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필 / 김보슬

문자 메세지의 마지막 줄은 "건필!"이었다. 글이 밀려서 괴롭다 하는 하소연에, 역시 원고 마감의 압박, 동병상련에 처한 다른 이가 보낸 격려였다.

무엇을 쓸 것인가. 4주에 한 번씩 다가오는 지면을 두고 바닥난 글감으로 고민만 한지 몇 주. 뚜렷한 갈피를 못 잡고 초조하게 시간만 흘렀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오로지 자발적으로 쓰고 싶을 때에만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던데. 마루야마 겐지는 소설을 쓸 수 있는 최상의 안테나로서의 심신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과 소식을 한다는데. 그런 스타들에 비해 아무것도 아닌 나에게는 무슨 방도가 없을까?

신경은 곤두서고 쫓기는 심정이 된다. 와중에 SNS에 접속하여 줄글을 끼적인다. 이래 봬도 페이스북 중독자라서 말이다. 사람마다 이 체면(face)장부(book)의 활용법이 다르겠지만, '관음과 노출의 놀이터'라는 혹자의 요약이 얼추 적중한 듯하다. 나의 경우, 유용한 정보를 스크랩해 둘 요량으로, 소식을 발표하거나 사회적 입장을 주장할 목적으로 게시물을 올리는 적도 있지만 무얼 먹고 무얼 마셨다든지, 어디엘 갔다가 어떤 우스갯소리를 주워들었다든지 하는 잡설을 늘어놓기 일쑤다. 시쳇말로 '안물안궁(안 물어보았고 안 궁금함)'. 그것이 얼마나 무용한지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여기에 들이는 노력은 가히 일상 보고 체계를 방불케 한다. 보고에도 희열이 따른다는 말인가.

2010년대 초반 데니스 크로울리(Denis Crowley)는 자기가 위치한 곳을 실시간으로 지인들에게 알리는 포스퀘어(Foursquare) 앱 개발로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와 트위터의 팀 도시(Tim Dorsey)의 대열에 합류했던 바 있다.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스마트폰으로 저녁 식사, 파티, 피크닉을 준비하면서 무엇이 맛있고 어디가 근사하다는 소식을 전하는 동안 뉴욕, 베를린, 런던, 샌프란시스코가 이 앱 안에서 '체크인' 표시들로 환하게 타올랐다. 스마트 기술로 진화된 신인류에게는 보고의 욕구가 탑재되어 있다 해도 좋을 정도였다.

그러니 나를 포함하여 이런 이들이 우리 주변에 많아진 것이다. 우리들은 무슨 등록대장에 기입하는 양 누구도 물어보지 않을 각자의 독백을, 장소를, 상념을, 일상을 앞다투듯이 활자와 사진을 동원하여 만방에 알린다. 흔히 편집과 포장이 수반되는 이 행위는 '관종 행위'로 묘사되기도 하면서, 특정한 타겟이나 명백한 의도를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광고 슬로건처럼 구체적 대상에게 관심을 요청하기보다는 오히려 주문을 욀 때처럼, 종교나 이념에 호소할 때처럼 거기에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를 추상적 타자를 향해 외치는 것이다. 어느 영화평론가가 미니홈피 유행 시절에 이미 "미니홈피는 타자(other)가 아닌 대타자(Other)를 대상으로 한다"고 기호학적 해석을 내놓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대타자를 대상으로 하는 글쓰기는 자기에게서 출발하여 그 메아리가 무한히 자기에게로 돌아온다는 점에 있어서, 다분히 이기심에 복무한다.

밀린 원고가 처리되지 않고 있어도, 페이스북에 쓸 말은 언제나 차고 넘친다. 자기관음의 시선은 이기적 글쓰기의 엔진을 꺼뜨리지 않는가 보다. 그렇기에 단속이 필요하다. 습관화된 이기주의의 고삐를 죄고 기사, 보고서, 논문과 같이 타인의 시선을 전제하는 지면에서 그에 걸맞는 스위치를 올려야 한다고 다짐한다. 이 같은 자각이 너무 위협적인가. 마취 당한 손가락이 원고지 위에서 좀체 깨어나지 않는다. 도망치고픈 생각 뿐이다.

[사진 1. <Run>, Kenneth Blom, 2020.]

그러다 손에 잡힌 어느 일기장. 2014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것이다. 어릴 때부터 배움에 목말라하고 글을 좋아했던 여성. 자식들이 사후에 갈무리해 둔 몇 십 년의 기록 중에서 아무 곳이나 펼쳐보는데….

(날짜 미상)

"시집살이 하는 언니는 그 많은 시가 식구들에게로의 전염을 염려하며 집안과 모든 가족들이 사용하는 식기를 끓는 물로 청소를 열심히 해서 그 다음 가족들의 전염은 없었다. 천만다행으로 생각하며 한 달이 지나 일어나서 밖에 나가서 아는 사람 집에 찾아가 방을 얻어 놓고 부엌이 없는 방이라 취사에 연료로 쓰려고 목탄 한 포를 사놓고 아버지를 모시러 가려고 하던 참에 나라는 국민이 갈망하던 해방이 되었다."

(날짜 미상)

"나는 갈팡질팡하던 공부도 때려치우고 이제는 취업하겠다 하던 차에 소화 20, 1945년 그 다음 해 하반기에 경찰서 사무원 채용에 응시하여 채용되었다. 필력이 늠름하다 하여 각 계에서 경쟁적으로 나를 선호했다. 결국 경리계에서 일을 했다. 1인 2역을 하다가 그 다음 해 4월경에 내가 모신 상사인 김두용 씨라는 경무계장이 나에게 여경시험에 응해 보라고 권하였다."

(날짜 미상, 1985년 1월 7일을 회상)

"비보를 듣고 황급히 소내재를 넘던 그 순간 이 상태라면 목적지에 도착 전에 내가 먼저 죽을 것만 같은 감이 번쩍 들었다. 삼거리 주유소 앞을 지난다. 가방 속을 뒤져 가끔 사용하던 미니푸레스 한 알을 찾아서 먹기 위하여 주유소로 뛰어들며 물 좀 주세요! 그 말이 아마 비명에 가까웠던지 마주 앉아 있던 두 분이 동시에 일어나서 물주전자에서 한 컵 생명수를 주셨다. 약을 먹고 [택시를] 달리는데 기사는 남의 사정도 모르는 양 노래 테이프를 돌린다. 나는 왠지 죽음의 장송곡 같다는 공포심에서 노래 테이프를 끊어 달라고 비명을 질렀다. 길은 왜 그리도 먼지? 창밖으로 흘러드는 스스럼한 달빛에 매달리는 호소. '제발 제발 그의 생명을 붙잡아 주세요'란 같은 말을 몇 십 번인지 되뇌며 춘천에 도착.

1995년 9월 19일

오늘은 모처럼 올케 언니가 오셨다. 반가웠다. 얼마나 외부 사람이 그리웠는지. 잠깐 머물다 돌아가시고. 아파트 구내 상가에 들어섰다. 모처럼 쇼핑을 했다. 두부도 사고 간장도 사고 파도 샀고 만두도 한 봉 사 봤다. 내 손으로 물건을 사 보니 마음이 새로워짐을 느끼면서 민지 에미를 생각했다.

2006년 1월 29일

이 가정의 주부이자 소중한 며느리가 몸이 아프다고 전전긍긍하는 형편에 며느리 손에 들여오는 조석을 받아먹으려면 가슴이 메이고 밥숟가락이 떨린다. 이런 사정을 피하려고 이 자식 저 자식 집의 문턱을 서성이면서도 딸은 내 딸이지만 사위는 그 나름대로 피살을 나눈 소중한 그의 부모가 곁에 있다는 점에서 눈치가 살펴진다. 이 같은 나의 행각이 소중한 아들 며느리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딸네 집 문턱을 서성일 때 발끝과 마음이 떨린다.

생전의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맺힌다. 외할머니와 단둘이 보낸 시간이 많았다고 생각해 왔음에도 나에 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어서 아쉽지만, 나를 기르시던 바로 그 시기가 남편을 여의 직후라 생활이 녹록찮았을 터.

비록 어색한 문장도 있지만 나름의 필치가 느껴진다. 문장을 곱게 꾸미는 재주만큼이나 한 사건과 다른 사건을 연결 짓고, 한 순간과 다른 순간을 교차시키는 구성력 또한 글에 좋은 숨결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이 오랜 기록은 망자의 추억과 소망, 개인사적 술회를 비롯해 일제강점기의 생활상, 나라의 해방, 한국전쟁과 피난, 그리고 KBS 아침마당에 소개된 건강상식이나 태안반도 기름 유출 사건과 같이 방송에 보도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이렇듯 댓글이나 좋아요를 주고 받는 SNS가 없었던 시절에 쓰여진 일기는 자기에 관한 글쓰기의 기원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고전적 일기가 자기와 시대를 담아낸 담담하고 투명한 고백이라면, SNS형 일기는 자기적립이라는 또 다른 용도가 가진다. 치킨집 스탬프를 차곡차곡 모으듯 '장부'로서의 그곳에 자신의 흔적을 적립하여, 실제로 자기가 누구인지보다는 누구일 수 있는지를 확인 받는(확인시키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거기에는 타인의 참여가 요구되지 않는다. 누구나 바깥에서 구경할 수 있지만, 정작 안으로는 아무도 초대할 수 없는 좁은 방이다.


[사진 2. <1,000명의 책> 내부, 안규철,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2015.]

물론 SNS에 남기는 일기라고 모두 그렇지는 않다. 널리 나눌 만한 유익한 것들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관건은 '무엇'이다. 무엇을 쓸 것인가. 자기에 관한 글일지언정 이기적 글쓰기 한 가지로 무차별하게 치우치지 않으려면, 자기의 거울을 닦아서 광택을 내야 한다. 다양한 사물을 비추며 타자와 눈을 맞추어야 한다. 이기적 글쓰기의 엔진도 균형과 조화 속에서는 기어를 다양하게 변속하며 멀미를 막아줄 것이다.

그것이 건필 아닐는지.

[사진 3. "때 묻은 거울. 그대는 눈을 맞추지 않으시는군요." 본인의 페이스북 포스팅, 2021년 3월.]

김보슬(Otis College of Art and Design 공공예술 M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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