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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오류의 공동체 / 마준석

할아버지는 이번에는 꼭 내려오라고 신신당부하셨다. KTX는 서울역을 출발하여 광명, 대전, 동대구역을 지나 울산역에 도착했다. KTX는 기나긴 터널을 거듭 내달렸고, 그때마다 나는 먹먹한 귀를 풀어주기 위해 마른침을 삼켰다. 지루함을 이기지 못한 아이들의 칭얼거림이 이따금 들려왔고, 부모는 교대로 애를 돌보았다. 한쪽이 졸기 시작하면 다른 쪽이 애를 보고, 다른 쪽이 꾸벅 졸면 한쪽이 애를 보는 식이었다. 좌석 위에 짐칸에는 여행용 캐리어가 가득 들어찼고, 객차 사이 복도에는 입석 손님들이 잔뜩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복도가 비좁아 화장실 가기도 쉽지 않았다. 추석이었다. 울산에서 또 차로 갈아타고 양산 외갓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저녁이었다.

다만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먼 곳에서 딸과 손주가 가까이 왔건만, 그토록 추석을 고대하셨던 할아버지는 가까이 온 것을 보지 않으시고 TV 속에서 먼 것만을 찾으셨다. TV 속에서 고등학생이 목포의 눈물을 불렀다. 목소리가 낮았고 기교가 많지 않았다. 먼 것을 그리는 노래였다. 이모가 짜증을 두세 번 부린 후에야 TV 볼륨은 줄어들었다.

할아버지는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사랑 얘기는 쉽고 가까울진대, 가까운 것을 멀리 두고 멀리 둔 것들을 서로 얽어매니 어렵게 찾은 사랑조차도 놓치고 말겠노라고 걱정하셨다. 여기 릴레이 칼럼에 투고한 내 첫 글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할머니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살아갈 길은 분명 가까이에 있을진대, 구태여 멀리 떠나 가까운 것을 찾겠다는 그 심사가 마뜩잖으신 것이었다. 몇 년 내로 유학을 가고자 하는 내 소망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할머니는 나의 먼 곳에서의 고생과 이를 뒷바라지할 당신 딸의 가까운 곳에서의 고생을 염려하셨다.

가족이란 분명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나에게 이 문장은 중의적으로 읽힌다. 나는 내가 아닌 다른 가족 구성원을 투명하게 읽어낼 수 없다. 동시에 나는 가족은 어떻게 가족이 되는지, 무엇이 가족을 가족으로 만드는지 알지 못한다. 가족 내에서 사소한 것은 사소한 것으로만 남지 않는다. 우리는 가벼운 농담에서 뼈를 발라내거나, 때로 호의를 악의로도 읽는다. 가족 간의 소통에 언제나 실수와 오류가 도사리고 있는 까닭은, 우리가 가족이란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음이 틀림없다고 오해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숨어, 이해하기를 또 이해받기를 태만히 한다.

가족의 오해 혹은 오인에 대한 영화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가 있다. 여기서 오인은 뿌리가 깊다. 경제적으로 성공한 건축가인 료타와 그의 아내는 6년 동안 아들을 사랑으로 키웠다. 그러나 어느 날 병원으로부터 아이들이 바뀌었다는 연락을 받게 되고, 자신의 친자가 전혀 다른 환경과 생활 수준의 부부에게서 6년 동안 키워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른 누군가의 자식을 자신의 자식으로 오인하고 살아왔던 것이다. 료타는 핏줄과 기른 정 사이를 저울질하며 고뇌한다. 료타는 자신이 진정으로 누구의 아버지인지 알고자 한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 료타의 실패가 자리한다. 료타는 자신이 ‘누구의’ 아버지인지 고뇌했을 뿐, 자신이 누구의 ‘아버지인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료타는 스스로를 아버지라고 이해한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바와 달리, ‘아버지임’은 자녀가 있다는 사실로 곧바로 획득하는 성질이 아니다. 아버지란 그렇게 되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료타는 자신이 이미 아버지라고 오인하고 있다. 그가 6년 동안 기른 아들을 포기했을 때, 그리고 자신의 생물학적 친자를 선택하고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강요했을 때, 그는 양쪽에게서 “아빠는 아빠가 아니야”라는 말을 듣게 된다. 료타는 실상 그 누구의 아버지도 아닌 것이다.

료타의 오해는 하나가 더 있다. 가난한 상대 부부는 병원으로부터 위자료를 받을 생각에 들떠 있었고, 료타는 그들을 속물이라 생각했다. 그들이 속물이기에 료타는 자신의 고뇌를 돈으로 손쉽게 해결하고자 했다. 그는 충분히 사례할 테니 두 아들을 모두 거두어 가겠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상대 부부의 분노를 통해, 자녀를 자기 욕망의 대리물이자 사고팔 수 있는 재산으로 간주했던 자는 오히려 료타였다는 것이 밝혀진다. 타자에 대한 오인으로 밝혀지는 것은, 반대로 자기 자신의 진리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지점은, 료타가 그의 실패와 오해를 통해서 진리에 접근해간다는 사실이다. 그는 아버지란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료타는 이제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아이가 자신을 인정할 때까지 차분히 기다리며, 결국 아이와 대등한 눈높이에서 사과를 건넨다. 진리는 오직 실패를 통해서만 밝혀질 수 있다. 애초에 오인과 오류는 진리의 필연적인 계기이다. 헤겔이 강조하듯이, 진리는 최종적인 도달점이 아니라 오히려 그 실패의 과정 전체인 것이다. 만약 우리가 고통스러운 실패의 과정을 회피해버린다면, 우리는 진리 자체를 잃어버리고 만다. 료타는 아버지이길 실패하고, 비로소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가족은 가까이 있으되, 바로 그 가까이 있다는 점으로 먼 것이다. 가족은 나날의 삶이 꾸려지는 터전이지만, 그 터전 자체는 우리의 언어에 충분히 와닿지 못한다. 말해져야만 하는 것은 말해지지 않고, 그나마 말해진 말은 언제나 조금 늦게 도착하며, 늦게서야 도착한 말조차 오해되기 십상이다. 온갖 이름 모를 소망과 후회가 가족 내부에 설키어 있다. 그런 점에서 오류는 필연적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되기 전에 아버지가 되는 법을 알 수 없듯이, 가족은 무수한 헛발질을 내지르며 나아가는 실수 그 자체일 것이다.

우리는 상상해 볼 수 있다. 만약 료타가 처음부터 단 한 번도 실수하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 “한번도 져 본 적이 없는 녀석은 정말 남의 마음을 모르는군.” 료타는 그대로 강압적인 아버지가 되었을 것이고, 아들은 그 품속에서 숨을 쉬지 못했을 것이다. 서로에게 친절한 상처를 입히며, 사랑해서 그랬노라 변명했을 것이다.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으니까. 따라서 폐색된 공간을 열어낼 수 있는 힘은, 정답이 아니라 오류에 놓여있다.

6년 동안 기른 아들을 떠나보내고 료타는 우연히 카메라를 들여다본다. 그 안에는 자고 있는 자신의 사진이 잔뜩 들어있었다. 아들은 일에 치여 집에 오면 잠들기 바빴던 료타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아들은 안다. 료타 자신은 결코 모를 자신의 자는 모습을. 사진은 뒤늦게 료타에게 도착하고, 뒤늦게 도착한 아들의 마음은 료타의 오류를 지적해 낸다. 덕분에 료타는 아들을 뒤쫓을 수 있었다. 헛걸음 속에서도 가족은 앞으로 나아간다. 언제까지고 방황하겠지만, 그럼에도 그 발걸음은 늘 정직할 것이다.

할머니는 나에게 공무원 시험을 보라고 하셨다. 말씀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할아버지는 크게 역정을 내셨다. 문장이 또렷하지 못해 알아듣기 어려웠다. 다만 괜한 소리 하지 말라는 것처럼 들렸다. 할아버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셨다. 언젠가 할아버지는 로스쿨에 가 법조인이 되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하신 적이 있다. 의학 전문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도 말씀하셨다. 마지막으로 이왕 철학을 할 것이면, 동양철학을 하라고 하셨다. 나는 그 모든 말씀을 듣지 않았다. 이제 할아버지는 나를 마칸트라고 부르신다. 내가 칸트 전공자도 아니건만, 할아버지는 이 이름을 좋아하신다. 한자어로도 쓸 수 있다. 馬幹得. 줄기 간에, 얻을 득이다. 마간득. 덕의 근본이라는 뜻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도 이 이름을 좋아한다.

떠날 채비를 할 때 할머니는 어디선가 긴 종이봉투를 꺼내오셨다. 그 안에는 위스키 한 병이 있었다. 글렌피딕 12년 구형 보틀. 90년대에나 유통되었던 아주 오래된 병이었다. 위스키 케이스에서 진한 나프탈렌 냄새가 났다. 할머니 냄새였다. 위스키는 옷장 구석에서 30년 가까이 숨어 기다렸을 것이다. 내가 살아온 만큼이나 그 긴 시간 동안 위스키는 어떤 꿈을 꾸었을까. 나는 생각이 닿지 않았다. 나프탈렌 냄새가 올라오고, 나는 내가 이것을 받아도 될는지 알지 못했다. 만 원짜리 증류 소주를 귀한 술로 여기시는 분이니, 위스키는 분명 집안 경사를 위해 아껴두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내 손에 들려있다. 할머니는 공부하다 힘들면 한 잔만 마시고 다시 힘내라고 당부하셨다. 나는 여전히 많은 것을 알지 못하건만, 나프탈렌 냄새가 올라오고, 사랑이 가까이 있음을 알았다.

마준석(연세대 철학과 석사과정) wegmarken12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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