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중반으로 기억을 더듬으면, 짐 캐리(Jim Carrey) 주연의 헐리우드 영화 <마스크(The Mask)>가 대히트를 쳤었다. 잊고 있던 이 영화를 새삼 떠올린 것은, 역병과의 전쟁 중인 우리가 하나씩 지니고 다니는 그것 때문이었을까. 제67회 아카데미 시상식 시각효과상 후보작으로 선정된 바와 같이, 완성도 높은 CG(Computer Graphic)가 이 영화의 핵심이었다. 장르물의 전형적 권선징악을 비껴간 인물구도 뿐 아니라, CG를 통해 시각적으로(미술적으로) 펼쳐내는 현실구사는 괴이하고도, 신선했다.
이즈음 마스크가 일상 깊숙이 파고든 것은 비단 바이러스 대란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전부터 대한민국의 거리에는, 미세먼지 가득한 대기와 성형수술 열풍으로 인해 마스크 뒤에 감춰진 얼굴들이 대거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급기야 팬데믹까지 도래했으니 이제는 마스크가 신인류를 형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체의 일부나 다름 없어졌으니 말이다. 이로 인해 CG 기법이 현란했던 영화 <마스크(The Mask)>처럼, 우리가 지금 겪는 일상은 일종의 그래픽 기법이 어우러진 풍경인가 싶기도 하다. 전례없는 시각 체험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뉴스나 음란물에 등장하는 모자이크 처리, 얼굴 사진의 눈 부위만 검정 띠로 가리는 처리만 보더라도, 무엇인가를 가리는 일은 어떤 사실이나 정보를 보호 또는 은폐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 반대로 눈만 남기고 베일로 두부(頭部)를 다 가린 이슬람 여인들 사이에서 누가 누구인지 헷갈린 적도 있다. 신상을 숨기거나 술래잡기 무도회를 하는 자들이 복면을 쓰는 이유도 거기서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어느새 상황이 좀 달라지고 말았다. 다들 엇비슷한 의료 마스크로 얼굴을 반쯤 가린 와중에도, 서로를 알아보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어진 것이다. 비말 차단용으로 마스크 착용이 막 권장되기 시작하던 무렵만 해도 마스크를 쓴 상대방를 왕왕 못 알아보았는데, 이제는 그렇지도 않다. 각자 마스크를 쓰고 복도 같은 데에서 마주쳐도 익숙하게 알아보고 인사를 나눈다. 인상 식별의 감도가 전반적으로 높아진 것일까. 부분 유실 기호 판독에 도통해 가는 중에, 안타까운 것은 (온전한 미소를 주고 받기 어렵다는 점을 제외하면) 바로 청각장애인들의 입장이다. 그들로서는 입술 모양을 읽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측면을 차치하고 오직 시각적 효과만 생각한다면, 이런 것들은 마스크가 새롭게 직조한 현실이다. 경솔할지 모르겠으나, 철학자 헤겔이 했던 말을 복기해 본다. 그는 “가상은 그 자체로 본질에 대해 본질적(Der Schein selbst ist dem Wesen wesentlich.)”이라 하지 않았던가. 오늘을 기준에서 가면(=마스크)은 영화나 게임 CG에 맞먹는 가상의 세계를 펼쳐놓았고, 그 자체로 또 다른 차원의 현실이며, 이미 허상이 아니고, 엄연히 사태의 본질을 가리키고 있다.
이쯤에서, 전혀 다른 실험으로 비슷한 문제를 환기시키는 예술 작업을 소개하려 한다. 수잔 레이시(Suzanne Lacy)*의 1970년대 작 <Anatomy Lesson> 시리즈가 그것이다. 고교 졸업 후 의예과에 진학했던 그는 의학적 지식과 관심을 이어, 동시에 뛰어넘어, 전공을 철학, 동물학 그리고 심리학으로 옮기고 넓혀가며 독특한 이력과 경험을 쌓아갔다. 전업 작가가 되기 전에 밟았던 이 같은 행보는 그가 작품을 통해 꾸준히 신체 인식을, 몸의 장소성을, 나아가 신체와 언어 간 상관성을 밝히려는 이유를 가늠케 한다. <Anatomy Lesson> 시리즈는 1976-77년에 걸쳐 이루어진 네 차례의 퍼포먼스이자 각각의 사진 기록 작업인데, 제목 그대로 해부학 교실을 연상케 한다. ‘가상’이라는 문제를 두고 이것을 떠올린 이유는 그 작업의 방식이 인체의 가상성을 폭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상이 모방과 다른 점은, 현실을 능가하는 현실성이다. 영어 단어 ‘virtual’의 사전적 정의는 ‘가상의’ 그리고 ‘지극히 생생한’이다. 그렇다면 우리 각자에게, 그 자신의 몸의 내부(the interior)는 가상의 공간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실체 없는 현시라는 점에서. 우리는 흔히 피부와 신경이 덮고 있는 신체를 언어, 사고, 개념 따위에 비해 월등히 생생한 무엇인 것으로 간주한다.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고, 온기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을 그 생생함의 준거로 꼽기 십상이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나는 내 몸의 어디든 만질 수 있고 들여다볼 수 있는가? 생각해 보면, 오히려 그렇지 않다는 쪽에 가깝다는 것은 금세 알 수 있다. 스스로의 오장육부를, 장 융털 사이를, 뇌 주름 안쪽를 육안으로 볼 수 없잖은가. 목숨을 걸지 않고서는 그럴 수 없을뿐더러, 목숨을 걸고 그 무시무시한 일을 감행하여 성공했다는 사람을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살아있는 한 생명에게 있어 그 자신의 몸 내부는 세상에서 가장 멀고도 추상적인 공간이다. 하지만 그것을 대개 잊고, “내 몸은 내가 안다.” 하고 호언장담을 할 때처럼 스스로의 몸 안팎이 자신에게 속해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 내 마음이 내 것이 아닌 만큼이나 몸도 그러하기에, 막상 두통이나 변비가 오면 대체 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해 답답해하는 신세인데도 말이다. 결국 몸의 심부(深部)는 엑스레이, MRI, 초음파, 내시경 따위가 제시하는 정보에 기대어 간접적으로 알게 될 뿐인데도 우리는 몸으로부터 두근거림을, 출렁임을, 뻥 뚫림을 ‘느끼기에‘ 실체를 의심하지 않으며, 그 때문에 가상을 닮아있다. 살아있는 몸은 실재하면서도 실재하지 않으며, 주인 행세를 하는 자로부터 끝내 그 추상성을 지켜낸다.
레이시는 <Anatomy Lesson>에서 그 추상성 위에 다시 가상과 환영을 덧대었다. 그러나 정작은 뭔가를 열어젖히며, 몸의 추상성을 바짝 추격했다. 이 시리즈를 구성하는 네 편의 작업을 아래에 요약한다.
1. Anatomy Lesson #1: Chickens Coming Home to Roost (for Rose Mountain and Pauline)
[사진 1-3. Anatomy Lesson #1: Chickens Coming Home to Roost (for Rose Mountain and Pauline)을 실행 중인 수잔 레이시, 1976, 출처: suzannelacy.com]
레이시의 초기 사진과 영상작업들은 개인의 정체성이 사회적·생물학적 성, 그리고 몸과 어떻게 관계 맺는지를 밝히는 데에 초점을 두고, 언어적 재료, 의과학 지식, 전해지는 이야기 등을 두루 활용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벗은 몸과 동물의 사체를 대비시킨다든지 인체 부위 사진과 도축장 사진을 교묘하게 편집해 다양한 시각화 작업에 도전했는데, 이는 의학과 동물학을 전공했던 이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작품에서 덤덤한 표정으로 일관한 채 고기를 뜯으며 자신의 다리와 닭다리를 나란히 놓고 ‘닭봉(drumstick)’이라 일컫는 모습은 작가가 가진 특유의 유머를 자아내면서, 우리가 과연 ‘동물의 왕국’과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2. Anatomy Lesson #2: Learn Where The Meat Comes From
[사진 4-7. Anatomy Lesson #2: Learn Where The Meat Comes From을 실행 중인 수잔 레이시, 1976, 출처: suzannelacy.com]
이 퍼포먼스 작업은 먼저 영상으로 촬영된 뒤 사진 시리즈로 완성되었다. 촬영 장소는 잘 꾸며진 주방. 작업대 위에는 생 양고기 한 마리가 통째로 놓여있다. “주부님들, 양고기 요리 많이들 하시죠? 어느 고기가 어느 부위에서 나오는지 기억해 두시면, 좋은 고기 고르실 수 있어요. 잠깐의 우스꽝스런 모습을 견디실 수만 있다면 배우는 건 어렵지 않죠.” 요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셰프처럼 분한 작가가 음성 해설에 따라 차례로 고기 부위를 가리키다가, 차츰 모습이 변해간다. 인조 송곳니를 드러내고, 가죽을 벗긴 양 머리를 흉내 내기도 한다. “이렇게 하시면 돼요. 여러분이 양이라고 생각하시고요, 땅을 네 발로 짚으세요. 양의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해 보시면서 어떤 근육이 쓰이는지 잘 살펴보세요. 자, 머리를 양쪽으로, 그리고 위 아래로 움직이면서 호기심 많은 동물 시늉을 해 보세요.” 그러는 사이 더 뾰족해진 송곳니를 번뜩이며 작가는 서서히 더 사나운 포식자로 탈바꿈하면서 작업대를 딛고 고기와 씨름한다.
3. Anatomy Lessons #3: Falling Apart
[사진 8-11. Anatomy Lessons #3: Falling Apart, 1976, 출처: suzannelacy.com]
이 포토콜라주는 사다리에서 뛰어내리는 레이시 자신을 포착한 사진과 동물의 장기 사진들을 찢고 재조합하여 제작된 것이다. 그의 다른 작업에서도 호흡을 맞추었던 동료 작가 수잔 모굴(Susan Mogul)이 최초로 촬영하였고, 1980년에 계간지 『Dreamworks: An Interdisciplinary Quarterly』에 실리면서 추가 작업이 가미되었다.
4. Anatomy Lessons #4: Dreaming
[사진 12. Anatomy Lessons #4: Dreaming, 1977, 출처: suzannelacy.com]
벌거벗겨지고 억압 당하는 상황에서 겪는 심리적 저항을 암시할 때마다, 작가는 여러 번에 걸쳐 바깥으로 튀어나온 장기나 벗겨진 살갗의 사진을 전면에 돌출시켰다. 이 작품 또한 정체성, 성 인식, 몸 자각의 이슈에 관한 언급을 두고서 같은 미술적 태도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가 Rob Blalack이 촬영한 위 사진은 2010년 발간된 단행본 『Suzanne Lacy: Spaces Between 』(Sharon Irish 저)의 커버 이미지로도 사용되었다. 본 시리즈의 최종편을 이루는 <Anatomy Lesson 4>는 Dreaming / Floating / Swimming / After Mantegna / Flying / Untitled로 이름 붙인 시퀀스들로 이루어져 있다.
*수잔 레이시(Suzanne Lacy). 1945년 미국 출생. 작가, 활동가, 교육자로 50년 넘게 활동해 왔으며 미술사에 ‘뉴 장르 공공예술(new genre public art)’이라는 용어를 등장시켰다. 앨런 카프로(Allan Kaprow)의 제자이자, 전 세계 수많은 예술가들의 동료로서 현대미술의 여러 갈래 안에서 페미니즘과 사회참여를 미술화하는 것으로 영향을 미쳤고, 행위예술, 영상, 설치미술, 글쓰기에 이르기까지 장르 구분 없이 사회적‧도시적 이슈를 다루어 왔다. 2010년에는 ‘제3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에 초청되어 국내에서도 <안양 여성들의 수다>라는 작업을 이끌고 전시했다. 이때 실제로 안양 여성들과 나눈 대화의 내용은 안양시 여성의원들을 통해 의회에 안건으로 제출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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