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개념사 공부. 뜻밖의 발견은 우연한 검색의 결과이다. 언젠가 한국문집총간db에서 ‘穆陵盛世’(목릉성세)를 검색했다. ‘목릉성세’란 조선 선조의 능호 ‘목릉’과 태평성세의 ‘성세’가 결합해서 만들어진 이름인데 이 시기에 문학이 융성하고 많은 인재가 배출되었음을 가리키는 말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검색 결과는 0건이었다. 뜻밖의 결과에 당황하여 다시 ‘穆陵盛’(목릉성)으로 검색했더니 ‘穆陵盛際’(목릉성제) 49건을 얻었고, ‘陵盛際’(능성제)로 검색했더니 목릉(선조, 49건), 영릉(세종, 35건), 원릉(영조, 22건), 건릉(정조, 18건) 등의 순서를 얻었다. ‘목릉성세’의 사료적 근거는 보이지 않고 ‘목릉성세’의 관념을 본래는 ‘목릉성제’가 구현했을 것이라는 가설을 얻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만일 ‘목릉성세’가 김태준 『조선한문학사』(목릉성세의 문운)에서 처음 시작하는 것이라면 김태준은 어찌하여 ‘목릉성제’ 대신 ‘목릉성세’를 취했을까? 어쩌면 학술 용어 ‘목릉성세’는 근대 외래어가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학술 용어와 당대 사료의 불일치 현상은 조선후기 실학의 유파에 관한 표현에서도 찾을 수 있다. 흔히 조선후기 실학의 유파에는 ‘경세치용’, ‘이용후생’, ‘실사구시’ 세 가지가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기백은 조선후기 실학이 경세치용의 학문, 이용후생의 학문, 실사구시의 학문을 포괄한다고 했고,(이기백, 1961, 『국사신론』) 이우성은 조선후기 실학이 경세치용의 학파, 이용후생의 학파, 실사구시의 학파로 구성된다고 했다.(역사학회 편, 1973, 『실학연구입문』) 아울러 전해종은 경세치용, 이용후생, 실사구시의 삼분법에 찬성하되 다만 이용후생은 조선 실학의 독특한 조류라고 평가했다.(전해종, 1991, 「조선조 실학론의 비교 소론」)
이에 필자는 조선시대 ‘이용후생’의 용법과 어휘 추세에 흥미를 느껴 한국문집총간db에 의지해서 ‘이용후생’ 및 그 유관 키워드로 ‘경세치용’, ‘실사구시’, ‘개물성무’, ‘명물도수’ 등의 빈도수 추세를 비교해 보았다. 한국문집총간 정집(1-350)을 14개 구간(1구간=25집)으로 나누어 구간별로 해당 키워드의 증감 추세를 살펴보는 방법을 선택했는데 이 과정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아래의 그래프는 ‘이용후생’과 ‘실사구시’, ‘이용후생’과 ‘개물성무’, ‘이용후생’과 ‘명물도수’의 기사 건수 비교를 나타낸 것이다.
위 그래프를 보면 ‘이용후생’은 주로 제10구간(226집-250집)~제14구간(326집-350집)에 집중해 있는데 이것은 실록이나 승정원일기에서 이 어휘가 주로 조선후기 정조 치세와 고종 치세에 나타난다는 사실과 일치한다.(이경구, 2012, 「조선후기 주자주의의 동향과 이용후생 개념의 부상」) ‘이용후생’의 구간별 기사 빈도수 증감 패턴을 다른 유관 키워드의 그것과 비교하면 마지막 그래프에서 보듯 ‘이용후생’과 ‘명물도수’가 상대적으로 가장 유사한 패턴을 보이고 있다. 반면 첫 번째 그래프에서 보듯 ‘이용후생’과 ‘실사구시’는 그다지 긴밀한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는다. 양자는 개념적 친근성이 낮다는 뜻이다. 물론 첫 번째 그래프와 두 번째 그래프의 비교에서 보듯 ‘개물성무’와 달리 ‘이용후생’과 ‘실사구시’는 모두 제1구간(1집-25집)~제7구간(151-175집)에 거의 존재감이 없다는 공통점은 있다.
필자는 ‘이용후생’과 ‘경세치용’의 비교 작업은 수행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수행하지 못했다. ‘경세치용’은 조선말기 허훈의 『방산집』에 딱 한 번 보이니 조선시대에 쓰이지 않았던 말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용후생’과 ‘실사구시’는 비교 작업 결과 개념적 친근성이 낮게 나오고 ‘이용후생’과 ‘경세치용’은 비교 작업 그 자체가 불가능하다니 이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조선후기 실학의 세 가지 유파를 표현하는 ‘경세치용’, ‘이용후생’, ‘실사구시’가 학술 용어로는 동류성이 확보될 수 있을지 몰라도 사료의 수준에서 보면 거의 동류성이 인정되기 어려운 상황에 있다면 어떠한 경로를 거쳐 이 세 키워드가 조선후기 실학과 관련된 학술 용어로 부상하게 되었을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경세치용’이다. 조선시대에는 ‘경세經世’도 쓰이는 말이었고 ‘치용致用’도 쓰이는 말이었다. 박제가의 『북학의』에 ‘경세적용經世適用’이 검출되는 것으로 보아 ‘경세치용’의 관념도 조선시대에 존재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끝내 ‘경세치용’이 조선시대의 언어가 아니었고 따라서 학술 용어 ‘경세치용’의 사료적 근거가 박약하다면 ‘경세치용’은 어떤 경로를 거쳐 조선후기 실학에 관한 역사 지식의 키워드로 자리잡게 되는 것일까?
관련하여 필자는 20세기 한국사 교과서/개설서에서 조선후기 실학에 관한 장절을 검토한 적이 있었다. 현채의 『동국사략』(1906)부터 이기백의 『국사신론』(1961)까지 30종의 책을 대상으로 해서 ‘경세치용’이라는 용어가 어디에서 처음 나오는지 살펴보면 한우근이 공저로 참여한 『국사신강』(1958)이 최초의 책으로 보인다. 그 전까지는 조선후기 실학에서 주로 ‘실사구시’나 ‘이용후생’을 말했는데 여기에 ‘경세치용’이 새롭게 진입했고 그 결과 이기백의 『국사신론』이 최종적으로 조선후기 실학을 ‘경세치용, 이용후생, 실사구시의 학문’이라고 교통 정리한 것이다.
한우근은 『국사신강』이 출판된 그해에 실학 개념을 연구했다. 그는 일본의 야마이노유[山井湧]의 명말청초 중국사상사 연구를 참조하여 명대 심학과 청대 고증학 사이 명말청초 경세치용의 학문이 존재했듯 조선 역시 동시기 이왕 상응하는 경세치용의 실학이 존재했음을 시론했다. (한우근, 1958, 「이조 실학의 개념에 대하여」) 물론 학술 용어 ‘경세치용’의 내력은 이보다 더 오래되었는데, 1920년대 양계초의 중국 학술사 정리 작업에서 이를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조선의 문집에서 용례가 거의 보이지 않는 ‘경세치용’이 조선후기 실학의 유파를 나타내는 학술 용어로 통용되는 이유는 외래 학술 용어 ‘경세치용’의 수입에서 구해야 할 것이다. 필자가 서두에서 학술 용어 ‘목릉성세’의 외래어 가능성을 의심한 것도 학술 용어 ‘경세치용’의 이러한 상황을 발견한 데에서 기인한다.
개념사 연구는 사람마다 그 취향이 다를 수 있다. 필자의 경우 근대 학술 용어와 전근대 사료 용어의 불일치라는 문제적 현장을 발견하는 유력한 방법으로 키워드 연구의 매력을 느끼는 편이다. 여기서 ‘불일치’는 학술 용어가 사료 용어로 쓰이지 않는 상황도 가리키지만 이와 함께 학술 용어로 만들어낸 역사 지식이 본래의 사료 용어의 어휘 현상에 비추어 실제와 들어맞지 않는 문제점과도 관련된다. 예를 들어 한국 근대사상사의 주요 연구 주제로 개화사상이 있다. 교과서/개설서에서 전달되는 개화사상에 관한 역사 서사는 개항(1876) 후 ‘개화와 수구’의 역사 드라마가 전개되어 갑신정변에서 한번 스펙터클을 보이고 갑오개혁에 이르러 최종적으로 이 드라마가 종결된다는 방식을 취한다. 그런데 실록과 승정원일기에서 검출되는 ‘개화’의 어휘 현상을 보면 이러한 설명 방식은 한국에서 ‘개화’의 사상사를 서술할 때 채택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위 그래프에서 보듯 ‘개화’의 어휘 현상에서 본다면 ‘개화’가 분출하는 지점은 갑오개혁(1894)부터 대한제국 선포(1897) 사이의 구간이며 ‘개화’의 대척점에 있다고 생각되는 ‘수구’ 역시 이 구간에서 비로소 의미 있는 어휘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갑오개혁에 이르러 개화와 수구의 역사 드라마가 종결된다는 일반적인 역사 서사와 달리 실제로는 갑오개혁에 이르러 이 드라마가 시작한다는 새로운 역사 서사의 필요성을 시사한다. 갑오개혁으로 인해 ‘개화와 수구’가 촉발되었고 이 문제가 대한제국의 선포까지 요동쳤다는 것이다. 아관파천(1896) 이후 ‘구본신참’이라는 정치적 지향의 출현 맥락에도 갑오개혁 이후 분출된 ‘개화와 수구’를 상정할 수 있다. 지금 이 그래프는 연대기 자료에 국한되어 있는데 만약 신문을 활용한다면 대한제국기 개화의 사상사, 곧 개화와 수구의 드라마를 더욱 실감나게 확인할 어휘 추세를 검출할 수 있을 것이다. 역으로 지금까지 ‘선각자 개화파’의 역사상에 가려진 학술사의 흐름을 성찰할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경세치용’이나 ‘개화’ 같은 학술 용어를 예시하고 학술 용어와 사료 용어의 불일치를 드러내는 방법으로 키워드 연구의 가치를 간략히 논하였다. 개념사 연구는 단지 키워드의 언어 질서를 구현하고 이를 구경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상사를 성찰하고 새로운 학술 연구를 개척하는 방법론적 미덕을 발휘할 수 있다. 개념사는 사상사와 어떻게 만나는가? 지금까지 의심하지 않았던 학술 용어를 사료 용어의 언어 맥락에서 점검해야 할 많은 상황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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