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여섯시 일어나 기저귀 빨고 밥짓고 청소하고 아기보기, 정오면 점심먹고 손이 오면 몇시간 허비하고, 저녁 먹고 곤해 좀 쉬는 동안 잠이 들면, 자 그러면 본업인 그림은 언제나 그리나." 박래현, 「결혼과 생활」, 1948
우향 박래현은 김기창 화백의 아내로 알려져 있지만,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하던 화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청각 장애를 둔 남편을 뒷바라지하고,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작품 활동은 늘 야간에 이루어졌고, 그 때문에 그녀는 늘 피곤했다고 한다. 김기창은 애정을 담아 아내의 모습을 「화가 난 우향」이라는 작품에 담았다. 본업도 가정도 놓지 않기 위해 잠잘 시간을 양보하는 모습은 어디선가 많이 본 모습이다. 저녁 늦게 아이를 재우고 나서 동틀녘까지 연구비 신청서를 썼다는 이야기, 아이가 아파서 밤늦게 실험실에 갔다는 이야기… 대학의 연구자들에게서도 「화가 난 우향」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아이는 얼마나 중요한가 (Do Babies Matter?)』는 대학원과 박사후연구원, 교수 임용부터 정교수 승진 및 은퇴까지, 상아탑에 머무는 연구자들의 일과 가정 생활에 대한 대단위 조사 연구 결과다. 미국에서 50년 넘게 진행 중인 박사학위 취득자 조사와 캘리포니아 대학교 시스템 구성원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 조사 등을 근거로, 결혼과 자녀, 그리고 젠더가 연구자의 커리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다각도로 살핀 책이다.
책의 1장에서 다루는 대학원 시기에는 젠더 간 차이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이미 2000년부터 대학원생의 남녀 성비가 비슷했다. 하지만, 대학원을 지나며 남성보다는 여성 대학원생이 학계를 떠날 결심을 하게 된다. 오랜 시간 일해야 하고, 월급도 적은 대학원 생활을 통해, 연구 활동과 가정 생활을 병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설령 아이를 낳기로 하더라도, 언제 낳을지, 대학원 기간 동안 육아 휴직이 가능은 한지, 막연하기만 하다.
책의 2장에서는 박사학위를 받고, 박사후연구원 과정도 끝마친 후, 대학에 남기로 한 이들의 교수임용 지원 과정을 다룬다. 하지만 자녀가 있거나 결혼한 여성이 정년 심사를 받게 되는 정년트랙 교수직을 구할 확률은 남성보다, 그리고 미혼 여성보다도 낮다. 지금까지 살던 곳과는 전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 하는 대학 교수의 특성이 이 격차를 심화하는 요인이다. 같은 전공을 가진 연구자들을 한 대학에서 여러 명 뽑지 않기 때문에, 교수 임용을 위해서는 대개 지역을 옮긴다. 하지만 여성 연구자는 남성 연구자에 비해 맞벌이 가정을 꾸린 경우가 많고, 그만큼 지역을 이동하는 것이 쉽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배우자의 직장을 옮길 수 없어 임용을 포기하는 경우도 생긴다. 여성 연구자들은 지역을 이동하지 않고, 시간 강사와 같은 비정규직 교원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강의 몇 개를 담당하는 비정규직 교원은 시간을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지만, 정년트랙 교수직에 비하면 처우가 훨씬 열악하다.
대학 교원이 되더라도 아직 무시무시한 관문이 남아 있다. 바로 정년 보장 심사다. 테뉴어로도 불리는 이 과정은, 대학 교원 임용 후 5-7년 사이에 받는 평가로, 이 평가로 그 대학에서 평생 일할 수 있을지, 아니면 대학을 아예 떠날지가 결정된다. 연구 실적으로 주로 평가가 이루어지는데, 새로운 환경에 막 진입한 이들에게 강의와 연구, 그리고 학생 지도를 동시에 진행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여기에 어린 자녀가 있다면? 책의 3장에서는 육아 때문에 강의나 연구에 투입할 시간도 모자라니 연구과제를 작성할 시간을 찾기 어려운 것이 여성 연구자의 연구과제 선정율이 낮은 하나의 이유가 된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자녀를 둔 여성 연구자의 정년 보장율은 미혼 여성이나 남성 연구자보다 낮다.
이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 교수라는 직업의 특징일 수도 있다. 책의 4장에서는 성별에 상관없이 대학 교수가 다른 전문직종인 의사나 변호사에 비해 자녀를 덜 낳는다는 통계 조사를 공개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남성보다는 여성 연구자가 기대 자녀 수에 못 미치는 수의 자녀를 낳는다. 이렇게 커리어의 모든 과정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과 중첩되는 사이 은퇴에 다다른다. 정년 퇴직 연령이 정해져 있는 한국과 달리, 미국의 은퇴 시기는 비교적 자유롭다. 책의 5장에서 다루듯, 이 때도 자녀를 둔 교원일수록 은퇴가 늦다.
하지만 인간의 인생은 하나뿐인데, 커리어와 가정의 사건들이 겹쳐서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이 책이 나오기 전에도, 그리고 연구자가 아니더라도 커리어와 가정 생활의 중첩은 늘 일어났다. 그 교차가 보이지 않게끔, 전통적으로 교수 뒤에 가정에서 이들을 돕는 인력이 있었을 뿐이다. 그 사람이 배우자든, 부모님이든, 가정 도우미든, 항상 누군가는 주로 남성인 교수와 그 가족의 돌봄을 담당했다. 돌봄이 자녀에게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나이 든 부모, 배우자, 혹은 자기 자신도 돌봄이 필요하다. 그 돌봄을 누군가의 노동으로 갈음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지 않음에도, 우리 사회는 그간 돌봄은 당연히 다른 누군가가 (보통은 여성이) 제공하고, 연구자든 노동자든 일하는 사람은 일에 전력을 쏟아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이 책의 저자들은 육아로 대표되는 돌봄의 역할이 주로 여성에게 배정되었기에 결혼과 육아가 학계 커리어 단계마다 여성과 남성의 격차가 발생하는 주된 원인이라고 본다.
책의 마지막 6장에서는 희망을 다룬다. 누군가가 커리어를 희생하면서 돌봄을 전담하는 것에 의지하지 않으면서도 연구라는 본업과 가정을 놓치지 않을 수 있는 최소한의 방법을 소개한다. 그 중에서도 대학에서 실행할 수 있는 제도 이외에 연구비를 지급하는 기관에서 해당 연구 과제에 소속된 연구자를 위해 실시할 수 있는 정책 등도 안내한다. 하지만 정책의 설립은 시작에 불과하다. 제대로 사용되지 않는 정책은 아무 소용이 없다. 비록 이 책과 책에서 안내하는 정책은 육아기를 거치는 이들이 대상이 되지만, 이 정책들이 제공하는 ‘시간’은 언젠가 돌봄을 제공하거나 필요로 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시간’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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