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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의 새로운 뜻풀이, ‘댄스자키(dance jockey)’」 / 김보슬

* 디제이 #1 *

일 년이 조금 더 지난 일이다. 2019년을 한 달 남짓 앞두고, 경기도 수원에서 《몸의 디제잉》(2018.12.1.-12.2, 경기상상캠퍼스 멀티벙커 M3) 공연이 올랐다. 필자가 기획자로, 무용가 김건중이 안무자로 만났다. 이 독특한 디제잉, 이른바‘몸의 디제잉’ 실천을 우리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언급한 공연은 그 관심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인 첫 시도였다.


디제잉(DJ-ing): 디제이에 영어의 현재진행형을 나타내는 ‘∼ing’를 붙여 만든 말이다. 디제이가 벌이는 모든 행동을 일컫는데, 넓게는 곡을 틀어주거나 설명을 붙이는 것도 포함한다. 좁은 의미로는 음원 재조합과 선곡 등에 창의성을 갖춘 디제이가 벌이는 예술 행위를 가리킨다.(『대중문화사전』, 2009, 현실문화연구)

흔히 디제이라 하면, 턴테이블 위에 이러저런 레코드를 얹고 분주한 손놀림으로 사운드를 섞어나가는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세대별 몸짓을 섞고 재조합한 무용 공연 〈옵션〉으로 1부를, 디제이가 이어 받아 관객이 함께 춤추는 파티로 2부를 제시한 《몸의 디제잉》은 전문 무용수와 시민이 더불어 참여하는 2단계 옴니버스 구성이었다. 비공식적으로 마련한 프롤로그—1부에 앞선 ‘0부’—에서는 공연장으로 향하는 셔틀 버스 안에서 사연과 신청곡을 틀어주는 라디오 디제잉이 연출됐다. 다소 거칠게 요약하여, ‘디제이 3종 세트’라고 할 수 있었다.



사진 1. 경기상상캠퍼스 內 ‘공간 1986’ 멀티벙커 M3

* 춤의 재료가 된 일상의 몸짓 *

그러나 이것은 ‘완제품’이 아닌 ‘조립형’ 공연이다. 같은 몸짓이라도 일곱 살 어린이가 할 때, 20대 청년이 할 때, 80대 노인이 할 때에 모두 다른 질감과 리듬을 불러온다. 김건중은 전문 무용수와 일반인을 대상으로 10주 간 워크숍을 가졌다. 그 안에서 도출된 연령별·직업별·숙련도별 다양한 몸짓을 안무가인 자신의 필터를 거쳐 골라내고, 재구성했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의 맛을 살렸다. 반은 기성품으로, 반은 커스터마이징으로 매번 새로운 공연 베뉴에서 각기 다른 구성원들에 의해 조립될 수 있는 이 작품의 특징이 여기에서 비롯된다.


일반적으로 공연 무대는 치밀한 연출과 약속과 연습을 거쳐 완성체로서 관객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하나의 작품 안에서 ‘이미 결정된 것’이 정녕 고정불변에 머무는가 하면, 꼭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끊임없이 새로운 해석의 여지 속으로 함몰되고, 결정 이전으로 돌아가려 한다. 때문에 1부의 제목 〈옵션〉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것일 수도 있고, 다른 것일 수도 있다” 등의 제스처를 함축하기 위해 채택되었다. 고정된 하나의 효과와 메세지가 아니라, 감상자 자신이 선택하는 그것, 그것이 교훈이든 신바람이든, 그 선택지(option) 자체를 충분히 음미하길 바라는 안무가의 마음을 담고 있다.


중요한 것은, 프로의 단련된 몸들만을 가지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춤을 전문으로 하지 않는 다양한 몸들이, 젊은이와 늙은이를 아울러 각기 다른 배경과 역사를 가진 몸들이 안무의 재료가 된다.



사진 2. 워크숍 중 안무자와 시민 참여자들, 사진 제공_김보슬

사진 3. 《몸의 디제잉》 1부 공연 중, 사진 제공_김보슬

* 디제이 #2 *

1부에 이어 디제이 팀 ‘öyang’이 그 여흥을 이어갔다. 공연 조명이 꺼지고 디스코볼이 돌아가자, 무대과 객석의 경계가 자취를 감췄다. 출연자들과 관객의 구분 없이 디제이 파티가 펼쳐졌다. 매 공연 상이한 캐스팅으로 열어둘 2부 디제이에게 요구되는 역할이란, 이를 테면 이런 것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음악으로써 접속시키기, 흘러간 사운드를 작금의 감상과 몸짓 안으로 잠입시키기…. 복고나 리메이크 열풍을 흉내 내자는 것은 아니다. 공간적으로 어디가 될 수도 있는 이 춤판의 시간적 맥을 살피고, 그것을 선곡 모티프로 삼자는 것이다. 한 공간의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는 전통으로 명명되는 먼 과거, 고속 산업성장 시대처럼 손에 닿을 듯한 과거, 그것의 산물로서 도래한 오늘을 가로지르곤 한다.


예컨대, 경기상상캠퍼스에는 비행기 소리를 흔히 듣게 되는데, 이것은 그 일대의 사운드스케이프로서 서울대학교 농업생명대학 캠퍼스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변화무쌍한 역사를 담고 있다. 일제가 설계한 공간을 기초로 대학 캠퍼스가 건립되었고, 가까이에 미군 기지가 들어선 다음, 공군 비행훈련으로 인해 발생하는 굉음은 강의 시설이 현재의 관악 캠퍼스로 이전하는 배경이 됐다. 그러한 동시에, 과거 이 캠퍼스는 ‘샌드페블즈’ 등 1970-80년대를 풍미한 밴드가 활동하던 밑그림이기도 했다. 이것을 활용한 2부의 디제잉은 비단 흘러간 유행가 뿐 아니라, 고유한 공간과 시간으로부터 ‘이유 있는’ 음악을 길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이렇듯 이 작품에서의 디제이(DJ)는 본래의 뜻풀이대로 디스크자키(disc jockey)일 뿐더러, 댄스자키(dance jockey)로, 그 외연을 넓히며 넘실댄다. 그리고 이 말의 운동성을 김건중은 신작 《원래 다 원래》에서 이어가고 있다.



사진 4. 《몸의 디제잉》 2부 디제이 네트워크 파티 중, 사진 제공_김보슬

사진 5. 《몸의 디제잉》 2부 네트워크 파티 중, 사진 제공_김보슬

* 원래 다 원래 *

《원래 다 원래》(안무자: 김건중, 크리에이티브 어시스턴트: 김보미)는 획일화된 가치를 중시하는 사회 속에 살아가는 우리의 ‘원래’를 보여주려는 작품이다. 하나의 텍스트가 흐르고 무대 위 사람들은 각자의 해석에 따라 그것을 움직임으로 변환하여 출력한다. 언어의 경계란 본디 모호하여, 우리는 같은 단어를 사용할 때조차 함의의 차이를 발견할 때가 있다. 움직임 언어 역시 마찬가지이다. 동일 텍스트는 각기 다른 두뇌, 신경망, 세포를 거치며 같아도 다른, 같고도 다른 움직임에 도달한다. 작품은 개개인이 같은 텍스트를 서로 다르게 인지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지의 차이가 곧 우리의 ‘원래’임을 보여준다. 우리는 일상에서 정답을 찾는 습관을 지니지만, 사유와 판단을 통해 도출되는 것은 원래 각기 다르다는 것을 머릿속으로는 이미 알고 있다. ‘정답은 원래 부재하기에 실수란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는 포용의 기회가 춤 속에 마련될 수 없을까?


무대 위 사람들이 텍스트를 듣고 정답을 맞추려는 태도도, 실수에 두려워하는 태도도 아닌, 스스로 판단한 것을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내보이는 태도를 가지고 공연에 임하기를 기대해 본다. 실패도 실수도 없는 무대에서 정답이 부재한 실재를 마주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춤추는 몸 각각이, 포즈와 포즈 사이를 채우며 ‘댄스자키’를 실현할 수 있도록.



《몸의 디제잉》

경기문화재단 경기상상캠퍼스 주최·주관, 2018.12.1.-12.2, 경기상상캠퍼스 멀티벙커 M3

1부 <옵션>



김보슬(Otis College of Art and Design 공공예술 M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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