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두기의 시대, 연결과 공동체의 연대를 게임 <데스스트랜딩>에서 경험하다 / 장민호

코로나19 덕에 우리가 빠르게 익숙해진 행위 하나를 꼽아보자면 데이터통신을 통한 가상공간에서의 만남을 들고 싶다. 모바일(휴대전화)환경에서 3G/4G 같은 통신 네트워크를 이용한 영상통화가 활성화된 것도 오래 전 일이다. 데스크탑 컴퓨터 상에서 스카이프(Skype)를 통한 영상통화는 적어도 2000년대 말부터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2020년대에 들어서야 줌(Zoom)을 활용한 비대면 영상통화/회의 시스템을 새로운 일상으로 받아들였을까? 아마도 ‘생명의 위협에서 비롯된 공포’ 때문이 아닐까.


그동안에는 충분히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소통은 만나야 이루어진다’ 라는 명제를 계속해서 당연히 여겼다. 생명의 위협이 없었던 지금까지의 삶, 한데 모여 공동체를 구성해 살아온 인류 전체의 경험에서 비롯된 우리의 일반적인 인식은 대면 소통이 인간관계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최우선의 방법이고 그 다음이 서신교환, 전화, 이메일, 스카이프 같은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일종의 보조수단으로 여겼던 셈이다. 이러한 인식은 코로나19로 인해 우리의 생명이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면서 완전히 뒤바뀌었다.


바이러스 확산을 차단하고 서로의 안전을 위해 자가격리를 택했지만, 여전히 소통을 유지해야 했던 우리는 각종 기술들을 이제 보조수단이 아닌 일상적인 수단으로 대체하기로 결정했다. 흔히 미래사회를 상상할 때 클리셰처럼 언급되던 원격수업과 가상공간은 이제 과학소설을 펼쳐 들어야만 나오는 게 아니라, 당장 지금이라도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켜고 접속할 수 있는, 현실과 중첩된 또 다른 현실 차원으로 훌쩍 다가와 있다.


‘가상공간 기술’처럼 이미 존재하던 것의 가치가 변한 또 다른 생활 요소로 ‘배달’을 들고 싶다. 사실 배달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일상의 풍경이 되어 있다. 당장 퇴근하고 예능이나 스포츠 경기를 볼 때 함께 먹을 치킨을 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자정 전에 주문하면 다음날 아침 7시 전까지 각종 물건을 받아볼 수 있는 세상이다. 이처럼 배달은 일상의 풍경이 되었고 우리는 그 편의를 적극적으로 누리고는 있지만, 편리함 이상의 다른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그런 우리에게 배달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를 제공한 사건이 바로 코로나19 팬데믹이다.

게임 <데스스트랜딩>의 배달장면

미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는 코로나19로 인해 미국 사회가 4개 계층으로 분할되었음을 주장했다. 각각 ‘원격노동자(The Remotes),’ ‘필수노동자(The Essentials).’ ‘무급노동자(The Unpaid),’ 그리고 ‘잊혀진 자들(The Forgotten)’이다. 이 4개 계층에서 필자가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필수노동자’ 항목인데, 미국 전체 노동자의 30퍼센트에 해당하는 이 그룹 안에 포함된 직업군은 간호사, 가사도우미, 보육도우미, 요양원 노동자, 농장 노동자, 식료품 가공업자, 트럭 운전수(truck drivers), 창고 및 운송 노동자(warehouse and transit workers), 약국 직원, 위생 노동자, 경찰, 소방관, 군인이다. 이들은 코로나19 이전에도 사회 전반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이지만, 팬데믹 선포 이후 더욱 중요한 직군이 되었다. 개별 가정의 문 앞까지 물건을 배달하는, 미시적인 영역까지 배달 노동자들의 역할이 확장되면서 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사회 전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있는 존재임이 증명되었다.


특히 코로나19 초기, 도시 전체가 봉쇄된 중국의 우한(武漢)에서 거리를 나서지 못하는 시민들을 위해 음식과 약품을 배달한 배달원들이 알려지면서 많은 게이머들은 코지마 히데오 감독의 2019년 작품, [데스 스트랜딩(Death Stranding)]을 떠올렸을 것이다. ‘전설의 배달원’이라는 주인공 샘 포터 브리지스, 그리고 도시 바깥 이곳저곳에 흩어져 사는 이들에게 물품을 배송해야 한다는 게임의 메인 컨텐츠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의아해하면서 ‘쿠팡맨 게임인가’ 라는 반응을 보였다.


시나리오 상 ‘데스 스트랜딩’이라 불리는 거대 폭발로 인해 문명이 붕괴되고, 단절된 개인들을 배달을 통해 다시 연결하면서 공동체의 연대를 회복한다는 게임 [데스 스트랜딩]의 주제는 정식 발매 초기에만 해도 큰 공감을 얻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배달’이 단절 상태를 회복할 수 있는 힘을 가진 행위라는 걸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일텐데, 공교롭게도 실제 세계에도 코로나19라는 거대한 위기가 찾아오면서 게임 속 주제의식은 즉시 현실의 사례와 접점을 찾으며 생명력을 얻었다.


[데스 스트랜딩]의 스토리는 주인공 ‘샘’ 이 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져 사는 프레퍼의 쉘터에 물건을 배달해주는 과정을 통해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샘의 여정은 미국 동부에서 시작하여 서부로 이어지고, 최종적으로는 ‘데스 스트랜딩’으로 인해 나뉘어진 미국을 다시 하나로 연결하고 통합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통합을 실현하기 위해서 샘이 배달해야 할 것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피터 앙글레르’라는 까다로운 거주자는 다섯 번이나 피자를 배달해 달라는 부탁을 해온다(피터 앙글레르는 배달할 때마다 쉘터를 비우고 있어 홀로그램으로도 만날 수 없다. 그의 정체는 스토리 상 중요한 스포일러이기도 하다). 현실과 마찬가지로 게임 속 피자 상자는 항상 수평을 유지해야 하는데, [데스 스트랜딩]의 세계는 도로 인프라가 소실되어 험한 들판과 경사진 언덕, 심지어는 눈 내리는 협곡 등 온갖 험지를 직접 걸어서 돌파해야 한다. 즉 피자 배달에는 매우 불리한 지형지물을 가진 세계이므로, 다섯 번이나 멀리 떨어진 쉘터로 피자 배달을 간다는 건 플레이어가 얼마나 선한 마음을 가졌는가 시험하는(?) 의뢰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외에도 ‘데스 스트랜딩’ 이전의 세계를 기록한 각종 기록물 – 영화 필름, 책, 사진 등 – 을 전달하여 원래 인류가 살던 세계의 모습은 어땠는지 연구하는 이들에게 도움울 주거나, 설산 한 가운데에 사는 산악인의 쉘터와 산 중턱에 사는 의사의 쉘터가 데이터 통신할 수 있게 하는 장비를 전달하여 의사가 원격으로 산악인의 부인이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도와주는 등, ‘전설의 배달원’을 믿고 많은 사람들이 각양각색의 의뢰를 해온다.


그런 프레퍼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친밀도를 쌓아두면, 다음번에 그들이 의뢰한 물건을 가지고 방문했을 때 프레퍼들 또한 샘에게 보답한다. 의사는 고용량 혈액팩을 제공하고, 로봇공학자는 샘의 외골격 슈트를 강화하여 지형을 가리지 않고 많은 물건을 안정적으로 지고 다닐 수 있게 해주며, 산악인은 내구도가 향상된 커스텀 등반용 앵커를 제공하는 식이다. 이들이 제공하는 물건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면, 샘은 갈수록 험해지는 지형을 보다 수월하게 돌파할 수 있고 파편화된 세상 곳곳을 누비며 더 많은 연결을 실현할 수 있게 된다. 배달을 통해 흩어진 세상을 연결하는데, 주민이 일방적으로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에게도 보답을 제공하면서 서로의 연대를 회복하게 된다.


실제 코로나19 사태 중 용감했던 우한의 배달원들 사례가 바로 ‘배달을 통해 세상의 단절을 해소하고 연대를 회복한다’는 걸 실제 사회에서 증명한 적절한 경우일 것이다. 그 중에서 특히 근무상황을 꾸준히 웨이보로 포스팅한 어느 배달원은, 본인도 감염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면서도 병원에서 일하는 아버지에게 도시락을 전해달라는 한 아이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았다고 한다. 성공적으로 배달을 마치고선 병원으로 가는 배달을 좀 더 늘려야겠다고 결심했을 뿐이다.


자가격리 상태에서 매일 울면서 지낸다는 어느 여성 주민과는 배달이 끝나고도 통화를 주고받으며 위로의 말을 전해주었다. 언론은 그의 행위를 칭송하며 인터뷰를 청했지만, 그는 스스로를 ‘특별할 거 없는 보통 사람’일 뿐이라 말하며 나서지 않았다. 자기 사진을 쓰길 원한다면 마음껏 쓰라면서, 혹시 사진을 상업적으로 사용하여 이익이 발생한다면 그 수익으로 의료 물자를 구입해 병원에 기부해달라고 부탁한 그 배달원이야말로 진짜 ‘전설의 배달원’이 아닐까.



코로나19가 불러온 뉴 노멀 – 거리두기의 시대는 이미 코로나19 이전의 일상과 완전히 다른 방식의 삶을 요구하고 있다. 2019년 이전까지 우리가 누려오던 삶은 이제 과거의 일이 되었다. 거리두기의 시대에서 가상공간은 현실과 동시에 존재하는, 새로운 차원의 현실로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서로를 연결하는 만남의 장을 만들어 냈다.


일상 속에서 일반화되어있던 배달은, 거대한 위협이 인류를 서로 멀어지게 한 상황 덕분에 오래 전부터 사회 구성원을 서로 이어오고 있었던 행위였음이 드러났다. 삭막한 거리두기의 시대에도 인류는 서로를 연결하기 위한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왔고, 찾아냈으며, 또 상황이 변한다면 바뀐 상황에 맞는 답을 찾아낼 것이다.


게임 [데스 스트랜딩]은 영문도 모르게 갑자기 세상에 등장한 알 수 없는 게임이 아니라, 연결의 의미를 탐색하고자 한 많은 이들의 우울과 욕망이 게임플레이로 투영된 작품으로 받아들이는 게 타당할 것이다. 가상적 공간이었지만 주인공 샘 포터가 되어 미국 전역을 연결한 경험은 필자에게 코로나19의 우울함을 견디게 해 주었다. 신선한 경험이었다.


장민호(한양대 장르 테크놀로지와 서브컬처 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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