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학의 지성사』 리뷰: 민중의 벗이 되고자--한국의 비판 사회학 / 선승범

정수복의 『한국 사회학의 지성사』 3권인 『비판사회학의 계보학』은 3명의 한국 원로 학자인 이효재(1924~2020; 이화여자대 사회학과 교수) 한완상(1936~; 상지대 총장, 통일부총리, 교육부총리) 김진균(1937~2004;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민교협 공동의장)을 다루고 있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비판 사회학은 연구자와 학문의 성찰성을 드러내고, 현재를 분석하는 실증주의적 상태 서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학문이 놓인 맥락과 사회 전체에 대한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지배계급과 권력의 관계라는 이데올로기 비판으로서 사회학을 말한다.


한국의 맥락에서 그것은 지배계급과 민중의 지배-피지배 관계를 해명하기 위한 작업이었으며, 사회학이 시대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처방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공공 사회학으로 분류될 수 있는 부류를 말한다. 즉 여기서 ‘비판’은 가치 중립적 사실 서술을 중시하는 주류 경향에 의문을 던지고, 동시대 사회현실과 한반도의 역사적, 지정학적 질곡 또는 모순의 자장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의 사건에 대한 총체적 관점을 획득하기 위한 학문적 작업이다. 철학에서 ‘비판’이란 이성을 통해 이성을 탐구하고 인간 존재가 스스로의 조건을 성찰하는 칸트의 작업을 말하고, 사회학 전통에서 ‘비판’이 마르크스주의적 경향의 비판이론 경향의 작업들을 말한다면, 한국의 ‘비판 사회학’은 단지 학문적인 급진성뿐 아니라 군사독재 정권의 존재라는 사회적 상황과 맞물려 체제 저항적인 대항담론의 성격을 동시에 가졌다. 이들은 학자인 동시에 ‘비판적 지식인’이었던 것이다. 저자가 들고 있는 3명의 학자뿐 아니라 리영희, 백낙청, 김세균, 손호철 등의 학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2017년 문재인 정부는 이효재 교수를 청와대로 초청하여 환담했다.

『비판사회학』은 학문의 계보를 저서나 연구 결과 같은 공적 결과물에 기대 추적하는 대신, 주변 인물들의 증언과 본인의 회상과 인터뷰, 필요하다면 저자의 과감한 추론까지도 덧붙여 대략 1970년대부터 ‘지식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하여 1990년대까지 왕성하게 활동해온 사회학자들의 삶과 지적 여정을 재구성하고 있다. 자칫 난삽해질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저자가 이런 식의 서술 방법을 택한 것은 학문이 발흥한 사회역사적 조건과 학문 장에서 발생하는 개인 행위자들의 상호작용을 함께 살펴봄으로써, 과거 선배 학자들의 텍스트를 문언 그대로만 해석하여 현재 관점에서 체계나 일부 내용이 미흡하다고 재단하는 우를 범하지 않고, 이들이 비판적 지식인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맥락과 시대 상황을 재현함으로써 이들의 지적 여정과 사회적 실천을 상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지평을 연다는 장점을 지닌다. 이 책은 사회학의 역사인 동시에 지식인의 역사인 셈이다. 이는 저자가 동료 사회학자의 연구 성과를 읽고 요약하고 논평하는 ‘서평’보다는, 해당 학자의 문제의식을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보면서 학계 전체를 문제화하는 ‘사회학 평론’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이들 비판 사회학자들은 ‘민중 사회학자’이기도 했다. 민중 사회학이란 1970년대 비판적 지식인으로 불린 일군의 학자들이 제시한, 한국사회를 ‘민족’과 ‘민중’의 개념적 우산 아래 파악하고 서술하는 일련의 활동을 말한다(55쪽). 당시 민중이라는 단어는 ‘국민’과 ‘인민’ 사이 어디쯤 존재하는 특수한 존재로 표상됐다. 김지하 같은 지식인이 사물놀이, 탈춤, 마당극, 연희극 등의 전통에 다시 관심을 가졌던 것도 과거로부터 현재를 이을 수 있는 새로운 저항적 주체의 의식을 호명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러한 ‘민중’의 제시는 독재정권 시기 ‘국민’을 권위주의 정권에 이미 빼앗겼고, ‘인민’은 집단주의적 공산주의 체제가 탈취한 상태에서 ‘남녘땅’이라는 맥락과 조건에 위치한 대중의 상태를 설명하기 위한 시도였다. 그것은 1945년 해방과 함께 ‘백성’에서 ‘신민’으로, 그리고 곧장 ‘국민’으로 직행하면서, 미 군정기 이식된 대의민주주의 제도를 실천하는 것 외에는 시민사회를 형성할 기회가 없던 대다수 사회 구성원의 처지를 표현한다.


시청 광장을 가득 메운 이한열씨 추모 집회. 이는 6월 항쟁으로 이어졌다. 한국의 70~80년대는 ‘민중’이 태동하던 시기였다.

남한이 근대화에 진입한 국가인지, 자본주의조차 성립한 사회인지 지식인 계층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했던 시기, 이들은 민중이라는 개념을 창조하여 아시아 개발도상국가에서 형성되려고 하는 집단적 무의식을 스케치하려고 했던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잘 알려졌다시피, 김수영의 「풀」에서 표상되는,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고 때로는 먼저 일어나는, 또는 순자의 말마따나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엎어버릴 수도 있는, 물과 같은 존재였다. 이들에게 학문은 박정희 정권이라는 억압적 개발독재 체제에서 한국적인 시민의 모습을 창출하는 작업이었는지도 모른다.


‘민중’이라는 개념이 일부 마르크스주의자 필진이나 좌파 이론가 일각을 제외하면 공론장에서는 거의 사멸하다시피 한 2020년대 한국에서, 1970년대 태동한 비판 사회학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는 책의 내용은 어떻게 생각하면 아득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여전히 작동하는 학문장의 네트워크나 학계 구성원들이 민중 개념의 영향 아래 존재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리 간단히 정리될 수 없는 민중 사회학이 탄생하는 맥락을 재구성하고 학자들의 삶을 복원함으로써 개념의 사회적 배경을 탐구한 데 이 책의 의의가 있다고 생각된다.


책이 다루고 있는 이효재는 민중 개념과 여성주의를 결합하여 한국의 뿌리 깊은 가부장제의 폐해를 지적하는 데 힘썼고, 한완상은 민중 개념을 온건하게 발전시켜 시민사회의 성립을 설명하려고 했다. 이효재는 미국에서 가족사회학을 전공하고 한국에 돌아와 여성단체를 설립하는 데 기여했고, 한완상은 학자 생활을 거쳐 문민정부와 국민의정부 시기 공직에 진출했다는 점도 독특한 이력이다. 또 다른 비판적 사회학자로 제시되는 김진균의 경우는 조직사회학과 경영학을 전공했다가 급진적인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접목하여 계급 개념을 재발명하고자 했는데, 그는 다산 정약용의 실학에서 한국적 풍토에 맞는 학문의 실마리를 찾으려고 했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사회학의 ‘공공성’을 중시하고 적극적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사회학이 되어야 함을 강조해 왔던 저자는 부록을 통해 「응답하는 사회학」을 제시한다. 비판 사회학의 문제의식은, 사회학의 공적 역할을 강조하는 ‘공공 사회학’의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사회학이 다른 학문에 비해 대중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대중과 소통할 수 있어야 좋은 사회학’이라는 저자의 명제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철학이나 경제학 또한 대중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띠고 있지만 동시에 전문적인 분과 학문으로 존재할 때의 가치가 있는 것처럼, 사회학 또한 자칫 ‘쉬운 글’인지 여부가 그것 자체로 학문적 가치를 평가하는 잣대가 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고 김진균 교수가 참여한 『문화/과학』. 최근 통권 100호를 넘겼다.

이와 관련하여 ‘대중’의 눈높이와 학문적 가치를 함께 가져갈 수 있는 최근의 실험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소(보사연)는 학술지 『보건사회연구』 편집 체제에 ‘알기 쉬운 요약’을 도입했다. ‘알기 쉬운 요약’은 국문 초록과 별개로 간결하고 평이한 한국어로, 청소년에게 내용을 소개한다는 느낌으로, 비전문가가 읽을 수 있도록 500자 이내로 논문 내용을 짧게 정리하여 독자와 공유하는 시도다. ‘이 연구는 왜 진행했는가?’ ‘새롭게 밝혀진 내용은 무엇인가?’ 같은 기본적인 질문에 저자 스스로 답해 보는 과정에서, 연구의 변수를 명확히 성찰하고 학문적 기여와 연구의 의의를 설명하는 연습을 하는 것도 ‘소통’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비판사회학은 제도화와 주류화 과정에서 어느새 학술장의 엘리트 그룹을 형성했고, 동시에 급진성을 잃어버린 것도 사실이다. 한국에서 지식인의 역사를 정리한 대표적 작업인 2000년대 『경향신문』의 특별 기획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시리즈는 과거 진보적 담론을 생산하며 사회적 역할을 자임했던 지식인 계층이 제도화되면서 학문적 경향을 세밀한 이론으로 발전시켜 후학을 양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좌파 이론 또한 교수들의 ‘업적’과 ‘연구 실적’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어지는 대학체제의 변화 속에서 신자유주의 개혁 드라이브의 압력 속에 제대로 살길을 모색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효재 한완상 김진균의 제자 격인 세대가 은퇴를 시작하거나 이제 막 50대에 접어들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들이 퇴임하고 나면 한국에서 비판 사회학적 전통에 적을 두고 있음을 자임할 후속 세대가 등장하기에는 상황이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아마도 새로운 비판적 정신은 오늘날 부상하는 물질성에 대한 탐구나 비인간 행위자에 대한 관심,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의 상황에서 인간과 사물의 연결을 이론화하는 작금의 작업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선승범(서강대 사회학과 석사과정, a@sunnarii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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