 이것이 야기하는 미끄러짐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선택’을 온전히 자신의 선택으로 전유하는 선에서 주체화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거짓된 무한의 힘을 폭로하고, 진정으로 생산적인 무한의 힘을 획득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세계와의 윤리적 접촉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아즈마 히로키의 경우, 『올유』를 매회분기마다 끝없이 선택해야 하는 자의 불안이 담긴 초상, 영원재귀의 악몽에 놓인 현대인의 리얼리즘으로 읽어냈다. 하지만 필자는 그 반대로, 『올유』를 새로운 신체성의 획득이라는 문제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게임체험이야말로 우리를 과거 어느 때보다 끈질긴 주체로 만들어 줄 것이다. 게임적 구조에는 실패가 없고, 오직 재도전만이 있기 때문이다. 이때 이 점에서‘내재된 승리’는 ‘자유의지’와 같은 근원적인 동력의 준거점으로 기능한다.


게임적 리얼리즘속에서 '내재된 승리'의 감정은 아래와 같이 주조된다.


1) 이것이 게임이라는 사실을 깨달아라! 2)게임의 룰을 파악하라! 3)끝없이 재도전할 뿐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라! 4)내재된 승리를 향해 매회 충실히 사건에 임해라! 5)타자로부터 온 경험의 이미지가 아니라 온전히 나의 경험으로 받아들이도록 노력해라! 6)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이 글은 필자의 최근 논문 <‘게임적 리얼리즘’으로 살펴본 미래의 읽고 쓰기의 감각>(2021, 교양교육과 시민 3호)의 일부를 칼럼원고로 개고한 것임.


오영진(문화평론가, <에란겔 다크투어> 연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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